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을 지날 때면 가끔 일일명예역장이란 띠를 두른 어르신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인사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광경을 마주친다.

어느 곳에 누구인지는 관심밖이다. 무심히 지나치지만 그래도 일일명예역장님은 연신 허리를 굽힌다.

12월 8일 홍제역에도 일일명예역장님이 찾아오셨다. 여느 때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 사뭇 다르다. 일일명예역장 주위로 사람들이 띠를 두르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나누어 주며 설명을 한다. 어떤 이는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잠시 멈춰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옆에서자 띠를 두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따뜻한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

“예수 믿으세요.”

예수를 믿으란다. 띠를 자세히 보니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단체로 나와 선교를 하는 중이었다. 띠만 두른 것이 아니었다. 차를 마실 책상을 준비해두고 양쪽에는 '예수 믿으세요‘라는 현수막도 걸어두었다. 한쪽에서는 오카리나 공연도 이루어졌다. 선교하는 사람들은 오늘 일일명예역장과 같은 홍제동 홍성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었다. 일일명예역장은 홍성교회의 장로이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홍제역의 12월 8일 아침 풍경이었다.

역장이 명예역장과 함께 서 있으므로 역장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홍성교회에서 일일명예역장을 해주기로 해서 교인들이 같이 나와 차도 나눠주고 하는 것이다. 선교행위나 홍보활동이 역사내에서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교회에서 일일역장을 맡았으니 편의를 잠시 봐준 것이다. 금방 끝낼 것이다.”

금지된 사항인데 잠시 편의를 봐준다니 역장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 와중에 한 교인이 찾아와 친절하게도 홍보책자와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종교가 불교라고 밝히자 더 기세를 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결론은 ‘예수님’을 믿으라.

종교편향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잠시 잠잠해서일까. 개종을 하지 않는다고 목사가 시민을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아예 선교활동이 금지된 공공장소에서 지하철역 측은 선교를 하라고 멍석을 깔아주기까지 한다. 지하철역에서는 얼마 전에도 교회쉼터와 교회홍보화분 등으로 종교편향 문제가 제기돼 주의하겠다고까지 했다. 자신의 종교를 알리는 일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공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공개적으로 선교를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명예역장이라고는 하나 명예역장을 하는 시간만큼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활동해야 함에도 개인의 목적을 위해 활동한 것이다. 이는 지하철역에서 교회 홍보를 해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일일명예역장을 맡은 홍성교회 장로에게 선교활동과 일일명예역장 역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불교 쪽에서 나오셨네요. 할 말 없습니다. 불교는 포교 안합니까. 그런거 물어보지 마세요.”

일일명예역장인 홍성교회 장로도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문제될 일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 한다며 인상을 구기기도 했다.

일일명예역장을 마칠 시간이 됐다. 십 여 명의 교인들이 모여 미쳐 나누어주지 못한 홍보책자와 물품들을 정리했다. 그들은 오늘도 잊지 않고 지하철역사 한 복판에 모여 정리기도를 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종교편향은 없었다. 단순히 시민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뿐이고 오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