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부모를 위해
할 일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위하고
집안에 사는 사람과
자신에 의지하는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
계행을 갖춘 관대한 자는
앞서 죽은 친족과
현재의 살아있는 사람,
양자의 이익을 위한다.
집에서 정의롭게 사는
현명한 자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나
신들조차도 기쁘게 한다.
훌륭한 일을 하면,
존경받고 칭찬받으리.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고,
죽어서는 하늘에서 기뻐하리라.
-전재성 님 옮김

(ⓒ장명확)
부와 명예와 권력, 장수 등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일컬어진다. 보통의 사람들은 부를 통해 온갖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얻어진 부와 권력, 명예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올바르지 못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얻어진 부와 권력, 명예는 순간은 행복하거나 뿌듯함을 느낄지 몰라도 오래지 않아 패망과 좌절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현상들은 이런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불법적인 행위로 차지한 권력이나 돈이나 일정한 대가를 수단으로 해 사드린 권력과 지위는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머지않아 쓰라린 과보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상실한 몇몇 권력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어리석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하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선남자선여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활개는 반드시 쓰라린 대가를 치른다는 엄연한 진리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 그들의 발호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나 인과는 매우 엄격하고 정확하다는 것이 고금의 일관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도척의 무리가 당대에는 호의호식했으나, 2000년 넘게 도적떼라는 불명예의 오명을 쓰고 있으며, 그들의 후손들 역시 도적떼의 핏줄이라는 부끄러움에 떳떳하게 얼굴을 들지 못하니, 그 과보가 어찌 엄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또한 당사자들 또한 지은 악업의 크기에 따라 악처에 태어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 확실하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 특별히 재가자들에게 들려준 것으로 <앙굿따라니까야> 5:58 ‘릿차위 왕자의 경(Licchavikumārasutta)’에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웨쌀리 시의 마하바나 숲에 있는 꾸따가라쌀라 강당에 계실 때, 많은 릿차위 족 왕자들이 사냥을 위해 활을 들고 개들과 함께 이리저리 숲을 헤매다가 부처님을 발견하고 다가와 예배하고 물러나 앉아 법문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숲을 산책하며 거닐던 마하나마가 이 장면을 발견하고는 이곳으로 찾아왔다. 마하나마는 훗날 부처님으로부터 ‘재가의 남자신도 가운데 뛰어난 것을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는 칭찬을 들은 인물인데, 그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싸끼야 족의 왕자였으며, 훗날 싸끼야 족의 왕이 되었다. 사실 그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원했지만 동생 아누룻다가 출가하자 재가에 머물러 경건한 신도로서 승단에 많은 옷과 탁발음식과 와좌구와 의약자구를 베푼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부처님과 자주 대화를 나눴을 뿐 아니라 아난다, 고다, 로마싸방기싸 등 뛰어난 장로들과도 법담을 나눴을 정도로 교리에도 밝았다.
마하나마는 사납고 거칠기 짝이 없는 릿차위 족의 왕자들이 부처님 앞에 말없이 조용히 합장한 모습을 보고 기쁜 마음이 들어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들은 왓지인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왓지인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하나마가 이렇게 말한 연유를 묻자, 마하나마는 가족에서 보내진 사탕수수대나 대추열매나 과자나 엿, 사탕을 빼앗아 먹고, 가족의 여인이나 가족의 소녀들의 뒤쪽으로 던져버릴 정도로 사납고 거칠고 완고한 릿차위 족의 왕자들이 부처님 앞에서 합장하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왕족이나 영주나 장군이나 촌장, 조합의 장이나 가문의 대표 등 모든 재가자들에게 번영이 주어지는 다섯 가지 원리에 대해 설법을 하셨다.
설법의 골자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두 팔의 힘으로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 정당하게 원리에 따라 얻어진 재산으로 부모를 존중하고 공경하고 존경하고 공양하면 그 부모는 선한 마음으로 ‘오래 살아라. 장수를 누리라.’고 축복할 것이니, 그에게 번영만이 기대되고 퇴보는 없다는 것이다. 이어 위와 같이 공정하고 값지게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재산으로 처자와 노예와 하인과 일꾼을 존중하고 공경하고 존경하고 공양하면, 또한 밭일을 하는 이웃이나 측량하는 사람에게, 또한 헌공을 받아주는 신들에게 공양하면, 그리고 수행자나 성직자에게 공양하면 훌륭한 가문의 아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지 퇴보는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이 대부분 출가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양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적은 재가자들을 위한 설법은, 재가자의 입장에서 반갑기가 짝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죽어서는 하늘에서 기뻐하리라.’는 그 보시의 공덕으로 살아서는 세상의 칭송을 받고 죽어서는 하늘세계에 태어나 행복을 누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목적은 열반을 성취하여 쓰라린 또 기나긴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