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교(三敎)는 마치 솥의 세 발과 같아서 어느 하나가 없어도 안 됩니다. 지금 유교와 불교는 왕성한데 도교는 성하지 못합니다.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구해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옵소서.”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2년(643) 3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왕에게 건의한 내용이다. 이 무렵 고구려에 도교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자를 자기의 조상으로 받들면서 도교를 숭신(崇信)했던 당나라의 고조(高祖)는 영류왕 7년(624)에 고구려에 도사(道士)를 파견했다. 그는 도교의 신상 천존상(天尊像)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의하도록 했으며, 고구려에서는 왕을 비롯하여 수천 명이 그 강론을 들었다. 이로부터 20여 년 후 연개소문은 도교를 불교나 유교처럼 왕성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교계와 연결된 기존 정치세력의 약화라는 정략적 의도를 숨긴 채. 그래서 보장왕에게 이런 건의를 했던 것이다.

642년(영류왕 25) 10월. 연개소문은 대신(大臣) 100여 명을 죽이고 영류왕도 잔인하게 시해(弑害)했다. 그리고 왕의 동생 아들 장(臧)을 왕으로 세웠는데, 곧 보장왕이다. 연개소문은 스스로 막리지(莫離支)가 되어 나라 일을 마음대로 처리했다. 이처럼 그는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다. 이로부터 6개월도 되기 전에 그는 도교의 육성을 도모했다. 국왕은 반대할 이유도 힘도 없었다. 보장왕이 당나라에 도교를 청하자, 당 태종은 숙달(叔達) 등 도사(道士) 8명과 <도덕경>을 보내주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찰을 빼앗아 도관(道館)을 삼고 도사를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도사를 높여 유사(儒士)보다 위에 있게 했다. 국가적 후원을 받고 있던 도사들은 국내의 산천을 돌며 압승술(壓勝術)을 행했다. 옛 평양은 지세가 반월성(半月城)이므로 도사들은 주문을 읽어 남하(南河)의 용에게 명령하여 성을 더 쌓게 하여 만월성(滿月城)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조천석(朝天石) 같은 영석(靈石)도 깨뜨렸다.

사찰을 빼앗아 도관을 삼는 일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나선 승려가 있었다. 그는 보덕이었다. 이 무렵 보덕은 반룡산(盤龍山) 연복사(延福寺)에 있었는데, 도교가 불교에 대치함으로써 국운이 위태롭게 될 것을 걱정했다. 여러 차례 왕에게 간했다. 그러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왕이 무슨 힘으로 연개소문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겠는가? 연개소문은 성격이 잔인하고 포악했다. 칼을 다섯 자루나 차고 다니는 그를 좌우 사람들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고, 그는 말을 타고내릴 때 귀인과 무장들을 엎드리게 하고, 이를 밟고 오르내렸다. 밖으로 나갈 때면 반드시 대오를 정렬시키고 인도하는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면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숨었다. 이처럼 연개소문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비판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더구나 도교를 구해서 사람들을 가르치자고 국왕에게 건의했던 연개소문이 실권을 쥐고 있던 상황에서. 그래도 보덕은 말했다. 이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그러나 보덕의 건의는 번번이 묵살되었다.

보덕은 당시의 대표적 고승이었다. 그는 어느 노승(老僧)의 청으로 <열반경(涅槃經)>을 강의하기도 했고, 대보산(大寶山) 바위굴에서 선관(禪觀)을 닦기도 했다. 신인(神人)의 지시에 의해 7층 석탑을 땅 속에서 찾아내고 그곳에 영탑사(靈塔寺)를 짓고도 했다. 그에게는 뛰어난 제자가 11명이나 있었다. 무상(無上), 적멸(寂滅), 의융(義融), 지수(智藪), 일승(一乘), 수정(水淨), 사대(四大), 개원(開原), 개심(開心), 명덕(明德) 등이 그들이다. 원효(元曉)와 의상(義相)도 일찍이 보덕의 강하(講下)에서 <열반경>과 <유마경> 을 배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고대산으로 옮겨온 이후의 일일 것이다. 훗날 최치원(崔致遠)과 김부식(金富軾)은 보덕화상의 전기를 지었다. 그리고 의천(義天), 이자현(李資玄), 박춘령(朴椿齡), 이인노(李仁老), 이규보 등 고려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은 시를 지어 그의 덕을 기렸고, 특히 의천, 박춘령, 이규보 등은 보덕을 성인(聖人) 혹은 성사(聖師)로 존칭했다. 한국고대 승려 중에서 성사로 존칭된 경우는 원효와 보덕이다. 보덕은 분명 당대의 대표적인 고승이었다.

보장왕과 연개소문의 후원을 받고 있던 도교는 날로 성했지만, 오히려 불교는 위축되어 갔다. 이러기를 7․8년, 어느 날 보덕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설화는 보덕의 신통력을 강조한다. 그가 거처하고 있던 방장실(方丈室)을 공중에 날려서 밤사이에 옮기는 신통력이 있었다고. 이규보가 전주의 경복사(景福寺)를 방문했던 1200년(신종 3)까지도 그 절에는 함흥의 반룡산으로부터 전주의 고대산까지 1천여 리를 공중에 날려서 옮겼다는 비래방장(飛來方丈)이 그대로 있었고, 보덕성인(普德聖人)의 영정(影幀)도 봉안되어 있었다.

고승의 신통력은 도력(道力)이나 법력(法力)과도 같은 것. 보덕의 명성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나 고구려까지도 알려져 있었을 것이기에 이런 설화가 전해졌을 것이다. 마치 비행기인양 방장을 공중에 날려서 옮기던 보덕의 신통력을 확인할 길이야 없지만, 그가 연개소문의 횡포를 피해서 고구려를 떠나 전주 고달산으로 거처를 옮겼던 것은 역사적 사실임이 분명하다. 보장왕 9년(650) 6월의 일이었다. 물론 보장왕 26년(667) 3월 3일에 옮겨왔다는 기록도 있다. 의천은 완산의 고대산이 백제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규보는 고대산이 신라에 소속되었던 지역으로 기록했다. 이규보의 경우, 이주의 시기가 백제 멸망(660년) 이후인 667년이라고 했기에 신라 완산주라는 표현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650년에 이주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시의 완산주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다.

한 국가가 쇠망하는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직간접의 여러 원인이 누적되면 강성하던 나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고구려 멸망의 여러 원인 중에서 불교와 도교의 갈등을 빼기는 어렵다. 종교적인 갈등은 국가의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 사찰을 빼앗아 도관으로 삼는 횡포를 저지르고, 당대를 대표하는 고승의 건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백성의 원성을 사는 전제자가 나라를 마음대로 할 때, 그 나라는 위태로웠다.

고구려에서는 100년 전에도 고승이 신라로 옮겨간 일이 있었다. 곧 혜량법사(惠亮法師)의 경우다. 양원왕 7년(551 : 진흥왕 12년) 신라의 거칠부(居柒夫) 등이 고구려를 공격해 와 죽령(竹嶺) 밖 고현(高峴) 안의 10군을 빼앗겼을 때다. 혜량법사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거칠부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멀지 않으니, 그대의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

젊은 날 몰래 고구려에 잠입, 혜량의 강의를 들었고, 훗날 장수가 되어 고구려를 공격하는 일이 있게 될 경우에도 스승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로 맹서한 바 있는 거칠부는 스승 혜량을 정중히 모셨다. 진흥왕은 혜량을 맞이하여 승통(僧統)으로 삼았고, 처음으로 백좌강회(百座講會)와 팔관회(八關會)를 개설하기도 했다. 혜량이 신라 최초의 승통이 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또한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승이었다.

이처럼 고구려에서는 일찍이 혜량이 신라로 옮겨갔고, 백년 후에는 보덕이 자신의 거처를 백제로 옮겼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떠나는 나라는 위태롭다. 그것도 당대를 대표하던 종교 지도자가 고국 땅으로부터 추방되듯 떠나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일연(一然)이 읊은 찬(讚) 중의 구절이다. 용이 떠나가 버린 강물은 쉽게 마를 수 있다. 국왕의 잘못을 직간할 수 있고, 나라의 내일을 내다볼 수 있으며, 많은 제자를 거느릴 수 있었던 보덕, 그가 떠나가 버린 고구려는 오래 지탱하지 못했다.

김상현(동국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