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 9호관 5층에 있는 제 연구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침 9시에서 9시 30분 정도 됩니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고, 또 어떤 날은 걷기도 합니다. 걸어도 30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세 가지를 켭니다. 불, 난로, 그리고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메일을 확인합니다. 아내가 꼬박꼬박 메일을 보내주고 있어서 읽어보고, 간략하게 답장을 씁니다. 다른 분에게 오고 가는 메일도 물론 좀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12시까지는 공부를 합니다. 요즘, 아니 12월 중순부터 쭉 집중해서 하는 공부는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틸락과 간디의 해석 비교』라는 주제입니다만, 2001학년도에 학진으로부터 선도연구자로 선정된 과제입니다. 3월말까지 결과보고를 해야 되기에 바짝 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바가바드기타』라는 힌두교 성전을 읽고, 쓰고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한번 상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12시쯤 되면 아, 이제 점심시간입니다.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요즘은 춥기도 하거니와 방학이어서 도시락은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메뉴 선택의 여지가 하나 줄었습니다. 주로 학교 식당에 갑니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여기 일본에 오기 전에 세운 서원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약 안 먹고 침 안 맞고 1년을 살다가 한국에 가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딱 한번 체해서 오노다 선생 수업을 빠진 일이 있습니다만, 실로 그 원인은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채 밥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은 도시락을 샀는데, 밥이 차더라구요. 그래 “역시 도시락은 밥이 따뜻해야 하는데 ---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었거든요.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에 덜컥 체해서 애 먹었습니다. 물론 약도 안 먹고, 침도 안 맞고 버텼습니다만. 일본 아유르베다학회에 갔을 때 어떤 의사가 말하더군요.

“병도 감사하면 낫는다.”

참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이 말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루나 존자의 결의를 다만 굳건한 포교의지로만 해석해 왔는데,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을 부루나 존자는 보여주었던 것이지요.

점심을 먹고 나면 제 발걸음은 대개는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지하 1층에서 일본에서 나온 회갑논총들을 직접 목차를 확인하여 골라 들고서는 3층으로 올라가서 복사를 합니다. 지금 여기서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한국으로 갖고 가서 공부할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귀국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로 딱 5개월 1주일 남았습니다. “너무 일찍 귀국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너무나 자료가 많아서 단 시일 안에 다 하기에는 너무 바쁘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을 다 어떡한단 말인가!”

내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불쑥 불쑥 듭니다. 실로 여념(餘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복사한 자료들은 분류해서 철해 놓습니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서 공부를 합니다. 일 주일에 이틀은 캐나다 친구 앤디(Andy)가 옵니다. 제가 해놓은 영어 작문을 감수해서 고쳐주고, 영어로 대화를 조금 나누고 돌아갑니다. 아르바이트지요. 1시간에 2000엔을 줍니다. 얼마 전에 프린터기를 샀기에 지금까지 한 것을 다시 입력해서 출력한 뒤에 다시 한번 더 수정하고 있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나 5시 되면 퇴근을 합니다. 그러기 전에 또 이 메일을 확인해서 답장을 할 것이 있으면 답장을 하고, 편지를 쓸 일이 있으면 쓰기도 합니다. 집에 오면서는 수퍼에 들릴 때가 많습니다. 이틀에 한번 정도는 갑니다. 먹을 것을 사야지요. 주로 채소를 사고, 우유도 사고, 과일도 조금 삽니다.

기숙사로 돌아오면 가방을 벗어놓고, 로비로 갑니다.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로비에 계신 부처님(아미타불 입상)께 절을 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무엇을 말할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저 경우에는 그저 “감사합니다”라고만 합니다. 요즘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대한 종교이다.”

『금강경』의 무주상(無住相) 개념이나 『이입사행론』의 무소구행(無所求行) 역시 마찬가지 의미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제 저는 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구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내가 완전하므로 달리 구할 것이 없다는 선적(禪的)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님이나 신이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복합되는 것 역시 가능하겠지요. 제 경우입니다. 저는 이제 우리도 부처님한테 예불 드릴 때 “부처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신 분이 의상스님이신데, 그의 『백화도량발원문』에 표명되어 있습니다. 제가 󰡐백화도량󰡑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즐겨 쓰는 이유입니다. 화엄적 관음신앙의 핵심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학교로 걸어가는 날은 아침에도 예불을 드립니다만, 자전거 타고 오는 날은 저녁에만 드리게 됩니다.

예불을 마치고서는 우편함을 확인합니다. 대개 비어있지만, 그래도 일상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가모가와(鴨川, 賀茂川)로 산책을 갑니다. 가모가와는 교토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가모가와에 산책을 다니고서부터는 “아, 깝갑하다. 어디 여행이라도 좀 다녀와야 겠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일요일까지 학교를 다녀도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가모가와에 다녀와서는 저녁을 먹습니다. 대개 6시 이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고픕니다. “아, 오늘은 뭐해 먹지?” 자취생들의 영원한 화두(話頭)입니다만, 가능하면 다양하게 시도하려고 해도, 뻔하지 않습니까? 김치찌개, 된장찌개 ----. 요즘은 카레라이스 만드는 것을 배워서, 인도카레를 가끔 해먹습니다. “유학생식”이라는 것은 맛의 조화 같은 것을 신경 쓰기보다는 가능하면 여러 가지 것들을 넣어서 “잡탕” 비슷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제 온전히 제 혼자만의 시간이 됩니다. TV를 보면서 지압 발판을 걷습니다. 많이 걸으면 1시간 정도를 걷는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요가 같은 것도 하고, 체조 같은 것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좌선을 합니다. 아, 여기서 또 제가 제 설(說)을 수정해야 겠군요. 제 책 『배낭에 담아온 인도』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2차 여행 때 보드가야에서 저는 “선은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그 의미는 “좌선을 해서 견성성불하기로 금생에 결판내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었고, 또 하나는 “선 이외의 방법론을 계발해서 수행하겠다”는 뜻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교종의 성불론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그때 했었습니다. 그런데, 금생에 화두를 타파하고 견성성불하고 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좌선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왜 선을 안락법문(安樂法門)이라고 했는가,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가 다시 좌선을 하게 된 것은 “호흡” 덕분입니다. 아니지요. 몸 때문이라고 해야겠네요.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저는 “건강 없이 수행 없고 수행 없이 성불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생활의 근본은 호흡에 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호흡은 물론 걸으면서도 할 수 있고, 누워서도 할 수 있지만 좌선하면서 하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러니 다시 좌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수식관(數息觀)을 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저 호흡을 하면서, 지식(止息)은 반드시 해나가면서, 화두를 그 위에 얹어보려고 합니다. 우리 불교계에서는 간화선이 좋으냐, 비파사냐가 좋으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논쟁의 기본적 성격은 “효과논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좋으냐”하는 문제는 학술적 논쟁의 대상영역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효과 여부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본적으로 화두든, 수식관이든, 비판사나든, 망념(妄念)을 제어하는 것, 붙들어 매는 것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성격/기능, 또는 효용은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상적․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교판론(敎判論)적 차원을 떠날 수 있다면 “간화선․비파사나 논쟁은 논쟁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런 생각도 참선 중에 한다면 다 망상이겠지요.

좌선을 마치고 나면 목욕(お風呂)을 합니다. 심지어는 아침 저녁으로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저녁에 한번만 합니다. 여기서는 꼭 해야 합니다. 그 덕분인지 감기를 안 걸리고 겨울을 넘기고 있거든요. 역시 해 보니까, 혈액순환에는 현저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때 전자동세탁기로 세탁을 합니다. 매일 하는데요. 세탁물을 방안에 널어야만 가습(加濕)이 되어서 온풍기(溫風機)를 털어놓아도 건조해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건조해지면 콧물이 나오거든요.

한 8시 됩니다. 이러한 순서들을 다 마치는 시간이 말입니다.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합니다. 역시 『기타』와 틸락, 그리고 간디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지요. 문득, 망상이 찾아들 때도 있습니다.

“아, 이것 누구한테 좀 읽히고, 같이 이야기도 하면서 수정도 하고 보완도 하면 좋을텐데 ----. 한국에 있었더라면, 학교에 있었더라면, 우리 학생들하고 수업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외로워지기도 합니다. 경허스님이 하신 말씀,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네(四顧無人)”라는 느낌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이내 망상임을 깨닫게 됩니다.

“야, 이 공부를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우선, 누군가 읽어주고 이야기해주고 하는 도반(道伴)이 없더라도, 내 자신이 정리된 생각에 맞추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먼저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 아닌가. 그럴진대 여기 다시 누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런 내적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수행/수양/수심으로서의 책읽기․글쓰기라는 내 학문의 기본적 성격을 떠올리게 되면서, 다시 저는 한없는 행복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기만족이 아니라 자기충족(自己充足)입니다. 혼자서 살지만 외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잠이 옵니다.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입니다. 그러면 잡니다. 왜냐? 잠이 오니까요. 그리고 몇 시에 일어날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여기 와서 정립한 제 “잠의 철학”은 그것을 제 몸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대개 4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일어나게 됩니다만, 어느 날은 일찍 일어나서 좌선하고 나면 또 잠이 오더라구요. 좌선 중의 혼침(昏沈)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억지로 참지 않고 또 잡니다. 생각해 보면 잠자는 순간 만큼 업을 적게 짓는 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꿈, 그것은 업을 받는 것이지 짓는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요? 그 대신 깨어있을 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지 말자,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의 양은 몸에게 맡기자, 그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8시에는 아침을 먹습니다. 여기 우리 기숙사에서 정기적으로 공동식당을 이용해서 아침을 해먹는 사람은 셋 뿐입니다. 그 중에 제가 들어갑니다. 빵은 일요일 아침이나 시간을 놓쳐서 배가 고플 때 구워먹는 비상식입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학교로 가야지요.

이게 제 근간의 “간단생활(簡單生活)”입니다. 근래의 간단생활을 통해서 얻은 깨침 하나는 가능하면 생활을 간단명료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생활이 간단하게 되면, 생각이 간단하게 됩니다. 망상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생각이 간단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2003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