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도 행각, 젊은 구도자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를 묻는다는 『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진리의 한 구절 들기 위해서 그는 칼산도 기어오르고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구도자였기에. 보살도 만나고 비구도 만났으며, 외도도 만나고 신도 만났으며, 여인도 만나고 소년도 만났던 구도자 선재, 차례로 선지식을 순방한 그가 마지막 쉰다섯 번째로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미륵은 선재에게 보리심의 공덕에 대해서 자상하게 설했다.“보리심은 큰 바람이다.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으니까. …… 보리심은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므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공덕과 동등하다. 보리심에 의해 모든 보살은 실천으로 발을 들여놓고, 모든 부처님들은 이것에 의해 깨달음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 마음을 구도심이라고 하고 보리심이라고도 한다. 출가 구도자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세속에 살아도 보리심은 때 묻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구도자는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보리심을 등불 삼아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가로 지른다. 초기 신라의 많은 승려들도 중국을 향해 망망대해를 오고갔다. 구법(求法)을 위해서. 6세기의 안함(安含), 각덕(覺德), 명관(明觀), 안홍(安弘), 지명(智明), 원광(圓光), 7세기 전반의 담육(曇育), 명랑(明朗), 자장(慈藏) 등은 모두 중국에서 구법하고 귀국했다.

중국을 거쳐 서역으로 갔던 구법승도 있었다. 신라의 구법승들은 7세기 전반부터 히말라야산을 넘었고, 천축의 여러 성지를 순례했으며, 나란타사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당나라의 의정(義淨 : 635-713)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에 구법승 61명의 전기를 수록했는데, 이 중에는 신라의 구법승 7명과 고구려 승 1명이 포함되어 있다. 아리야발마(阿離那跋摩) 혜업(慧業) 현태(玄太) 현각(玄恪) 혜륜(慧輪) 현유(玄遊)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전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고려중기의 각훈(覺訓)은 『 해동고승전』에 이들의 전기를 수록했고, 일연 또한 󰡔삼국유사󰡕에 귀축제사(歸竺諸師), 즉 천축으로 간 여러 스님들이라는 제목으로 서술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구법고승전』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석아리나발마는 신라 사람인데, 처음에 불교를 구하려고 일찍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불적을 순례하다가 용기가 더욱 났으므로 정관(貞觀)년간(627-649)에 장안을 떠나 5천축에 이르렀다. 나란타사에 머물러 율장과 논장을 많이 열람하고 패엽에 베껴 썼다. 그러나 고국에 몹시 돌아오고 싶어 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나이 70이 넘었다. 그 뒤를 이어 혜업․현태․구본․현각․혜륜․현유와 또 다른 이름이 전하지 않는 두 법사가 있었다. 모두 자신을 잃고 불법을 따르며 석가의 교화를 보려고 중인도로 갔던 것이다. 그러나 중도에서 혹은 죽고, 혹은 생존하여 그곳 절에 거주한 이도 있었지만, 결국은 신라와 당나라에 돌아오지 못하고 오직 현태스님만이 당나라에 돌아왔는데, 또한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다.

신라 승려들의 서역으로의 구법 활동은 7세기 전반으로부터 보인다. 현각과 혜업과 아리야발마는 정관년간(627-649)에 서역으로 갔는데, 당나라 현장(玄奘)이 구법한 시기와 거의 같은 때다. 그리고 현태는 영휘(永徽)년간(650-656)에, 혜륜은 인덕(麟德) 2년(665)에 각각 서역으로 향했다.

7세기 전반으로부터 중반에 이르는 이 무렵은 대개 신라의 선덕여왕대로부터 문무왕대에 해당하며, 한반도가 통일전쟁에 휩싸여 있던 때다. 그러나 그 어떤 어려운 상황과 조건도 이들 구도자의 앞길을 막지 못했던 것 같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구법승은 파로사국에서 병사함으로서 그들의 염원을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현각은 대각사를 참배한 뒤에 병을 얻어 사망했다.

70여 세의 아리야발마와 60세 정도의 혜업은 나란타사에서 입적했다. 40여 세의 혜륜은 천축에 살고 있었고, 현태는 두 차례나 천축을 넘나들었다. 이들은 불교의 성지를 두루 순례했고, 나란타사 등지에서 불법을 공부했다. 아리야발마와 헤업은 나란타사에서 강의를 듣고 불서를 읽었고, 여러 불경을 사경했다. 도희(道希)와 동행했던 현태도 나란타사를 경유했을 것이다.

일연은 신라의 서역구법승을 다음과 같이 찬송했다.

天竺天遙萬疊山 천축의 하늘은 멀고멀어 만첩 산으로 갇혔는데,

可憐遊士力登攀 가상하도다. 힘써 오른 유사(遊士)들이여！

幾回月送孤帆去 몇 번이나 저 달 따라 외로운 배 떠나갔지만,

未見雲隨一杖還 구름 따라 돌아오는 이 보지 못했네.

눈 덮인 첩첩산중을 기어오르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을 해골을 이정표 삼아 가야하는 천축의 길, 그 구법의 길을 갔던 7세기의 신라 구법승 고국으로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들의 구도와 모험의 정신은 8세기 중반 혜초(慧超)와 원표(元表) 등에게로 계승되었고, 21세기 젊은 구도자의 열정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김상현(동국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