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 정상에는 이렇듯 기기묘묘한 기암들로 가득하다. 기암과 함께 바라보는 설악산의 풍경은 환상적이다.

설악산의 풍경이 갑자기 그립다. 미시령 옛길도 넘어보고 아름다운 산사 신흥사도 돌아 볼 겸 속초 설악동으로 떠난다. 홍천을 지날 즈음 이슬비가 잠시 내리더니 인제에 들어서자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백담사 앞을 지나면서 바라보는 산풍경이 그윽하다. 설악산의 7부 능선부터 구름이 드리워져 신비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미시령 고갯길과 미시령 터널 길의 갈림길에서 좌측 고갯길을 선택해 오른다. 미시령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속초로 가는 길은 이곳 미시령 고개를 넘어 가거나 진부령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미시령 정상의 안개 가득한 풍경. 정상에 도착하니 습기 가득한 구름이 물방울을 만들어 부슬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서서히 가려지는 시야. 백담사에서 바라보던 산에 걸린 구름지대에 진입한 것이다. 뿌연 안개 같은 구름 속은 시야를 오리무중으로 만들고 있다.

발아래 깔린 구름의 풍경을 기대하고 도착한 미시령고개의 정상은 기대와는 달리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운무를 발아래 두고 구름 위에 섬처럼 떠 있는 봉우리들의 풍경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구름 속에 갇힌 세상은 그 모습이 거의 지워지고 희미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구름 속에 있는 것이 그다지 싫지는 않다.

미시령 터널이 개통되고 나서부터 이곳 미시령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나보다. 많이 낡고 군데군데 부서진 정상의 휴게소는 장사를 하지 않는 점포도 더러 보이고 있었다. 터널이 생기고 나서 속초로 가는 길이 편하고 빨라져서 좋기는 하지만 왠지 서정적인 풍경들이 개발에 의해 밀려나는 것만 같아 길손의 가슴이 짠하다.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구름 가득한 미시령을 내려와 속초의 앞 바다를 구경할 겸 청호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이 부근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설악동으로 갈 요량이다.

저녁 무렵 청호해수욕장의 풍경. 노을빛이 구름을 물들이고 다시 바다도 노을빛이 곁들여 진다. 꿈 속에서 본 듯한 풍경을 감상하다.

청초호의 아름다운 풍경. 설악산 너머로 넘어간 해는 아직도 빛을 남겨두고 있다. 설악의 준봉을 넘는 구름들 그리고 하나둘씩 켜지는 야화들.

해 기우는 청초호와 청호해수욕장 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지는 해가 못내 아쉬운지 하늘 가득 푸른빛을 남긴 채 서서히 설악의 그늘부터 어둠으로 물들고 있다. 푸른빛과 구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동해바다의 풍경과, 해는 저물고 부지런히 설악산의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 밑으로 서서히 등불이 밝혀지는 청초호의 그림 같은 야경을 바라보고 난후 숙소를 잡았다.

청초호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고 나니 미친 듯이 허기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근처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과 반주를 곁들이고 나니 묵직한 여독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바닷가의 소금기를 씻어내고 몰려든 졸음에 취해 늘어지게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설악동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은 구름이 가득 들었다. 울산바위가 허리까지 가려져 버렸다. 그래도 아름답다.

설악산 신흥사의 일주문. 설악산 부처님을 뵙기 위해 신흥사 일주문 안으로 들어선다. 일주문은 하나의 진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통일대불 청동좌상과 청동등. 통일을 염원하며 조성된 이 청동좌불은 높이가 14.6m, 총 108t의 청동으로 제작된 좌불이다.

하늘을 치솟은 아름드리 전나무. 그리고 담쟁이의 푸른 잎 가득한 신흥사의 돌담. 신흥사에서 바라보는 설악은 절경 중에 절경이다.

달디 단 숙면 끝에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기분이 개운하다. 날씨도 다행히 흐리지 않아 다행이다. 서둘러 설악동으로 향했다. 신흥사로 가는 길에 바라보는 설악산이 구름을 머리에 이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하다. 설악동에 도착을 하고 신흥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일주문을 지나니 엄청난 크기의 청동좌불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높이 14미터가 넘는 이 청동좌불의 이름은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대불이다. 얼마나 크면 이 대불 아래 법당이 있을 정도일까? 통일대불 앞에서 참배를 올리고 신흥사 경내로 향한다. 푸른 담쟁이를 두르고 있는 돌담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치솟은 침엽수는 설악산보다도 높아 보인다.

신흥사 사천왕문. 세심교를 건너면 자연석 돌담 가운데 이 사천왕문이 나타난다. 이 사천왕문을 지나 신흥사 경내로 들어선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드디어 신흥사 경내다. 아름다운 설악의 풍경을 한 아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신흥사다.

극락보전의 풍경. 보통은 큰법당 앞에는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신흥사는 석탑 대신 석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요사채 뒤로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이 너무나도 좋다. 절집과 산은 아무래도 뗄래야 뗄 수 없는 풍경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신흥사 경내로 들어선다. 사천왕문은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문으로 밖으로는 천신의 위엄과 용맹을 보이고 안으로는 보살의 자비를 도와 불법을 지켜 마귀를 강복시킨다는 신장을 말한다. 동은 지국천왕, 서는 광목천왕, 남은 중장천왕, 북은 다문천왕으로 이렇게 사방을 지킨다.

허리를 숙여 보제루를 지나니 큰법당인 극락보전에 이른다. 부처님께 참배하고 다시 경내를 돌아본다. 아름다운 설악의 풍경이 전각들의 지붕 위로 떠다니고 있다.

‘설악산이 신흥사를 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흥사가 설악산을 품고 있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무엇을 품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 설악도 자연의 하나요. 사찰도 자연의 하나일 뿐이거늘….’

설악산의 봉우리에서 보면 산자락 계곡에 동그마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신흥사요, 신흥사의 사찰 경내에서 보면 설악산의 사방의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니 설악이 신흥사 부처님 품에 안겨 있는 듯하다. 설악산과 신흥사는 그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에 잠시 어울리지 않게 시흥에 빠졌다가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깨어난다.

설악산 신흥사. 대한불교 제3교구 본사로 강원도 영동 불교의 중심사찰이다. 신흥사는 원래 진덕여왕 6년에 자장율사가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한다.

이 향성사가 화재로 소실되고 훗날 백발선인이 현몽하여 현재의 자리를 점지해주어 오늘날 신흥사가 되었다고 한다. 신이 흥하게 한 절이라고 해서 신흥사(神興寺)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다가 현재는 귀신 신자를 바꾸어 새 신자를 사용해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설악의 명물 흔들바위. 장정들이 한 거번에 밀어도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는 흔들바위. 그 뒤로 계조암이 보인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가파른 철 계단. 이 철 계단을 오르는 길은 고행길이요, 수행의 길과도 같다. 돌아보면 정말 무섭다.

울산바위를 마저 오르기 전 모양이 독특한 바위에서 설악을 바라보다. 기암과 함께 보는 설악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신흥사 경내에서 본 아름다운 설악의 풍경에는 봉우리 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는 듯하다. 이제 울산바위로 올라가 볼 참이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휴게소가 나타나고 다시 휴게소에서 20여분을 더 오르니 동그란 바위덩어리와 잘은 산중 암자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가 그 유명한 설악산 흔들바위로군.’

장정 몇 명이 달려들어 밀어붙여 봐도 작게 흔들릴 뿐이지 끄떡 없이 버티고 있다. 생각보다 작아 보이던 흔들바위 뒤로 보이던 작은 암자, 계조암이다.

계조암은 신흥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금의 신흥사와 함께 창건한 암자로 원효와 의상을 비롯한 많은 대덕고승들이 수행을 하던 암자여서 계조암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계조암의 석굴법당에서 감로 석간수를 얻어 마시고 울산바위로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은 조금씩 가팔라지고 언뜻언뜻 보이는 울산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구름을 이고 솟은 설악산은 지금 신비주의를 맘껏 내뿜는 중이다. 그렇게 가파른 산행로를 구불구불 힘들여 올라서니 엄청난 암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울산바위다. 이렇게 장대할 줄이야!’

그리고 이어 거대한 암벽의 틈새로 드러나 보이던 갈지자 형태의 기나긴 철 계단. ‘저 길고 가파른 철 계단을 올라가야 한단 말이지.’ 갑자기 아득해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철 계단을 하염없이 걸어 오른다. 그리고 돌아 볼 때 마다 느껴지던 엄청난 고도감. 하지만 그런 고도감이 안겨주는 공포감도 설악의 아름다운 풍경들에 대한 감동을 넘어 서지는 못 한다.

드디어 울산바위 정상에 오른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울산바위의 기암의 연봉이 환상적이다. 금강산을 향해 엎드린 모습처럼 보인다.

연무가 조금 끼어있긴 하지만 다행히 속초 앞 바다가 시원하게 드러나 보인다. 한 달 중 열흘 가량만 이렇게 조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구간이 가장 공포감이 많이 느껴지는 곳이다. 일자로 길게 이어지는 이 구간은 고도감이 장난 아니다. 하산 길에 반듯이 다리를 풀어주자.

무려 808개의 철 계단을 오르고 나니 울산바위 정상이다.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야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풍경들.

‘아! 아! 대단하다, 대단하다, 그저 대단할 뿐이다!’

아래서 보면 병풍 같던 울산바위가 금강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늘어섰다. 시선을 던지는 곳 마다 훤하게 조망이 펼쳐진다. 고성의 앞바다도, 속초의 앞바다도, 영랑호도 속초시도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을 뒤집어쓴 설악의 준봉도, 미시령의 상봉과 금강산의 마지막 자락 신선봉도, 그렇게 한눈에 들어온다. 그림 같은 풍경들의 연속이다.

“이곳 울산바위는 여름철에는 조망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한 달에 열흘 가량 조망이 열리는데 오늘 오르신 분들은 복 받으신 겁니다.”

정상을 지키고 있는 적십자 산악구조대원의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구름이 조금만 더 낮게 드리웠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조망을 감상하는 것은 꿈에도 못 꿀 일이 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울산바위는 원래 울산에 있던 아름다운 바위였는데 신이 금강산을 빚으면서 전국의 아름다운 바위를 전부 불러 모았는데 울산바위도 금강산을 향하던 중 이미 금강산이 전부 빚어져서 그만 지금의 설악산 자락에 눌러 앉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울산바위가 갑자기 삐져서 자기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장난기 어린 상상을 해본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쓰레기나 함부로 버리고 가고 자연을 훼손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울산바위가 삐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잠시 머물다 가는 부채와 같은 것이니 깨끗하게 잘 보존해서 다시 후손들에게 온전히 돌려 줘야할 자연환경이다.

설악산의 아름다운 울산바위. 이곳에 오르니,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후손 만대까지 고스란히 전해야겠다는 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바람결과 함께 밀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