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부터 소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여러 가축 중에서도 소는 더욱 중요했고, 그만큼 정도 들었다. 순하고 순한 눈을 가진 소는 무거운 등짐 불평 없이 실어서 날라주었고, 묵묵히 논밭을 갈아주었다. 어디 그 뿐이랴. 살과 뼈와 가죽, 심지어 꼬리와 내장까지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신라의 지증왕은 3년(502) 3월에 농사를 권장하면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도록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것이 우경(牛耕)의 시초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또 신라 노례왕(유리왕, 24-57) 때에 보습이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우경과 관련이 깊은 농기구다.
중국에서는 기원 전 3세기에 우경이 일반화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우경도 보다 일찍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기에 502년의 그것은 국왕이 국가적으로 권장했던 정책을 의미할 것이다.
백제 온조왕 25년(7) 2월. 한성의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았는데, 머리 하나에 몸은 둘이었다. 일관(日官)은 말했다. 대왕이 이웃나라를 병합할 징조라고. 신라 파사왕 5년(84) 5월에 고타군주(古陁郡主)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고, 경덕왕 2년(743) 3월에는 주력공(主力公) 집의 소가 송아지 3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혜공왕 2년(766) 2월, 양리공(良里公)의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다리가 다섯 개였고, 하나는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상은 모두 <삼국사기>에 전하는 소와 관련된 특이한 기록들이다. 소와 관련된 지명도 적지 않았다. 우두주(牛頭州), 우두산(牛頭山), 우잠성(牛岑城), 우산성(牛山城), 우명산성(牛鳴山城), 우곡(牛谷) 등등.
소가 전쟁에 동원되어 수레를 끄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신라 장수 김유신 등은 우마가 끄는 수레 2천여 척에 군량을 싣고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당군(唐軍)에게 수송하는 작전을 펼친 바 있다. 661년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의 한겨울에. 급히 퇴각할 때는 북과 북채를 모든 소의 허리와 꼬리에 매달아 뛸 적마다 소리를 내게 하여 마치 많은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당의 행군총관(行軍總管) 설인귀(薛仁貴)가 신라 문무왕에게 보낸 서신중에는 ‘신라왕은 소 잡고 술 빚어 당나라 군사를 먹이지도 않았다’고 트집 잡기도 했다. 소는 죽은 뒤에도 가죽을 남겨, 멋진 가죽 신발이 되기도 했고, 북이 되어 울리기도 했다.
<삼국유사)의 소 이야기는 대개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 불경을 실어 나른 소가 그 공덕으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다. 사복(蛇福)의 어머니는 옛날 원효와 사복이 경을 실어 나르던 암소였다고 했다. 8세기 중반 경 부석사에도 소가 있었다. 미처 계(戒)를 받지 못했던 사람이 이 절의 소로 태어났지만, 그래도 이 소는 불경을 싣고 가다가 불경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귀진(貴珍)의 집 종으로 태어날 수 있었는데, 바로 욱면(郁面)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부지런히 염불하여 서방정토로 왕생(往生)했다. </span>
혜공왕 2년(766) 무렵,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속리산을 향해서 가고 있을 때다. 도중에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다. 그 소들이 율사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소달구지를 탄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와 물었다.
“무슨 이유로 소들이 스님을 보고 우는 것입니까? 또 스님은 어디서 오십니까?”
진표가 답했다.
“나는 금산사의 진표인데, 내가 일찍이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미륵과 지장 두 보살로부터 친히 계법(戒法)과 진생(眞栍, 즉 簡子)를 받았기에 절 지을 곳을 찾으러 오는 길입니다. 이 소들은 겉으로는 어리석지만 속은 현명하여, 내가 받은 계법을 알고 불법을 중히 여기므로 무릎을 꿇고 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짐승도 오히려 이런 신심이 있는데, 하물며 저는 사람으로서 어찌 신심이 없겠습니까?”
그들은 즉시 쥐고 있던 낫으로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 진표율사는 자비한 마음으로 다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주었다.
사람보다도 먼저 진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그래서 자신에게 멍에를 채웠던 그 사람들을 불법으로 인도했던 소, 그 소는 분명 현명해서,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을 무색하게 한다.
원효(617-686)는 소를 타고 다닌 적이 있다. 그가 소의 두 뿔을 이용하여 그 위에 필연(筆硯)을 걸어 놓고, 그 소를 타고 다니면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집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각승(角乘)으로 불리기도 했으니까. <금강삼매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각(覺)이고, 각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이각(二覺)으로 설명된다. 깨달음에 대한 설명인 이각(二覺)을 소의 두 뿔 이각(二角)과 연결시킨 것이 묘하다. 원효가 타고 다녔던 소는 깨달음의 소였던가? 불교에서는 수행을 소 기르는 일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함경(阿含經)>의 목우(牧牛) 12법과 곽암(郭庵)의 십우도송(十牛圖頌)이 그렇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살던 성북동의 집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 의미다. 자기의 본심(本心)인 소를 찾는 일, 그것이 심우(尋牛)니까.
오늘도 광화문에는 미국 소 문제로 요란하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쇠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던 소가 순식간에 해체되어 나무토막처럼 잘리는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도 소의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더구나 이런 판에 ‘심우’ 운운의 화두를 꺼내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그런데 백제 법왕(法王)은 즉위년(599년) 12월에 살생(殺生)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다.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거두어서 놓아주고, 또 고기 잡는 기구와 사냥하는 기구들을 불살랐다. 이를 두고 일연(一然)은 성군(聖君)의 자비가 사해(四海)에 떨쳤다고 찬양했다. 오늘날에도 법왕의 이런 통치가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법왕은 종교적 원리주의자였을까? 만약 오늘 누가 이런 주장을 한다면 역사를 천 년 전으로 되돌리는 엉뚱한 짓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은 공기만 마시며 살 수는 없다. 물만으로도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들 삶이란 많은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 영위된다. 인류가 까마득한 옛적부터 덫을 놓고 거물을 던져온 이유다. 우리들 식탁에는 고기와 생선과 우유와 달걀이, 그리고 야채와 과일 등이 오른다. 멀리 칠레산 포도와 미국산 쇠고기, 그리고 중국산 배추까지 우리들 매일의 식탁에 오른다.
미국의 소떼들이 태평양을 헤엄쳐 오듯 밀려오리라고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는데, 지금은 엄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육식을 금하기란 어려운 일. 탐욕으로만 먹지 않아도 그나마 다행이다. 죽어서 태평양을 건너온 소, 그 쇠고기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의문이다.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도 쉽지 않은데, 쇠고기를 먹고 소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어차피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을 음미해 보자.
그대 이빨로 사과를 깨물 때면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리라.
그대 씨앗은 나의 몸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그대 미래의 싹은 나의 심장 속에서 꽃 피리
그리하여 그대 향기는 내 숨결이 되어 우리 함께 온 계절을 누리리라
7세기 중엽쯤의 신라 항사사(恒沙寺)에는 고승 혜공(惠空)이 살았다. 젊은 원효는 자주 혜공을 찾아 여러 의문을 풀곤 했다. 어느 날 두 스님은 절가의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반석에 앉아서 변을 보았다.
혜공이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리키면서 하는 말. “너는 똥을 누고, 나는 고기를 누었다(汝屎吾魚).” 이로 인해 오어사(吾魚寺)로 불렸던 이 절은 지금도 포항에 전해온다.
우리가 배어 무는 사과 하나, 그것의 씨와 싹과 향기가 우리의 몸을 통해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시인의 마음과 잡아먹은 물고기를 다시 살려놓았다는 스님의 도력은 같은 문맥이다. 어떤 사람도 하루 세끼 밥 먹고살기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식탁에 오른 희생물이 냄새나는 변으로만 배설되지 말고 인생의 향기로 되살아나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죽은 물고기를 살려내고 사과의 향기를 온 몸으로 풍겨내는 일은 진정 어렵다. 그래서 굉지 정각(宏智正覺 : 1091-1157)의 <종용록(從容錄)> 중의 다음 구절을 되뇌어 볼 뿐이다.
巖華之粉兮蜂房成蜜 바위 꽃의 가루는 벌집에서 꿀이 되고
野草之滋兮麝臍作香 들풀의 수액은 사향노루 배꼽에서 향기가 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