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불행 ― 마피아 종교권력
오래 전 씁쓸한 기억이 있다. 평소 친하던 분에게 새해 풍경 달력을 선물했는데 봉변을 당한 일이다.
여름에는 부채를 겨울에는 달력을 선물하는 게 우리네 전통 풍습이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건넸다가 귀신이 붙은 것이라며 가게 주인의 부인이 완강하게 거절하는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남편과 나를 불신과 증오의 눈빛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종교와 무관한 것이라 설명해도 그 부인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거품을 물고 실신 일보직전, 하는 수 없이 달력을 회수하고 그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 알고 보니 부부는 젊었을 때부터 개신교의 독실한 집사, 권사였다.
오래지 않아 그분들은 시골로 이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후 수도권에 머물면서 자주 들리던 인쇄점 집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벽에 친불교적 글이 붙어 있고 부근 사찰에서 부탁한 인쇄물도 보여 연말 새달력을 선물하다가 온건하게 보이던 부인이 갑자기 나와 남편을 쳐다보면서 적대감을 보였던 일이다.
오랫동안 민주화운동, 각종 시민운동을 하면서 적지 않는 개신교, 가톨릭 교도들을 만났다. 80년대 부산민주화운동의 불교대표로 참여하면서 기독교인인 김대중, 김영삼 전대통령과 교분을 쌓았고 성당과 교회에서 회의와 식사, 농성까지도 함께 했다. 비교적 중도 진보적인 성직자들과 신도 간부들을 만나 사회개혁과 민주화의 공동목표를 추구한 때문인지 종교 갈등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YS, DJ 양대 진영이 서로 대권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싸우면서 지역, 종교, 이념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DJ쪽에서는 DJ가 더 많이 정치탄압과 고문을 받았으므로 YS가 양보해야 하며 뒤에 3당 합당으로 당선된 YS를 변절한 정치인으로, 사이비 민주화운동가로 몰아붙였으나 YS는 자신이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방어논리를 폈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 그 이후로 개신교와 가톨릭이 더 분열이 심화되었다고 본다. 개신교는 더욱 탐욕적이고 가톨릭은 더욱 권위주의로 결속했고 2O여년의 민주화운동 기간에 수백만 명의 신자가 늘어났다.
참고로 불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화와 사회참여에 지극히 소극적이고 기피하고 있으며 불교의 수행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날로 불교세력이 설 땅이 없고 한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자이고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 상당수였으나 이제 소수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정부공직이나 사회지도층에 영향력 있는 인사가 불교인은 가뭄에 콩나기로 귀한 사실이다.
신과 악마의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권력종교
인터넷은 세계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춰주는 인드라망이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들의 욕망은 끝이 안보여서 정치·종교·군사적인 측면에서 은폐된 비밀이 많고 진실이 베일에 싸여있기도 한다. 그러나 완전 범죄는 언젠가 들통이 나기 마련이어서 먹구름 속에 언뜻 비치는 태양처럼 진실과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일신의 종교는 종교가 아니며 인류사의 원초적인 무속신앙이고 정치와 결탁한 권력조직일 뿐이다. 기독교인이 입만 열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며 우상숭배의 미신이라고 주장하고 세뇌시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 말대로라면 철학은 학문·예술·사상의 왕이고 원천인데도 토속신앙에서 보이는 우상숭배라니 앞뒤가 맞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맹신·광신의 비이성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십 수 년 전 ‘예수보살’이란 알 듯 말 듯 한(기독교인의 시각) 책을 낸 전(前) 서강대 교수이자 불교학으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길희성은 그때 “아직도 불교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만일 불교인들이 정신을 차리면 기독교가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썼다.
한국기독교의 대표 종교학자라고 알려진 길희성은 맹신·광신에 빠져 있는 기독교인에게 불교의 올바른 자각을 인도하기보다 지금도 불교인에게 기독교를 교육시키는 단체를 만들어 그 역시 기독교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보수 기독교인에 머물고 있다.
구원파 목사이자 세월호 소속사인 청해진의 실질적 사주인 유병언을 정부가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서 잡는다, 못 잡는다 하며 지면과 방송에서 법석을 떨고 있다. 어떤 비판론자들은 유병언이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부터 권력과 종교를 이용해서 성공해 왔는데, 그 뿌리와 가지가 칡넝쿨처럼 전 사회에 얽혀있어 검거와 조사, 범죄의 발본색원이 가능하겠느냐며 회의론을 편다.
참으로 이 시대의 재앙이고 불행이다. 종교가 정치권력과 유착하면 타락이 필연이며 파멸의 원인이다. 참고로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한국 최고의 신학자인 조찬선 목사 저술 <</span>기독교 죄악사”>와 장로교의 창시자 <</span>캘빈의 인간사냥의 역사>(심상정 목사 저)를 모든 종교인, 특히 개신, 가톨릭 교인들은 필독하기를 바란다.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다고 맹신하는 성경의 상당 부분이 저주 심판 학살로 점철된 피의 종교로서 기독교 자체가 이단종교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남북 분단 이념의 선각자이며 투철한 양심적 지식인의 상징인 리영희 교수는 “자신의 고향이 평양이지만 어릴 때 서울에서 유학 생활한 탓에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 감옥에서 불교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라고 술회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고 모든 신구 기독교 지도층, 지성인들이 깊이 새겨들어 환골탈태하기를 바란다.
이미 서구의 지성들은 19세기부터 탈기독교, 친동양사상, 친불교로 돌아섰다. 다윈, 쇼펜하우어, 니체, 카찬차키스, 헤세, 슈바이처, 아인슈타인, 헤겔, 야스퍼스, 러셀, 토인비, 호킹, 칼세이건, 잡스 등 2백년 과학철학문명을 주도한 위인들이 그들이다.
기독교가 현대문명을 끝까지 방해하고 반대했으면서 주도했다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예컨대 세계 핵무기의 95%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정통 기독교국가인 러시아와 미국이다. 황금도 핵무기도 하나님 덕이라며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서양문명과 기독교가 같다는 것은 우민정책이고 식민지 정책이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남북이념마저 왜곡하는 한국기독교는 성경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예수 말씀보다 항상 배타·공격·정복적인 로마제국주의 기독교와 기독교 정복주의를 맹신한다. 염불이 아닌 잿밥 때문이다.
신, 인간, 자연이 수직구조가 아닌 수평구조의 생명공동체 사상인 불교를 과연 기독교인들이 믿고 배우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3천년 만에 바다위로 떠올라 숨 쉬는 큰 거북이처럼(盲龜遇木-맹구우목의 비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불교를 만나는 일은 노예가 주인이 되는 큰 행운일 것이다.
긴 잠에 빠져 있는 불교인들이 대오 각성해야 할 때이다. 가야시대부터 2천년 동안 호국안민의 전통을 수호해 온 불교가 백천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 사회를 구해야 한다. 모순과 질곡을 헤치고 목숨 바쳐 전도와 구제에 나서라. 이 땅의 고통 받는 민초들을 위해서 평화와 행복, 안전과 통합을 위해서….
윤소암 (시인, 한국불교역사 문제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