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조계종의 쇄신위원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총무원에 의해 본래 뜻이 사라졌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왜곡되고 있다 한다. 불교시민사회 네트워크(불시넷)가 며칠 전 성명서를 발표하고 총무원과 쇄신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수년 내내 조계종 고위 승려들의 도박파문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1년 6개월 동안 꼬리를 물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부정선거 논란과 정권출범 이후 숱한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부적합성이 계속 거론된다.
현재 2기 내각이라는 국무총리후보와 각 부처장관, 수석들의 부정부패, 무자격성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 기강과 사회 안정을 여지없이 흔들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무엇인가. 정치와 종교는 두말할 것 없이 인간과 생명 나라와 사회를 수호하고 안정시키는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 국가와 국민수호를 위한 물리적 공권력이라면 종교는 자율적·자발적 정신문화의 힘이다. 그런데 정치가 부패하고 혼란하든지 종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혹세무민하거나 타락한다면 나라의 위기와 사회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자명하다.
국민들이 정치에 의지하고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위탁하는 것은 민화안국의 민주주의와 국방을 위해서이며 많은 국민들이 종교를 믿고 종교인을 따르는 것은 행복한 삶과 자유로운 영혼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정치가 국민을 억압하고 내환외우를 막지 못한다면 정치 및 정부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혁신할 수밖에 없으며, 종교가 또한 인류사에 나타난 것처럼 절대자를 팔아 치부하고 권력과 유착해서 시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대중들은 그런 종교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저항하고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나 종교집단의 적폐는 허용해서는 안 되고 청산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힘과 기득권을 쥔 정치, 종교인의 마피아들은 막강한 조직을 이용해 대중을 항상 겁박, 기만, 탄압하는데 이골이 나 있으니 말이다.
수개월 동안 우리 국민은 우리 사회를 온통 눈물과 분노의 도가니로 만든 세월호 참사와 ‘유병언 구원파’의 행태를 지켜보았고, 또한 총리, 장관 후보자들의 파렴치한 인간군상을 보았다. 이들이 보여준 모습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혼란시키고 분열시키는 근본원인과 배경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고뇌하게 만든다.
― 견리사의의 선비정신, 공명정대, 파사현정의 불교정신
수년간 조계종 지도층의 도박, 공금횡령, 각종 추문 등의 범계 행위는 천만불자와 특히 불교지식인 집단에 큰 상처와 실망 좌절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종단쇄신을 바라는 사부대중들의 뜻과는 달리 그들 파계, 타락을 일삼는 정치승려들이 종단을 오래 장악함으로써 청빈한 승려들과 신행이 돈독한 불자들의 절망은 깊어만 가고 있다.
조선조 5백년을 지배한 유교의 선비정신은 이익을 보면 옳음을 먼저 생각하는 윤리였으나 정치 권력화 되면서 당쟁의 혼란한 이익집단으로 타락했다.
고구려, 가야, 신라, 백제, 고려의 1천5백 년 동안 정치철학을 제공해 선진국가로 만든 불교는 공명정대와 파사현정, 중도의 최고윤리가 덕목이었으나 권력에 야합하거나 굴복한 일부 정치승려들에 의해 교단이 훼손되고 민중들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참고로 1세기 전 왕조가 몰락하고 외세에 지배되던 망국의 시대에 민족과 불교를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 동안 정치, 교육, 문화, 불교사상 발전에 큰 업적을 세운 효당 최범술 스님의 삶은 후세의 귀감이며 불교선지식의 모델로 삼을 만하다.
작년 12월 문도제자 유가족에 의해 탄신 1백주년 기념 문집 자료에 의하면 효당 스님은 “나라가 망한 뒤 불교에 입문했으나 시대의 아픔이 주는 민족의 소명 앞에서 민중과 동떨어진 승려의 길만을 갈수 없었다. 항일운동에 투신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고 해방과 남북분단, 6.25 전쟁을 겪으면서 신생 한국의 기틀을 다지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헌신했다. 노년에는 원효사상의 복원, 스승 만해 스님에 대한 연구, 우리의 전통문화인 다도교육 등 종교문화사업에 매진했다.
효당 스님은 일정 때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고, 스승 만해 스님의 정치결사인 卍당 회원으로 산중에 은거하지 않고 승려의 몸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해 장기간 옥살이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일제에 의해 민중들이 고통 받는 질곡과 모손의 세월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파사현정의 보살 정신을 실천했다.
그리고 다솔사 주지로 있을 때 수많은 애국자들을 숨겨주는 은신처 역할을 했고, 당시 최고의 지식인 문화인들과 교류하고 제자들을 양성한 불교계 큰 스승이었다. 이극노, 최현배, 이희승, 조종현, 김동삼, 김범부, 김동리, 김범린, 허영호, 오제봉, 안광석, 허민, 허백련, 조지훈, 구상, 노천명, 채벽암, 강석주, 고익진, 목정배, 김상현, 여연, 김종회, 강석희, 변창헌, 정회경, 전보삼, 이병주, 김종규, 윤병상, 변관식, 성재휴 씨 등을 1930년대부터 70년대 말에 입적할 때까지 교류하고 가르친 한국최고의 정신지도자였다.
실로 개인의 위대한 원력의 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만일 현재의 불교계가 산중에서 청정만을 고수하는 개인주의 불교가 아니라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중생구제를 위한 포교전도의 사회참여 보살행을 구현하겠다면, 개인의 처세에 대해 시비를 가리기 보다는 원력불사와 업적을 보고 평가한다면 만해, 효당 스님의 행적을 표본, 사표로 삼아야 한다.
초기 불교에 나타난 부처님의 정치에 대한 철학, 교훈, 경고가 있고 나라가 부강한 법, 나라가 망하는 법 등을 가르친 것은 불교가 결코 현실외면적인 소극적 종교가 아님을 말해준다. 가야, 삼국시대 이후 고려의 불교국가를 거치면서 조선조 5백 년 동안 억압과 수탈로 수없는 승려들이 순국했고 외세를 막고 민중을 지키는 고난의 삶을 살았으며 식민지시대에 또한 저항하고 민중을 계몽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문제는 이승만 윤치호 박정희 이명박 등에 의해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비구·대처 분쟁을 거쳐 아직도 한국불교는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비록 대처승은 모두 축출했으나 자체 분열과 종권 다툼으로 국민 종교의 위상을 회복 못하는 것은 불교와 민중 모두들에게 비극이고 불행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불교도들이 크게 분발 각성해야 될 숙제로 남아 있다. 포교전도의 전법도생은 모든 불교도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윤 소 암 (시인, 한국불교역사문제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