붉디붉은 단풍이 가득한 숲을 지나 도봉주능선에 올랐다. 돌아보면 그 장중하던 오봉은 동그마니 작아져 있다. 좌측 바위능선으로 오르면 자운봉으로, 곧 바로 계곡 길로 접어들어 내려가면 관음암으로 가는 길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암자 관음암으로 갈 것이다.

북한산국립공원에는 지금 단풍이 절정이다.

광활한 단풍의 바다 속에 한그루 푸른소나무가 이루는 조화가 환상적이다.
도봉의 계곡 역시 노랗고 붉은 단풍이 가득하다. 가을빛으로 적셔진 계곡의 풍광이 환상적이다. 아름다운 자리에는 여지없이 산객들이 모여 앉아 과일이나 간식을 즐기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인지 가을을 먹는 것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아마도 저런 자리에서라면 눈이고 입이고 모두 호사를 누릴 수밖에 없다.
단풍 흐드러지던 계곡에서 다시 관음암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고 계곡을 빠져나와 작은 바위 고개를 넘자니 갑자기 시야가 훤히 뚫리면서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먼저 마치 산에 불이 나서 번지기라도 하듯 도봉산의 산자락들이 온통 붉은빛으로 칠해져 있다.
‘헉! 이게 도대체 뭐야! 눈앞에 들어오는 이 풍경, 이거 너무나도 심한 거 아냐?’
그렇다. 어딜 봐도 눈이 미치거나 아니면 풍경이 눈을 미치게 하거나. 그저 기나긴 탄성이 표현의 전부다.

단풍숲으로 솟아오른 도봉의 준봉들이 내뿜는 위용이 장난이 아니다.
허연 우이암의 바위봉우리만 남겨둔 채 보문능선이 온통 붉은빛으로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니 도봉의 준봉들이 머리 위를 장엄하고 있다. 신선대도 자운봉도 만장봉도 선인봉도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우뚝 서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 바위봉우리 틈새마다 단풍이 물들어 있고 또 그 사이사이 마다에서 소나무들이 독야청청 푸름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아름다움이면 발길이 끊어진 금강산이 부럽지 않고, 멀리 있는 설악산이 부럽지 않다. 하긴 한국의 5대 명산에 삼각산과 도봉산을 포함한 북한산국립공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던가.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과 한라산 그리고 바로 북한산이 한국의 5대 명산으로 특히 북한산은 40여개의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아름답지 않은 봉우리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들면 그 풍광은 어느 명산에 견주어도 모자랄 것이 하나 없는 명산 중의 명산인 것이다.
조망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윗길 위에서 산객 하나가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영상 통화를 시작하나 보다. 그리고 하는 말이 “여보. 어때? 정말 단풍이 환상적이지 않아?” 하면서 전화기 카메라로 사방을 비춰 보여주기 시작을 한다.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아내의 환호성이 비명 소리처럼 들려온다.
“꺄아악~~. 정말 지금 도봉산의 풍경이 이래요? 와~와~ 너무너무 멋지다~. 산이 불타고 있는 것 같아요~ 와아~~와아~~.”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본 풍경에 대한 반응이 이 정도이니 실제로 이 풍광을 바라보는 사람의 느낌은 어떠하겠는가.
‘너무 아름다워서 미칠 지경이다.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뭐 이런 격한 표현을 써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지금은 아파트 숲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전부 논밭이었던 마들평야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대단하다.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가득하지만 옛날에는 전부 논과 밭이던 마들평야를 내려다보며 바윗길을 따라 걷는다.
바윗길을 지나서 다시 작은 계곡 하나를 넘는다. 그리고 만나는 커다란 바위 하나. 그 바위를 돌아드니 작은 전각 하나가 나타난다. 관음암의 산신각이다.
관음암은 도봉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절집이다. 그래서 그만큼 찾아오기 힘들기에 그만큼 절실함을 담고 오르기에 이곳 관음암의 산신각은 영험있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관음암 오백나한전.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관음암에도 단풍이 지천이다.
산신각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를 지붕 삼아 조성된 오백나한전을 만나게 된다. 앞에는 석조 칠불이 그 뒤로는 석조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오백나한상의 표정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거기에 거대한 바위를 지붕으로 삼고 있으니 그 느낌이 더욱 더욱 신묘하며 장엄하다.
오백나한전 계단을 내려가면 요사채와 나타나고 그 뒤로 극락보전이 나타난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면 도봉의 이름난 기암 주봉이 달려들듯 서 있다.
주봉이라는 바위가 참 재미있는 바위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얼핏 보면 이스트섬의 모아이 석상을 닮은 듯 보이기도 하는데 사람의 옆모습을 닮은 인면석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봉을 자연이 빚은 미륵부처님으로 여겨, 주봉 아래에 있는 관음암이나 천축사가 영험한 기도처가 되었을 것이다. 관음암은 옛날에는 천축사의 부속암자였으나 지금은 별개의 암자로 독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 작은 암자의 역사는 무려 600년으로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며 수행을 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만히 보면 태조는 그 어느 고승 못지않던 수행자였던 모양이다. 도봉산 곳곳에 태조의 흔적과 설화들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보문능선의 원통사도 그렇고 천축사나 이곳 관음암도 모두 태조의 수행기도처였으니….

관음암의 극락보전. 태조 이성계가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극락보전 앞에 핀 코스모스. 이름처럼 우주를 품고 있다.
극락보전의 아미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나오다 보니 작은 화단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이렇게 높고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에서 코스모스를 만나니 도심에서 보던 그 자태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하늘거리는 네가 지금 저 거암도 집어 삼키고 있구나.’
산 중 코스모스는 산 꾼의 감성뿐만 아니라 이미 그 무디고 강한 화강암 바위 봉우리마저 부드럽게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뒤편으로 무섭게 깎아지른 절벽들이 모두 두루뭉술해진다.

관음암 입구에서 바라본 도봉산의 준봉들.

산불이 난 것이 아니다. 산불처럼 타오르는 단풍이 만들어낸 장관이다.
작은 암자 주변으로도 미치도록 아름다운 단풍이 가득하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단풍에 미칠 만큼 홀리고 난 뒤에야 계곡을 따라 산길을 내려간다. 계곡에 물든 단풍은 내려가는 걸음마다 산객들을 끊임없이 혼절시키고도 그 아름다움을 갈무리 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직성이 풀릴지 모를 일이다.
마당바위를 지나고 구봉사를 이르렀을 즈음, 작은 일주문 앞에 눈 파랗고 얼굴 하얀 이방인 처자들이 하얀 이를 내놓고 깔깔거린다.

구봉사를 찾은 벽안의 소녀들. 이들에게 한국문화는 어떻게 비쳤을까.

구봉사의 황금대불.
서양을 막론하고 저 나이 때에는 구르는 돌만 봐도 깔깔거린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모양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알아챈 게로구나. 그녀들의 호기심에 화답이나 하는 듯이 구봉사 황금대불이 담 너머에서 싱그러운 미소를 토해내고 있다.
검푸른 이끼를 장삼처럼 걸쳐 맨 바위 위로 계곡물이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르고 있다. 그렇게 졸졸 거리며 흐르는 계곡에도 단풍 빛은 지천이다.

돌다리 건너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절 금강암.

금강암 대웅전. 그 앞에 오랜 세월을 머금은 탑이 보인다.

금강암 대웅전 앞에 핀 목단을 닮은 아름다운 꽃
두어 구비 돌아 지나니 눈앞에 돌다리 아름다운 금강암이 나타난다. 돌다리 건너 절집 산문 안으로 들어서니 목단 꽃 닮은 진분홍 꽃이 흐드러져 가을 하늘을 이고 있는다.
오래된 오층석탑은 돌이끼를 두르고 세월을 이야기 하건만 무심한 길손은 파란 하늘에 붉은 단풍만 노래하더라.
구봉사 계곡을 마저 빠져 나오면 영욕의 세월이 흔적처럼 남는 곳이 있다. 도봉서원이다.

도봉서원. 본래 이곳은 서원말이라고 불릴 만큼 서원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봉산 자락은 조선시대에는 서원이 많았던 골짜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서원말’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한때는 수많은 글월이 넘쳐나던 곳이지만 지금은 삼문과 전각 하나만이 남아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이 서원말 일대가 발굴이 되고 복원이 될 예정이란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자락에 우리의 전통이 복원이 된다니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도봉산 입구로 나오니 이제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흘러가고 있다. 모두들 그 아름답던 단풍 빛깔에 흥건히 취한 듯하다. 붉디붉던 단풍잎 색깔이 얼굴마다 번지고 있다.
지치게 아름다운 가을에 중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