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원효(元曉 : 917-618)는 이렇게 외치며 거리를 다녔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 받칠 기둥을 다듬고자 한다”고. 상식 밖의 일이었다. 수도승이 저자거리를 헤매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당대의 이름난 고승 원효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리겠다고 거리에서 외치고 다니다니. 도대체 ‘자루 빠진 도끼[沒柯斧]’는 무엇이며, ‘하늘 받칠 기둥[天柱]’은 또 무슨 말인가? 천주는 왜 다듬는가? 곧 하늘 무너지는 종말의 날이라도 온다는 말인가? 그 높이가 3천 리나 되는 곤륜산의 구리기둥이 하늘에 닿았기에 이를 천주라고 했다는 이야기야 <신이경(神異經)>에도 있다. 그러나 하늘 떠받칠 기둥을 다듬겠다고 큰소리 치고 다니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디 상상초자 가능한 일인가? 기둥으로 하늘을 떠받치는 일이.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한 사람은 있었다. 구만 리 장천(長天)을 날고자 하는 대붕(大鵬)의 꿈, 그 꿈을 단번에 눈치 챈 대인(大人)이 있었다. 바로 국왕이었다. 세상을 구제하려던 꿈을 젊은 날부터 가슴에 품었던 태종무열왕, 그는 재세(濟世)의 주인공을 자임했기에 구룡대사(丘龍大師) 원효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었다. 태종은 말했다. “아마도 이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구나. 나라에 대현(大賢)이 있으면 그보다 더 큰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태종은 이렇게‘도끼’를 귀부인으로, ‘하늘 받칠 기둥’을 대현으로 해석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판단했다. 대현은 나라에 많은 이로움을 줄 것이라고. 일찍부터 신라의 지도자들은 사람 알아보기 어려움을 근심했다. 그래서 화랑도를 모아 풍류도(風流道)를 수행하도록 하기도 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단번에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 김춘추는 그런 눈을 가진 왕이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만들 수 있다는 원효, 그는 자신이 그 천주의 소유자임을 자인(自認)했고, 이 위대한 자인을 알아준 사람은 무열왕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지음은 곧 지기(知己)다.

왕은 홀로된 요석궁의 공주를 생각했다. 그래서 궁중의 관리에게 명했다. 원효 스님을 요석궁으로 맞아들이라고. 칙명을 받은 궁리가 원효를 찾고 있을 때, 남산(南山)으로부터 내려와 문천교(蚊川橋)를 건너던 원효와 궁리가 만났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모기네다리 위에서.

궁리. 스님을 요석궁으로 모셔가려 한다. 원효. 속으로야 바라던 바지만, 그래도 명분도 없이 따라간다면 고승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때 원효는 일부러 다리 난간을 잘못 밟아 물에 빠져 옷을 적신다. 궁리. 스님에게 간곡하게 말씀 드린다. “잠시 가셔서 옷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효. 젖은 옷을 입은 채 궁리를 따라 요석궁으로 향한다. 완전히 스타일 구겼다. 하늘 받칠 기둥 운운하며 기고만장하던 대장부의 기상은커녕 물에 빠진 초라한 모습이다. 궁리. 원효스님을 요석궁으로 인도했고, 그리고 국왕에게도 보고했다. “칙명을 받들어 원효스님을 요석궁으로 잘 모셨습니다.” 왕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번졌다. 옷을 말린다는 핑계로 대사는 그곳에 머물렀고, 옷이 다 마른 뒤에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벗었던 승복도 다시는 입지 않았다. 요석궁의 원효는 이렇게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봄꿈이었다. 공주는 아이를 가졌고, 설총(薛聰)이 태어났다. 훗날 설총은 신라 십현(十賢) 중의 한 분이 되었으니, 나라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었다.

당시의 이름난 고승 원효와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만나 설총은 낳았던 일은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이야기는 변하고 또 변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원효와 요석공주의 아름다운 인연과 설총의 탄생, 그리고 원효의 환속(還俗)이었다. 태종무열왕은 654년으로부터 660년까지 7년간 왕위에 있었다. 이 무렵 원효는 37세에서 43세였다. 원효는 40세를 전후한 시기에 요석공주를 만난 셈이다. 무열왕 김춘추는 김유신의 작은 누이동생 문희(文姬)와 결혼하여 법민 등 일곱 아들을 낳았다. 왕에게는 또 한 사람의 실명부인(失名夫人)이 있어서, 차득공(車得公) 등의 세 아들과 3명의 딸을 낳았다. 셋째 딸 지소(智炤)는 무열왕 2년(655)에 김유신에게 시집보냈고, 고타소랑(古陀炤娘)이라는 딸은 대량주의 군주 품석(品釋)의 처였다. 요석공주는 무열왕의 맏딸이거나 둘째 딸이었다.

무열왕에게는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구제하려는 큰 꿈이 있었다. 꿈의 실현을 위해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의 정략적인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효와 요석공주와의 만남도 비슷하다. 김유신은 김춘추의 옷고름을 일부러 떨어뜨렸고,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셨다. 그리하여 김유신과 김춘추와 원효는 끈끈한 유대감으로 맺어졌다. 이렇게 당대의 대표적인 정치가와 장수와 사상가는 함께 인연을 맺었다. 그렇다고 원효도 정치적 야망 때문에 요석궁으로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에게 요석궁은 세속으로 향하는 문이었을망정 권력의 상징은 아니었기에.

“출세법(出世法)이 세간법(世間法)을 치유하는 법이라면, 출출세법(出出世法)은 출세법을 치료하는 법이다.” 원효는 <섭대승론(攝大乘論)>의 이 구절에 주목하면서 출세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출가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재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대목을 “도속(道俗) 이변(二邊)의 상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요석궁에서 승복을 벗어버렸던 원효, 그는 다시 승복을 입지 않았다. 소성거사(小性居士)로 자처하며 걸림 없는 자유인으로 살았다. 환속했다고 세속에만 파묻힌 것도 아니었고, 처자식에 집착하지도 않았지만 그들 곁을 떠나간 버린 무책임한 사내도 아니었다. 그는 재가와 출가, 그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살았다. 스스로 하늘 떠받치는 기둥인양 기고만장하던 그가 소성거사로 자처했다고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는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서도 풀잎처럼 낮출 수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