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인가, 여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주 여강의 신륵사와 상교리의 고달사지를 돌아보는 여행길이었다.

그리고 해가 바뀐 신록의 봄날, 다시 신륵사와 고달사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가을의 절집 풍경과 봄날의 절집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과 매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모래사장을 두르고 흐르는 여강의 암벽 위에 세워진 영월루에서 바라보노라면 강 건너 야트막한 산기슭에 절집의 지붕들이 슬며시 그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여강변의 그 야트막한 산이 봉미산이고 그 기슭의 절집이 천년고찰 신륵사로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고는 있으나 문헌이나 사료로는 기록에 없는 전설일 뿐이다.

또 신륵사는 용에 관한 두 가지의 전설이 깃든 사찰로 고려 우왕 시절 나옹선사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다스렸다는 전설과 고려 고종 시절 역시 사나운 용마를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신륵이라는 명칭도 신을 의미하는 신(神)자와 제압(굴레)을 의미하는 륵(勒)자를 합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이런 설화가 깃들게 된 연유도 바로 여강의 풍경에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여강은 남한강의 상류 지점을 일컫는 이름으로 물안개로도 무척이나 유명하다. 또 구비구비 흐르는 강변 주변으로 형성된 암벽과 고운 황금빛 모래사장이 깔린 여강변의 풍경에 많은 비가 내린후 어쩌다가 안개라도 들어찰라치면 여지없이 용이 승천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물안개는 들어차고 강물은 거칠게 용솟음치니 강변 절집도 민가도 모두 위험천만이었을 터이다. 그때 고승께서 부처님의 가피력을 통해 강물을 잠재우니, 이것이 용을 다스린 전설로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아, 꿈보다 해몽이 더 그럴듯한가.

경내로 들어서니 그 아름다운 여강 강변의 암반 위에 자리잡은 신륵사는 죽음의 4대강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돌로 쌓은 전탑 너머 모래사장은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강바닥을 도륙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강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여강은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피울음 섞인 바람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굴삭기 유리창에서 반사된 햇빛이 희번뜩, 마치 난폭한 폭군이 흘리는 음험한 웃음소리 속에 강바닥이 무참히 짓이겨지고 능욕을 당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강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싸인 신륵사가 그리워 찾아온 길은 일순 안타까움과 심란함으로 가득해지고 말았다.

공사 중인 큰법당의 뒤편으로 돌아 보제존자 석등과 석종을 참배하고 내려온다. 신륵사는 이곳저곳이 복원공사 중이다. 신륵사 절집이 유난히 초췌해 보이는 순간이다.

강천보 공사가 한창인 이호대교를 돌아본다. 무섭게 파헤쳐져가는 강변을 바라보면서 강에게 자꾸 미안하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인간의 편리와 이익이라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목적으로 인해 우리의 자연은 무자비한 살육을 당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강이 흘리는 눈물이 가슴에 고여 든다. 그리고 피멍 한 덩어리가 들어와 박히고 있다.

씁쓸하고 무거운 가슴을 부여잡고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고달사지로 향한 발걸음이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위치한 고달사지는 사적382호 지정된 폐사지이다.

산골짜기 마을에 어찌하여 이리도 웅장한 대가람의 터가 남아있는 것일까? 이 절은 어찌하여 폐사지가 되어 이렇게 황망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고달사지를 접어들며 느꼈던 첫번째 의문이요 소감은 무상이었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비호를 받던 사찰로 그 때문에 대가람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고달사(高達寺). 고달사의 고달이란 이름은 원래 이곳에 있던 석물들을 만들던 석공의 이름이었다고 전해진다. 고달이란 석공은 이 절을 이루는데 혼신을 다 받쳤고 그 때문에 자기 가족들이 굶어죽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절을 이루고 나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고, 훗날 깨달음을 얻어 큰스님이 되니, 절 이름이 고달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고달사지를 돌아보면서 이런 전설이 남을 만도 하지 싶었다. 원종대사혜진탑의 귀부와 이수, 원종대사혜진탑, 고달사부도탑 등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된 석물들을 보며 받은 느낌이다.

왕실의 비호로 100여년간의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대략 9세기 말부터 10세기 말까지다. 전성기때인 고려초기에는 인근 30리가 모두 절 땅이었다고 전한다. 또 수백 명의 스님이 도량에 넘쳤으니 고달사를 찾는 불자들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하긴 지금 남은 절터의 크기도 그렇고 돌로 깍아 만든 식수대의 규모만 해도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영원한 불국정토를 꿈꾸던 고달사는 훗날 어떤 이유로 소실되어 폐사가 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전해지는 말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모두 전화로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고달사지의 최상부를 지나면 작은 절집이 나타나기 시작을 한다. 현재의 고달사다. 법당 하나와 산신각이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작은 절집. 과거의 고달사의 영화는 간데없고 조립식 건물 두동이 전부인 지금의 고달사가 혜목산 기슭에서 과거의 영화를 꿈꾸고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셨던 석주스님의 제자인 도윤스님이 주지로 계시면서 고달사의 복원불사를 준비 중이라고 보살님 한분이 전한다.

이 고달사는 도윤스님이 꼭 복원을 해야한다는 석주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십여년 전 이곳에 들어와 작은 절집을 짓고 정진을 하다가, 올해부터 복원불사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존 당시부터 이곳 고달사지를 발굴하고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한 일들을 설명하던 입간판도 고달사지 입구에 세워져있었는데 해가 지나고 나서 다시 찾아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혹시나 이 역시 편향된 종교적 시각으로 인해 없애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을 그저 피해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몇 차례의 발굴이 있었지만 계획된 발굴마저 요원해 보인다. 고달사지의 전체 복원이 아니라 고달사지와 관계없이 지금의 고달사 위 혜목산 자락 미륵부처님이 모셔진 자리에 새로이 법당을 짓고 고달사의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땅과 자금에서 여러 어려운 점들이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스님의 뜻대로 자그마한 절집이나마 전통사찰의 모습을 갖춘 고달사로 다시 복원되길 발원해 본다.

고달사지를 빠져나오는 길 왼편에 오랜 느티나무 고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00년을 살아온 느티나무의 그림자가 무겁고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저 느티나무는 보았을까? 저 대가람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간 이야기를.

여강변의 신륵사와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지가 돌아오는 길 내내 씁쓸한 여운으로 기억 속에 스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