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에 시골 마을로 들어 와 집을 짓고 이름을 ‘감나무집’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제 집의 이름을 ‘감나무집’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집터 안에, 그리고 이웃 땅과의 경계쯤에 백 살쯤 되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마을의 시골 집 마당에 큰 감나무가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1983년, 저는 〈계몽사 어린이 문학상〉에 고향 감나무집에서의 추억을 동시로 형상화한 「감꽃 마을」을 비롯한 다섯 작품을 응모하였습니다. 다행히 그 작품들은 수상작(준당선)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후 5년이 흐른 1988년 봄의 어느 날 저녁, 시를 쓰고 싶은 강한 흥취가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가 그 날부터 사흘 동안 수십 편의 동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의 다섯 편과 그것들을 합치고, 거기에 긴 산문시 한 편을 더하여 『감꽃마을』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십여 년이 흘러, 저는 저의 문학의 출발점 중의 하나인 타고르의 시집 《초승달》에서 시상을 빌려 이십여 편의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 문득 열병처럼 찾아와 저를 휘감곤 하는 시, 또는 문학에 대한 사랑이 그때 다시 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 시들을 써두기만 하고 책으로 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것들을 기존의 『감꽃 마을』과 합쳐서 새로운 형태의 시집으로 묶어 펴내기로 하였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저에게 다시 문학을 향한 열병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터 팬』을 쓴 영국의 작가 제임스 배리 경이 어느 때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한 미망인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날 그녀의 아들은 매우 부산하게 굴었고, 그를 민망하게 여긴 부인이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그처럼 점잖지 못하게 굴면 병에 걸려요.” 그러자 아이가 냉큼 어머니의 말을 받아 말하였습니다. “엄마, 저, 병에 걸리고 싶어요!” 배리 경은 아이의 말을 매우 재미있게 여겨, 이를 로열티를 주고 사서 자신의 작품 『피터 팬』에 사용함으로써 불멸의 대사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저는 제가 문학에의 열병에 어서 빨리 걸리기를, 이미 걸렸거든 병이 내게서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남아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앓기로부터 도무지 나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열병을 즐거운 눈길로 바라보아 줄 누군가를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2007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