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종정과 원로의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원두 스님이 최근 조계종의 흐름과 관련한 기고문을 미디어붓다에 보내왔다. 종단의 흐름을 걱정하는 노스님의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두 번째 기고는 ‘화쟁위원회와 4대강 문제’를, 세 번째 기고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편집자〉

필자(원두 스님, 사진)는 화쟁위원회의 이번 불교인 종교평화 선언(초안) 발표를 계기로 4대강 문제 등 국가사회의 이슈가 된 사안과 관련, 평화실현을 중심으로 불교계와 천주교가 대국가 사회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난 해 말 천주교 주교들이 4대강 문제로 정진석 추기경의 사퇴를 요구했을 때, 정 추기경께서「화합위해 기도하자」(2010. 12. 16.)는 말씀과 함께 긴급 사제회의를 취소하자(12. 16), 이에 주교회의 정평위는 '4대강 사업,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12. 17)이란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4대강 문제는 지난여름 홍수가 있기 이전 천주교 내의 갈등이 진정되면서 조계종을 비롯한 종교계는 물론 전 한국사회가 4대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정 추기경의「화합위해 기도하자」는 선언이 갖는 의미를 불교의「화합․기도․평화」의 가르침에 비추어보기로 한다. 또 오래 전 일이지만,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노조연행사건(1995년)과 국가보안법폐지(2004년)를 둘러싼 국가와 종교 간의 갈등에서 천주교 지도자의 해결 방안 제시와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적인 일치와 평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불교승단은 평등과 화합을 특질로 하는 공화제 공동체이다. 여기서 화합(samagga)은 곧 세속적 평화를 의미하며, 승단의 최상․최후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이다. 그래서 불교는 화합승단(和合僧團 : 평화로운 교단)의 파괴를 부모와 아라한(阿羅漢)을 살해하거나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는 등과 함께 오역죄(五逆罪)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역죄를 범한 자는 재출가가 불가능하다. 이는 화합승단의 파괴가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율장에서는 화합승단(평화로운 교단)의 파괴를 승단에서 영구히 추방되는 4바라이죄(四波羅夷) 다음 가는 중죄, 즉 승잔죄로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비구 승잔죄 총13조목(비구니의 경우는 18조목) 가운데 제10조 파승죄(破僧罪)와 제11조 조파승죄(助破僧罪)가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비구 승려가 지켜야하는 250계의 맨 마지막 조문에 여초부지법(如草覆地法 : 화합이 파괴될 우려가 있을 때는 풀로 땅을 덮듯이 일체를 덮고 화합하는 법)을 두었다.

이는 승려들의 犯戒와 관련한 시비가 일어나더라도 여법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승단이 분열할 우려가 있을 때는 최종적으로는 일체를 덮고 화합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단의 고유한 회의법인 갈마법(羯磨法)의 다수결 10대 원칙 가운데는 화합이 파괴된다는 확신이 있거나 화합이 파괴될 우려가 있을 때는 갈마사(羯磨師, 의장)가 회의를 유보, 취소, 해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벌레가 없는 작은 건물에 불을 놓아서라도 회의를 해산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화합에 관한 가르침과 규정에 비추어 정 추기경께서「화합위해 기도하자」라는 선언과 함께 서울대교구 긴급 사제회의를 취소하였다. 그러자 주교 측도 간단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으로 진정했다. 정 추기경의 ‘화합위해 기도하자’는 불교승단의 갈마사와 다름없는 신앙적이고도 세속적(世俗寂,), 즉 세속심의 평정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세간사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선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불교의 이상과 평화이념을 보자. 불교는 해탈과 열반을 이상으로 하는 종교이다. 해탈과 열반은 불교가 지향하는 불가침의 성역(聖域)이자 영원한 평화의 세계이기도 하다. 불교에 있어서 평화의 원어는 빨-리어로 santi(산스크리트: śānti), 즉 불교에서 말하는 삼법인(三法印)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적정(寂靜, santi)에 해당한다. 이는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다. 불교는 평화를 의미하는 이 적정을 세속적(世俗寂, sammuti-santi : 세속심의 평정한 상태)․피분적(彼分寂, tadaṅga-santi : 번뇌가 선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억눌린 경지)․구경적(究竟寂, accanta-santi : 번뇌가 전부 사라진 不死․涅槃의 경지)의 3단계로 나눈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3단계 평화실천에 비추어 4대강 문제를 둘러싸고 정 추기경과 대주교들 간 의견 충돌로 일부 대주교들이 정 추기경의 사퇴를 주장했을 때, 정 추기께서「화합위해 기도하자」는 선언을 하였다. 이는 불교의 세간적 평화인 세속적(世俗寂)과 신앙적 평화인 피분적(彼分寂)의 훌륭한 메시지였다고 본다.

또 하나 우리 불교도가 주목해야 할 천주교 지도자의 대사회 문제에 관한 발언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천주교 교황대사의 언급이다. 2008년 6월 30일 개최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서울시청 앞 광장 시국미사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때 막 부임한 주한 교황대사 파딜랴 대주교가 종교의 사회문제 참여의 두 가지 원칙을 밝혔다. 즉 “①모든 시민의 자유롭고 평화적인 의사 표현, ② 일치와 평화, 화해의 수단으로서의 미사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교황대사의 이 말은 미사가 일치․평화․화해의 수단임과 동시에, 천주교의 대사회참여의 원칙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말 그대로가 제가 생각하는 원칙으로서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와 직접으로 관련이 있는 답변은 아니다.”라는 단서도 달았다. 나는 당시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천주교에는 지도자가 제 역할을 하기에 성경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천주교 교단이 일치단결하여 어려울 때 한국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셋째,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국가 사회적 중대한 이슈에 대한 김 추기경 발언의 기본방향과 그 결과다. 김 추기경께서 살아생전에 국가사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종교인으로서 진력하신 바와 순교자의 노래- 온 창조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영원한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이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다른 종교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의 눈에도 김 추기경의 선종은 종교인의 표상이자 천주교의 성직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불교도는 김 추기경의 판단이 두 차례 종교계를 비롯해 국민적 화합과 일치를 이끌어 낸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 추기경의 역할은 국가권력과 종교 간의 갈등과 관련한 사건의 해결 사례로 한국 종교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첫 번째는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노조간부 연행사건과 관련,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지자제 선거 등 긴급한 현안을 앞에 두고, 국민적 화해와 일치를 위해 천주교 성직자와 천주교도들의 집단행동유보(1995. 6. 20)를 발표하였다. 그러자 조계종도 6월 22일 “… 중대한 시기에 자유로운 자기주장이 분열과 혼란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며 행동 자제를 선언했다. 두 번째는 2004년 참여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추진을 강력히 추진하려고 했을 때, 남북문제 등을 감안해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국가보안법폐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조선일보. 2004. 9. 14.). 이상과 같은 김수환 추기경의 판단과 신념은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의 근기(根器)에 따라 가르침을 펴는 불교의 교화원칙은 물론 불교승단의 지도자가 구족해야 하는 덕목 가운데 하나인 ‘때’를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안목까지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그러했기에 조계종도 이의 없이 이에 흔연히 동참했다고 본다.

넷째, 결론적으로 정 추기경의「화합위해 기도하자」는 선언과 함께 긴급 사제회의를 취소(2010. 12. 16), 주교회의 정평위가󰡐4대강 사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거스르는 것’(2010. 12. 17.)이란 견해를 밝혔을 때, 필자는 천주교 내의 4대강 사업 등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수습되고 정상화되리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동 선언은 불교에서 최상의 가치․질서규범이자 최후의 법인 화합과 신앙적인 평화의 제안이자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 명동성당은 7, 80년대 민주화와 문민정부 탄생의 도덕적 모태였지만,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1995.6. 6)을 놓고, 천주교와 문민정부 사이에 극심한 대립과 갈등에서 비애를 느끼면서도 비굴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이해하는 미덕을 보였었다.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조계종 제도권의 승려들 가운데는 생명․평화를 외치고, 종단 내 문제를 비롯해 국책사업의 대립까지 화쟁을 하겠다고 나선 승려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해탈․열반․화합․무쟁(無諍)․이욕(離慾) 등 불교의 참 가치를 심어주려는 열의와 사명감을 망각한 채 시류에 영합하여 참여와 투쟁을 일삼고 있어 신자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4대강 문제를 놓고 불교에 이어 천주교의 일부 사제들까지 정부와 대립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 때 정 추기경의 ‘화합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가 천주교 내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한 대립과 갈등이 진정(鎭靜, adhikaraṇa-samathā)되고, 국가사회가 안정하고 평화로웠으면 하고 신년 발원을 했던 차에 천주교가 일단 정 추기경의 선언으로 세간적 신앙적인 평화의 길에 들어선 것을 보고 못내 기뻤다.

끝으로 우리 불교계의 지도자들은 정진석 추기경의 “정치든 경제든 아마추어인 내가 발언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다만, 불가피하게 사회적 발언은 하나님의 원칙을 알릴 때만”(한국일보. 2006. 2. 27. 추기서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이란 천주교적 원칙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음미해야 할 줄 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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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병조 금강대 총장은 불교에 있어서 평화의 근원을 dharma 法에서 찾았다. 그러나 일본의 宮本正尊, 平川 彰 , 서강대 서명원 교수는 평화의 어원을 열반으로, 森 章司 교수는 열반적정의 ‘적정’으로 보았다.

2)<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조선일보》2008. 7.1.

3)<미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수단>, 《조선일보》 2008. 7. 10.

4)조계종은 법안, 수경, 지관 등이 MBC PD수첩 등 언론과 좌경세력들의 선동에 놀아나, 2008년 7월 4일,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입니다’란 프렌카드를 앞세우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국법회를 개최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8월에는 종교편향을 구실 삼아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제도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나 불자 가운데 일종의 폭력행사인 다중의 압력에 대한 잘 못을 지적하는 자가 없었다.

5)서명원 신부, <카톨릭과 세계평화>, 世界平和를 위한 5대 종교간 대화, 제3회 학술토론회『발표문논문집』(2011. 6. 14), pp. 11-12

6)이 글은 금년 1월 1일 필자의 불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들이 종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기원한 年初 기도입제 발원문 ‘신묘년, 불교도가 주목해야할, 정진석 추기경의「화합․기도․평화 선언」’ 을 정리하여 세계평화를 위한 5대 종교간 대화의 <세계평화와 한국불교>(2011. 3. 10)란 주제의 발표에서 필자가 토론자로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내용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