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는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공원법이 지난 3월 11일 국회에서 일부 개정되어 통과되었다. 자연공원법 개정이 이루어지자 조계종과 이를 보도한 불교 언론은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인하여 ‘국립공원내 전통사찰의 불사가 가능해졌다’ ‘공원문화유산지구가 신설되어 입장료 징수가 가능해졌다’고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불교신문은 ‘공원문화유산지구 지정’이 그동안 불교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사안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튀어 나오지만 따뜻한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떠나서 눈앞에 보이는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교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자랑스런 업적으로 홍보하는 이번 자연공원법 개정도 당장은 국립공원내의 불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그동안 말썽 많던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불교계를 조여 오는 또 하나의 족쇄이고 권력과의 유착을 불러올 수 밖에 없는 개악이라는 점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불교계 요구는 ‘공원문화유산지구지정’이 아니라 ‘자연공원법 적용배제’였다!
우선은 불교신문이 보도하듯이 ‘공원문화유산지구 지정’은 그동안 불교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사안은 아니다. 아니 지금 조계종 집행부에서는 줄기차게 요구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이전 집행부에서는 ‘자연공원법 적용배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즉 전통사찰이나 문화재사찰에는 ‘자연공원법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해 줄 것을 요구해 온 것이다. 이러한 불교계 입장에 대해 수용을 거부한 환경부와 국립공단측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공원문화유산지구 지정’인 것이다.
국립공원에 위치한 사찰을 한 번 보자. 우선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예전의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또 전통사찰이라면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전통사찰보존구역’으로 지정이 된다. 위치한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라면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더해 앞으로는 자연공원법에 의해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이 된다. 사찰 하나를 놓고 3-4개의 법에 의해 각기 다른 명칭의 구역이 지정되는 것이 과연 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종단의 전 집행부가 자연공원법 적용배제와 개발제한구역 적용배제를 주장한 것은 이러한 이중삼중의 규제를 없애자고 한 것인데 이제 와서 ‘공원문화유산지구’라는 새로운 지구 지정을 신설한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또한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하여, 이곳에서는 불교의 의식, 승려의 수행, 생활과 신도의 교화를 위한 시설 및 그 부대시설의 신축, 증축, 개축, 이축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이는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된 사찰 경내지에서 불사가 일부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사실 무의미하다. 문화재 사찰의 경우에는 이미 문화재보호법 제5조 제1항에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화재법을 우선 적용한다고 되어 있어 자연공원법의 조항은 무의미하다. 또한 전통사찰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9조 제5항의 제1호에 보면 전통사찰주지가 전통사찰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으면 자연공원법에 의해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제조항이 이미 있다.
그런데 이 의제조항에 의거하여 허가를 받는 자연공원법 제23조의 제1항의 제1호에는 건축물이나 그 밖의 공작물을 신축·증축·개축·재축 또는 이축하는 행위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의제조항을 불사에 한정하여 자연공원법에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오히려 전통사찰의 건축행위 범위를 축소해 놓은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내 땅 들어오려면 돈 내라는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징수는 더 큰 비난을 불러올 것이다
조계종이 자연공원법 개정에 대해 홍보하는 것 중의 또 하나가 ‘공원문화유산지구지정’으로 입장료를 징수하게 되어 있어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문화재입장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하고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는다고 입장료 논란이 해결될 수는 없다.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는 쉽게 말해서 문화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절 땅에 들어가면 모두 입장료를 받겠다는 말이다. 등산을 하기 위해서 절 땅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는 문화재입장료를 받아서 옥신각신했지만 이제는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을 해서 입장료를 받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모양인데 이러한 행위를 수긍할 국민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걱정이 된다.
철 없는 아이들도 아니고 자기 땅이라고 줄을 쳐 놓고 지나가려면 돈을 내라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심보를 곱게 봐줄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오히려 국민들의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깊어진다. 또 절 땅이 과연 스님들이나 불교신도들만의 땅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평소에는 민족문화니 전통문화니 주장을 하면서 이럴 때는 불교 땅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모든 중생을 통섭하는 부처님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 과연 종단의 집행부 스님들은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공원이 아닌 수행공간으로서 사찰을 보존하는 진정성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공원관리청이 전통사찰주지의 의견수렴을 명문화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공원관리청과 협의를 하지 않으면 불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사찰의 환경개선에 관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국고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홍보하는데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불교계의 힘으로 불사를 하자는 자성과 쇄신에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자연공원법이 언제부터 예외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연공원은 국가가 관리하는 글자 그대로 공원일 뿐이다. 사찰은 공원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이 담긴 곳이고, 지금도 스님들과 신도들이 수행하는 수행처이다. 따라서 전통사찰이나 문화재사찰은 공원을 관리하는 자연공원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문화재보호법, 전통사찰의 보존과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 된다.
이미 국회에서 통과가 된 자연공원법 개정에 대해 불교계가 눈 앞의 작은 이익에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의 민족문화유산과 부처님 가르침이 살아 숨 쉬는 수행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다시 개정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STRONG>전 조계종 총무원장 종책특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