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거인이
엄마에게 오지 못하도록
아기는 도깨비 친구들이랑
밤 사이 뚝딱뚝딱
튼튼한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고
엄마는 파리해지셨습니다.
죽음의 거인이
엄마에게 오지 못하도록
아기는 물의 요정들이랑
밤 사이 성 밖으로
깊고 푸른 강물을 드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고,
엄마는 더욱 파리해지셨습니다.
죽음의 거인이
엄마에게 오지 못하도록
아기는 마술램프의 힘으로
밤 사이 성 안에
얼키고 설킨 미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고
엄마는 더더욱 파리해지셨습니다.
죽음의 거인이
엄마에게 오지 못하도록
아기는 혼자서
밤 사이 엄마 주위에
장난감 대포와 인형들을 울타리처럼 둘러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고,
아기에게는 이제 아무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얼마 뒤
죽음의 거인이 왔습니다.
체온은 영하 일백칠십구 도
목소리는 지하 삼천 미터 갱에서 퍼올린 듯 쉬었고
십이만 년 동안 한 번도 양보라곤 해본 일이 없는
죽음의 거인이 와서
엄마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아기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 ‘체온은 영하 일백칠십구 도’, ‘십이만 년 동안 한 번도 양보라곤 해본 일이 없는’ 그 사나이. 그 사나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눈물과 탄식이 흘러나왔던가! 그리고 그 아픔을 이겨내는 길을 가리키며 얼마나 많은 철학과 종교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말이 탄생되었던가! 죽음, 그는 삶에게 원흉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죽음, 그는 다시, 삶을 참으로 삶답게 재탄생시켜주는 전환점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