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신앙의 성지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김제 모악산의 금산사 일대이긴 하지만 안성 역시 미륵신앙의 성지로 그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아마도 안성시 일대가 전국에서 미륵불이 가장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성이 자랑하는 명승지로도 손꼽히는 삼죽면 기솔리의 쌍미륵과 궁예미륵으로도 불리는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을 찾아 길을 나섰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을 빠져나와 38국도 안성방면으로 진입해, 가을걷이를 끝낸 삭막한 논 풍경을 따라 8km쯤을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안성허브마을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삼죽 삼거리를 200m쯤 지난 지점이다.

안성허브마을을 끼고 들어서면 다소 좁아지는 도로가 나오고, 이 길을 따라 다시 3km 가량을 더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입하면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이 길이 쌍미륵사와 국사암으로 가는 길이다.

길은 산으로 오르는 농로로 그 옆으로는 다랑이 논들이 올망졸망 펼쳐지는데, 그 풍경은 전형적인 산골 농촌마을의 그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쌍미륵사 이정표. 가까운 쌍미륵사를 먼저 찾아 들어가기로 한다.

쌍미륵사 입구에 이르니 바위 하나가 소나무 두 그루를 이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바위 주변을 돌며 살펴보니 낡은 현판 하나가 거꾸로 세워져 땅 속에 처박혀 있다.

'무선암'이라고 적힌 현판으로 그 아래에는 향당춤의 발원지라고 적혀 있다. 일순간 몇 가지 궁금증들이 일어난다. 무선암은 이 바위의 이름일테고 향당춤의 발원지라면 어떤 춤의 일종일텐데 그 발원지라니…. 안성이 남사당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순간이다.

폐허처럼 방치된 향당춤의 발원지에서는 내 궁금증의 답을 찾아낼 길이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향당춤은 향당무로도 불리는데, 이 향당무는 안성무형문화재 제34호로 40여종의 전통무용이 지금까지 전승돼 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담무는 영산재의 뒤풀이인 삼회향놀이의 한 대목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어떤 이유로 그 발원지가 훼손이 되었는지 알 길이야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우리 소중한 유산의 발원지가 방치된 채 어지럽혀진 현장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길이 없다.

무선암을 지나 쌍미륵사로 들어섰다. 요사와 종무소가 길게 늘어 선 마당에 들어서니 아직 붉은 빛을 간직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반갑다. 늦가을 햇살에 더욱 선홍빛 짙은 단풍나무를 지나치니 검게 산화한 청동 관세음보살상이 부드러운 미소로 안아 주시는 듯하다. 그리고 그 위로 투박해 보이는 미륵불 두 기. 키가 5.4m에 왼편 미륵불이 남 미륵이고 그 보다 조금 작은 5m의 오른편 미륵불이 여 미륵불이다. 좀더 건장하고 섬세한 표현을 한 남 미륵불과 달리 여 미륵은 가녀리고 온화한 모습이다. 얼핏 보면 한 쌍의 석장승을 닮은 쌍미륵불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육계에 자연석을 둥글게 가공한 갓을 올린 것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지방 양식이다. 안성시 일대에는 이러한 형태의 석불입상을 더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퇴색한 잎사귀를 성글게 매달고 있는 낮은 숲 사이로 보이던 천불전을 돌아 큰법당인 용화전에 들러 쌍미륵사를 빠져 나온다. 궁예미륵으로도 불리는 석조여래입상을 찾아 참배하기 위해서다.

궁예미륵을 찾으려면 쌍미륵사 입구로 나와 다시 국사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가파른 경사도의 산길을 따라 1.4km를 오르니 산 중턱에 작은 절집이 단아하다. 경내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던 항아리가 가득하던 장독대. 왠지 든든함과 풍요로움이 가득 느껴지는 풍경이다. 아마도 두고두고 먹을 장과 찬들이 그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독대 너머로 산등성이들이 길게 굽어가고 있다. 제법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절집이다. 인기척을 내어도 산중 절집은 고요하기만 하다. 대웅전을 돌아 오르니 어디서고 쉽게 봄직한 미륵삼존입상이 서 있다. 미륵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왕릉이나 대가집 묘역을 지키는 문인석의 모습과 흡사하다. 둥글둥글하고 투박한 모습은 코의 모양만 빼면 제주 하루방의 모습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바로 이 삼존불이 궁예미륵으로도 불리고 있는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이다. 향토유적 제42호로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앙의 본존불의 높이가 3.1m이고 좌우 협시불은 그 보다 조금 작다.

안성 죽산은 죽주로도 불리는데 신라말기 궁예는 이곳 죽주 일대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궁예가 세력화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생미륵으로 지칭하고 다녔으니 어쩌면 이 때문에 이곳 안성에 미륵사상이 그대로 크게 자리 잡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해볼 뿐이다.

안성은 삼남(충청, 전라, 경상)의 길목으로 고을이 커지고 번성해져 지배층들의 수탈이 극심해지자 민초들은 자기구원의 수단으로 미륵신앙에 더 천착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곳에서 미륵신앙이 더 크게 자리 잡게 되었을 거라는 추론이 있지만 아무래도 생미륵을 자청하고 다니던 궁예의 사상이 더욱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곳 국사암의 삼존미륵도 어쩌면 그런 연유에서 궁예미륵이란 이름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박하며 솜씨 없는 모습이 왜 이리도 감동적일까. 아마도 오랜 세월 민초들의 한과 설움을 함께하여 그 따뜻한 마음들이 온전히 간직돼 더욱 푸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