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자락에 도착하니 여전히 날씨는 맑고 덥다. 주말을 즐기기 위해 나온 가족나들이객들로 도립미술관의 마당이 왁자하다.
전주의 천년고찰 동고사를 품어안은 중바위산을 돌아보고 전동성당 앞에서 시내버스로 이곳 완주군 구이면으로 넘어온 길이다. 주변경관이 수려한 이곳 구이면 모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립미술관은 전주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휴양지 중 하나다. 도립미술관 위로 모악산 산마루가 옅은 곡선을 그리며 눈에 들어온다.
무료전람회가 열리고 있는 도립미술관에서 눈이 횡재를 한다. 개인소장 전람실에서 삶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을 화폭에 담은 회화들을 감상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도 미술관 한번 쉽게 못 찾아보던 일상이 전주에 내려와 호사를 누리는 듯싶다.
도립미술관을 벗어나니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송학사의 입구를 알리는 현수막이다.
전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챙겼던 것이 관광지도였다. 미리 지도를 챙겨두면 찾아볼 곳들의 순서와 여정의 길잡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주로 내려오기 전 사전에 전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는 보았지만 역시 관광지도만큼 좋은 길잡이는 없는 것 같다.
시내버스에서 미리 잡아둔 동선대로 도립미술관을 나서면 들를 곳이 송학사였다.

송학사 입구로 들어선다. 울창한 송림이 장관이다. 송림 사이로 오롯이 난 오솔길을 따라 송학사로 향한다. 송학사를 알리는 표지석 뒤로 반야교 석교가 그리고 그 뒤로 절집의 전각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을 한다.
송학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사찰이다. 송학사하니 가수 김태곤의 ‘송학사’라는 노래의 가사가 먼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메냐. 밤벌레의 울음계곡 별빛 곱게 내려 앉나니,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보세…”
갑자기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선배님 얼굴이 떠오른다. 막걸리처럼 걸쭉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시던 선배님을 만날 때마다 가끔 산중 절집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베여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보세,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을 완곡하면서도 절절하게 표현한 부분이지 싶다. 아마도 선배님 역시 그런 그리움 하나를 달고 살고 계시는 것 같아 문득 그 얼굴이 피어오르고 다시 선배에 대한 잔잔한 그리움이 일어난다.
반야교를 건너 경내로 들어선다. 노래가사처럼 산모퉁이를 바로 돌진 않았지만 아마도 밤이
되면 밤벌레의 울음계곡이 되고 별빛 역시 곱게 내려앉을 것만 같은 고요한 산사임에 틀림없다.
경내는 부처님오신날을 위한 연등 설치작업으로 정신이 없다. 큰법당에서 삼배를 올리고 나서는데 일꾼 한분이 냉수 한 사발과 초코파이 몇 개를 건네주신다. 종일 계속된 기나 긴 여정 탓인지 입안이 깔깔해서 도무지 단것이 당기질 않아 사양을 하고, 일꾼을 다시 바라보니 아무래도 예사 일꾼은 아닌 듯하다. 여쭈니, 아니나 다를까, 이곳 주지로 계시는 명산 스님이시다.
“절집 세 채 지은 중은 호랑이도 안 잡아 먹는 답니다. 옛날에는 대부분 그랬어요. 은사 스님하고 함께 절집을 지었는데 그만큼 고단하고 힘든 일이어서 호랑이도 안 먹을 만큼 말라서 생긴 속담 아니겠어요.”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을 하고 계신 송학사 주지스님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명부전 불사를 두고 하는 말씀이신 것이다. 잘 지어진 전각 안을 들여다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답고 장엄한 명부전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 명부전을 새로 지어 다층으로 위패 봉안함을 만들고 영가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시설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 송학사는 전북의 어머니의 산 모악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그 형상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포란형의 명당지랍니다. 이런 좋은 자리에 영가들을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도발원을 하면 더없이 좋을것 같아 시작한 불사랍니다. 그런데 자꾸 일이 더디게 진행이 되니 답답하네요.”
올해 말 즈음이나 완공이 될 것 같다며 그때 다시 한 번 꼭 찾아오라는 스님은 다시 서둘러 하던 일로 돌아가신다.
송학사 경내를 빠져나와 다시 송림의 오솔길을 걸어 나온다. 어느새 해는 모악산 산등성이를 넘어서고 있다. 근처에서 숙소를 잡은 후 여장을 풀고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주변 식당으로 찾아든다. 다행히 전화 몇 통화로 볼 일을 마친 터라, 다시 전주시내로 돌아갈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식당 안은 주말 산행을 마친 산행객들의 뒤풀이로 요란하다. 맛의 고장인 전주라서 그런가. 김치찌게 하나도 그 맛이 훌륭하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나니 여독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악산을 넘어 금산사까지 갈 참이다. 숙소의 열어놓은 창으로 여명이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 검푸른 하늘을 비집고 나온 한줄기 붉은 빛에 잠이 깬 것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일찍 눈이 떠지는구나.’ 일찍 깬 만큼 하루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에 드는 생각이다. 붉은 여명이 검푸른 어둠을 몰아내고 희미하게 금성산과 고덕산의 줄기들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창가에 가만히 앉아 일출의 광경을 바라본다. 산 능성이로 피어오른 붉은빛이 온전한 해로 바뀌어 가는 과정들. 그리고 그 아래로 실루엣으로 펼쳐지던 회색 산봉우리들.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커다란 사발면 하나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숙소를 빠져나오니 아침 일곱시가 갓 넘었다.
벌써 문을 열어놓은 식당은 단 한곳도 눈에 띄질 않는다. 편의점 한곳에서 산행 중 먹을 간단한 먹거리와 식수를 사고나서 모악산으로 진입을 한다.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이 머금었던 아침 햇살의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다.
이제부터 대원사를 들러 수왕사로해서 모악산 정상을 넘어 금산사로 가는 길의 시작인 것이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산행로는 호젖하고 싱그럽다. 사람없는 산길에 산새들과 청설모들이 길동무를 해준다. 투둑투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잔가지들은 청설모들의 소행이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청설모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심심치는 않아서 좋다. 맑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행길엔 어느새 햇볕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만나는 작은 폭포 하나. ‘선녀폭포와 사랑바위’다.
먼 옛날 이곳 선녀폭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수왕사 약수를 마시며 목욕을 즐겼는데 어느 날 이를 몰래 본 나무꾼이 그만 선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고 그만 사랑의 병에 걸려 앓아눕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보름달이 뜨는 날 다시 이곳 폭포를 찾아 가 벌어진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나무꾼은 한 선녀와 눈을 마주치고, 둘은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입맞춤을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이 둘은 점점 돌로 굳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간직한 이 바위는 사랑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 바위에서 소원을 빌며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선녀와 나무꾼이 떨어질 줄 모르고 열렬히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쉽게 찾아지질 않는다. 아무려나, 명경 같이 맑은 계곡물이 소를 이루고 있는 비경을 바라보며 이른 곳이 대원사다.

돌담을 돌아올라 대원사 경내로 들어선다. 대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금산사의 말사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20년에 열반종 개산조 보덕스님의 제자 대원, 일승, 심정 등의 세분의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606년에 진묵대사가 중창을 하고 이어 몇 번의 중창이 더 있은 후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절집 마당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연등이 걸려 산중 절집의 풍광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웅전에 들어서 먼저 삼배을 올리고 사찰 경내를 돌아본다. 대나무에 초가를 얹은 작은 가건물 소화당에 들어서던 순간, 오래된 기와를 화폭 삼아 그려진 아름다운 불화들이 나타난다. 기와 위에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질 수 있는 것이구나.
소운 김선옥 화백의 작품으로 기와 위에 그리는 불화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와 위에 펼쳐낸 아름다운 불모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나서 용각부도를 찾아 나선다.


심검당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먼저 문화재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고 그 뒤로 부도탑이 탑신에 섬세하고 우아한 수법으로 용이 새겨진 용각부도를 볼 수가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부도탑이다. 탑신에서 금방이라도 용 한마리가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보인다. 용각부도와 그 위로 부도탑 두기를 더 보고 내려온다. 기단이 사라진 오래된 탑 위로 모악산의 정상이 아스라이 멀기만 하다.

조선 중기의 대덕고승인 진묵대사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있는 모악산의 절집들. 이제 그 절집들 중에 하나인 대원사를 뒤로 하고 수왕사를 향해 오른다. 모악산(母岳山). 산 이름에 어미 모자가 들어가니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이 가득한 산으로 여겨질듯 하지만 실제로 그 오르는 길은 사납다. 악산이란 이름은 역시 그냥 붙여진 게 아니었다.
가파른 경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그 높아진 경사도만큼이나 호흡도 가쁘고 거칠어진다. 이틀째 이어지는 산행과 탐방여행에서 오는 피로까지 더해 자꾸만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수왕사.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수왕사는 모악산의 칠부능선에 위치한 아주 작은 절집이다. 겹벚꽃 화사하게 피어있는 수왕사로 들어선다. 겹벚꽃 꽃잎이 흩날리는 마당에서 발아래 세상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다.
산 능선을 넘어온 바람 자락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시원하다. 몸도 시원하고 조망도 시원하다. 수왕사 역시 조계종의 금산사의 말사로 물왕이절이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이는 물의 왕 즉 수왕(水王)을 일컫는다.
이곳 물이 얼마나 좋으면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정도일까. 수왕사의 약수는 선녀폭포의 전설에서도 나오듯 선녀들이 찾아와 마시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소문난 약수였던 것이다.
슬레이트로와 양철로 지붕을 이은 작은 산중 절집 수왕사는 아주 작은 규모의 암자다. 입구의 작은 건물은 법당이고 그 앞으로는 스님의 처소가 자리 잡고 있다. 절집이라기보다는 산중 민가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작은 법당 앞에서 참배를 드리고 그 위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니 기와를 얹은 작은 전각이 나타난다. 진묵대사님의 진영을 모신 진묵조사전이다.
진묵대사께 합장을 드리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오자니 우측으로 요상한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약탕기 같은 커다란 시루 위에 또 다시 시루 하나가 더 얹혀져 있고 그 위에 가마솥 뚜껑이 덮혀있는 모습이다. ‘어! 저건 분명 소줏고리인데... 왜 이런 산중 절집에 소줏고리가 있는 걸까?’ 잠시 궁금함이 일어난다.
그 궁금증도 잠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송화백일주. 이 송화백일주는 진묵대사가 만들어 마시던 술이 전래되어 지금까지 민속전통주로, 또 곡차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송화백일주는 진묵대사의 기일에 맞춰 만들어져 올려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소줏고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수왕사를 중창해 수행처로 삼은 진묵대사는 이곳에서 송홧가루와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를 넣어 송화백일주를 만들고 그 양조법이 지금의 주지 벽암스님까지 전해져 내려와 이제는 명인1호가 만든 민속전통주로 대통령 선물로도 채택돼 더욱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하기는, 선녀들이 즐겨 마시던 약수를 가지고 만든 곡차니 이보다 더 좋은 술도 없을 것이고 또 더 좋은 보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수왕사 절집 마당에서 이곳 약수를 떠 마신다. 오장육부까지 얼얼하게 만드는 시원한 약수를 몇 바가지나 마셨는지, 그만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곁벚꽃잎 흩날리는 수왕사를 뒤로하고 무제봉으로 오른다.
모악산의 정상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부터 모악산 정상으로 올라야 겠다. 그리고 그 정상을 넘어 김제의 금산사로 갈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