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분홍빛이 번지듯 스며있는 것은 홍매화요 연두 빛을 살짝 묻혀놓은 듯 은근한 푸른빛이 감도는 것은 청매화이며, 꽃을 희되 꽃받침이 붉은 것은 백매화다. 예로부터 향의 으뜸은 청매요, 색깔의 화려함은 홍매이며, 단아함의 으뜸은 백매라 했다.

청매화 홍매화 백매화 어우러진 매화밭에서 단청 없는 오랜 고택 같은 낙선재의 풍경에 비틀댈 듯 취해본다. 도심에서 이렇듯 매화꽃을 만끽하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고맙게도 이즈음 낙선재를 찾으면 마음껏 매화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매화꽃과 짜릿한 향과 더불어 고궁의 풍경과 역사까지 더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거삼득’의 즐거움이다.

성정각 담장 위로 옥매화 붉게 피어나고 벚꽃도 화사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진분홍빛 옥매화는 겹꽃에 꽃이 많아 그 색이 화려하고 곱다.

낙선재를 빠져 나오면 희정당 일원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정각 담벼락을 기대고 선 듯한 키 높은 옥매화 나무에 분홍빛 꽃들이 옹글옹글 맺혀 눈부시게 고운 빛을 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란 산수유도 연분홍빛 벚꽃도 제 빛깔대로 제 모양대로 꽃을 피워내 고궁의 봄을 더욱 찬란히 빛나게 하고 있다.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함양문 앞에서는 후원 관람을 위해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창덕궁의 후원 관람은 자유관람이 아닌 단체관람이기에 관람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단체로 문화해설사를 따라 이동해 가며 관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원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를 넘어서 부용지에 도착을 한다. 조선의 왕궁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 졌다는 창덕궁의 후원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기에 금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일제강점기에는 비밀의 정원이라 하여 비원이라고도 불린 조선 최고의 정원이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는 이름으로 계절마다 변하는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져 창덕궁 후원 중에 빼어난 경치를 연출하는 주인공이다.

애련지를 지나 연경당으로 간다.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인 애련지(愛蓮池) 역시 이름에 연꽃이 붙은 것을 보니 조선의 왕들은 연꽃을 정말 좋아했던 듯싶다. 이곳 연못들에 연꽃이 한창 피어날 즈음 찾아와도 좋을 듯하다.

연경당 안으로 들어서니 단청 없는 전각들 사이로 진달래가 곱게 피어 그 화사함이 퇴색해 버린 목조건물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새로 복원해 몇 해 전부터 개방하기 시작한 존덕정 일원을 지나 옥류천에 이른다.

옥류천은 인조가 팠다는 어정(임금님의 우물)과 북악산의 물줄기가 흐르는 계류이다. 이곳 널찍한 바위에 홈을 파 샘물을 끌어올리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 그 홈 사이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놓고 신하들과 시를 지었다 하니 신라의 포석정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규모가 조금 작기는 하지만….

이끼 낀 소요암 바위 틈바구니에 소담스런 흰 꽃이 피어나 있다. 계곡 바위틈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우리 들꽃 돌단풍이다. 단풍나무 잎사귀의 모양을 하고 있고 바위틈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꽃 돌단풍은 가을이면 붉은 빛으로 잎사귀가 물들어 더욱 단풍잎 같은 소중한 야생화다.

창덕궁 후원을 돌아보고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건너간다. 통명전 뒤 언덕에서 창경궁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궁궐의 전각 기와지붕 너머로 신록의 싱그러운 연두 빛이 번지고 있는 풍경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

진달래 무리 지어 피어있는 춘당지에도 잉어 떼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춘당지 한 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의 소나무 위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 있다.

왜가리 한 마리가 꿈쩍도 않고 서 있는 것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듯 왜가리를 만나볼 수 있다니…, 어찌 보면 우리의 고궁은 도시 생태계의 허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고궁. 봄 꽃 화사하게 피어있어 아름다운 궁궐들은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바로 지금이 봄꽃 흐드러지게 피어 난 고궁 봄나들이에 안성맞춤인 시절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칠 때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