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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칼럼ㆍ기고 불교의 체계적 이해
" 참 나는 거짓 나의 부정을 통해 도달된다"
2. 정도와 사도 선업은 인간사회에서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지만 그러한 과보는 절대성을 띠지 못한다. 인간의 선악판단이 상대적인 뿐만 아니라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노력(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업을 지어도 인간은 덧없음(生死)을 면할 수가 없다. 업설이 지닌 이러한 한계성을 극…
"불교의 특수한 인간 관계는 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진 = 최강희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5) 은(恩)과 특수윤리 삼세인과의 도리를 깨치고, 이에 입각해서 십 선업을 행하고 사무량심으로 보시, 지계할 것을 설하는 교설은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보편적 윤리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부모 없이 생을 받을 수 없고 사회를 떠나 생활할 …
"보시의 대상은 일체 중생이다"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4) 지계와 보시 십악업의 부정이 곧 십선업이다. 십악업 중에서 사회적으로 특히 문제되는 것은 신체적인 세 악업(살생. 투도. 사음)이다. 그것은 남에게 직접적인 상해를 줄 수 있는 외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언어적인 네 악업(망어. 양설. 기어. 악구)…
"사무량심은 일체 중생에게 회향되어야 한다"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3) 사무량심 우리는 ‘남’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나의 생존 경쟁적 적대자가 아니라, 나의 안락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동반자이다. 따라서 나를 사랑한다면 그 이상으로 남을 또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사랑을 불교에서…
"인간에게 선업을 행하는 것보다도 더 훌륭한 삶의 가치는 없다"
사진= 최강희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2) 십업설 업 보의 인과가 삼세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면 세계의 모든 현상은 그로써 정연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의지를 가진 존재(sattva)는 무엇이나(인간에 한정하지 않음) 중생이라 부르는데. 그런 중생은 업을 일으켜 자신의 선악 업에 따라 생사…
"고의로 지은 업은 현세나 혹은 후세에 반드시 받는다"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1) 업설의 원리 모든 것은 덧없고 괴로움이고, 나라고 할 수 없는 데도 사람들은 그 명백한 사실을 의식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항상하고 즐거운 것이고 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과 정 반대 되는 뒤바뀐 생각이다. 그런 뒤바뀐 생각에서 인간은 나個我…
"모든것은 무상하고 괴롭고 나가 아니다"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인간은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고대에 올라갈수록 더욱 증대되어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일종의 신앙적인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그리하여 인간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자연의 지배력이 신격화되어 여러 가지 자연…
"아미타부처님 본원력으로 '나무아미타불' 열 번 이라도 염하면 왕생할 수 있다"
죄악범부와 정토신앙 3. 본원력과 염불 정토교는 이렇게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이 목적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가. 정토교에서는 그것을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한다고 한다. 원시불교에는 업설에 입각한 생천설生天說이 있었다. 인간보다 상위의 천상에 태어나려면 보시 지계를 비롯한 십…
"정토란, 수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2. 정토 왕생 ‘정토’ 라는 글자는 부정된 것이 사라진 청정한 부처님의 국토를 가리키고 있다. 즐거움이 충만한 땅이라고 해서 극락세계라고 한다. 정토계 경전에는 미타의 서방 정토 외에도 여러 가지 정토가 설해지고 있다. 미륵보살의 도솔천 정토, 약사여래의 유리광 정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중…
"정토교의 발생 동기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데서 이루어졌다"
죄악범부와 정토신앙 1. 극한 상항의 의식 대승경전은 현재 약 650여 부를 헤아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찬탄하고 있는 것은 200여 부로서 전체 경전의 3분의 1 정도에 이른다. 정토 교설이 대승불교에서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미타 정토에 관한 이러한 경전 중…
"연기무아설은 있음과 없음의 두 끝을 떠난 중도이다"
아함의 무아윤회설 4. 결론 불교의 무아설은 단순한 무아설이 아니라 연기에 입각한 연기무아설이다. 그것이 부정하고 있는 ‘나’는 무명에서 연기한 ‘온’의 ‘나’로서 참다운 아트만의 부정이 아니다. 참다운 아트만은 ‘나’의 부정을 통해서만 나타나고 추호라도 ‘나’의 긍정이 있으면 나타…
불교의 체계적 이해
Ⓒ 장명확 3. 업의 주체 연기를 고찰할 때 ‘나’의 실재성은 부정되지만, 그러나 그러한 ‘나’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연기설은 오히려 그러한 ‘나’의 발생 과정을 설명해 주는 고, 이러한 성질의 연기설이 불교 안에 뚜렷하게 존재해 있다는 것은 그러한 ‘나’가 없지 않음을 뚜렷하게 표시…
"무아는 곧 공이며 제법실상이다"
2. 무아설의 내용 ‘무아’라는 말이 아함에 사용된 예를 보면 무상無常  고苦라는 말과 함께 어떤 주어에 술어로 연결되어 있음이 보통이다. 이런 문장에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말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십이처 육육법 오온 십이연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느 것이나 우리들이 살고 …
"이 근간이 멸하고 나면 다른 근간이 이어 받는다"
아함의 무아윤회설(2) 무아윤회설은 일견 자가당착을 면할 수 없는 것 같다. 무아설과 윤회설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성에서 현대의 학자들은 불교의 윤회설을 ‘민중 교화를 위하여 불교 안에 채택한 하나의 통속적 종교 관념’이라고 보고자 한다. 무아설과 업의 주체 문제는 현대 학자들이 아니…
"불교는 업보의 존재를 인정한다"
아함의 무아윤회설(1) 1. 서론 인간은 몸과 마음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럴 경우 인간의 죽음은 그 두 부분이 결합 관계를 풀고 마음은 몸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 막 죽었을 때 그 주검은 형태적으로는 살아 있을 때와 아무런 다름이 없고 다만 의식 곧 마음만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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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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