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가 전통에 바탕한 지역 문화축제까지 특정종교 지원 운운하며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전방위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울산광역시 기독교계는 지난 41년 동안 지속돼온 지역전통 문화제인 ‘처용문화제’를 특정 종교활동 지원 행위라며 중단할 것과 이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관계 공무원을 고발하겠다고 압박하는 등 말썽을 빚고 있다.

처용문화제는 매년 10월 초 처용설화의 발상지인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의 대표적인 종합문화예술축제. 올해는 10월 2일부터 5일까지 4일간 문화공원 및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된다.

처용제 중단을 요구하는 기독교 단체는 울산시기독교연합회와 울산시교회협의회, 울산시성시화(聖市化)운동본부, 울산문화연대 등 4개 단체. 이들은 “울산시가 처용문화제에 세금을 지원함으로써 무당인 처용을 믿고 따르는 특정 종교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처용문화제가 문화축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무속신앙의 한 유형”이라며 “처용 이외의 다른 신앙을 믿는 시민을 정서적으로 위축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처용설화가 무속이라는 증거로 삼국유사에서 처용이 역신(疫神)을 물리치는 내용이 나오고 조선시대 귀신을 쫓기 위한 궁중나례로 ‘처용무’ 등이 활용됐음을 예로 들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처용설화와 관련된 논문 중 상당수가 처용을 무당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들은 또 처용문화제 지원 관련 조례를 폐지하지 않거나 다른 명칭으로 변경하지 않으면 공무원의 종교편향금지에 관한 법령이 공포된 후 울산시 관계자를 고발할 방침도 밝혔다.

이에 대해 박종해 처용문화제 추진위원장은 “처용은 국문학사에서도 가치가 높은 향가의 주인공인 데다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는 전통문화”라며 “내용도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면무도퍼레이드, 처용학술 심포지엄, 세계문화전시 등 다양하게 마련돼 처용과 관련된 부분은 일부”라고 반박했다. 울산시 관계자도 “수차례 토론회를 열어 이해를 구했음에도 기독교계가 행사 폐지와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있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삼국유사>연구에 관한한 국내 최고권위자로 평가받는 동국대 김상현 교수(사학)는 개신교가 우리나라 전통문화까지 시비거리로 삼는다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앞으로 설 땅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이런 무차별적 종교편향 공세가 정치, 사회, 경제, 학교는 물론 문화와 역사에까지 확대된다면 이 땅에서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앞으로 크게 위축될 것이고, 급기야는 정말로 걱정스러운 종교갈등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 우리 민족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처용의 정체를 두고 지방호족의 자제, 신라 화랑, 아라비아 상인, 동해안 용신제와 관련된 무당 등 다양하게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처용설화로 인해 종교적 편향성이 초래된다는 주장이 오히려 종교적 편견이며,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처용에 대한 해석을 단편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울산의 역사와 전통을 인식하고 시민들의 화합과 긍지를 다시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처용문화제는 울산광역시 남구 개운동 앞바다 처용암에서 처용제를 시작으로 본행사, 체육대회, 민속행사, 예술행사 등으로 나뉘어져 울산 전역에서 펼쳐진다.

처용문화제는 1967년 ‘공업축제’란 이름으로 울산지역에서 처음 열렸으며, 91년 처용문화제로 이름을 바꾼 이 지역 대표 문화행사다. 신라 향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과 헌강왕이 울산 남구 개운포 처용암에서 만났다는 설화를 소재로 삼고 있으며 울산시가 매년 8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박종해 처용문화제추진위원장은 지난해 제41회 처용문화제 때에도 기독교계의 문화제 명칭에 대한 반발과 관련해 처용 설화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처용문화제는 천년 동안 전해내려온 처용(處容) 설화를 정체성으로 삼아 처용이 역신을 몰아내는데 물리력을 쓰지 않고 춤과 노래라는 예술을 통해 회유한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계승하는 문화 축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특히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울산의 일부단체들이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외설적인 인물이라며 처용문화제의 명칭 폐지운동에 나선 것과 관련, “처용설화를 '외설'로 봐서는 안 되고 인류 정신사적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처용이 보여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이라고 강조했었다.

*처용가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處容)이 지었다는 '처용가'는 <삼국유사> '처용랑망해사'에 실려 전한다. 동해 용의 아들인 처용이 헌강왕을 따라 경주에 와서 벼슬을 하던 중 어느 날 밤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疫神)에게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역신이 물러갔다는 내용.

서라벌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더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본디 내 것이었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이 짧은 8행짜리 시가(詩歌)인 처용가가 그 대중적 호소력에 힘입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주장이 학계에서는 잇따라 제기된 바 있다.

허혜정 한국싸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는 그의 저서『처용가와 현대의 문화산업』(글누림출판사)에서 “세계적으로 디지털 헤리티지화에 여념이 없는 문화전쟁시대에 '처용가'는 한류붐을 타고 뻗어나갈 수 있는 한국문화의 원석과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처용가'는 단순히 한 편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텍스트에 담긴 수사(修辭)적 충격이나 처용이라는 인물의 국제성, 그리고 다양한 전승의 역사 등을 고려할 때 '처용가'는 중국과 아랍 등을 포함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핵심 문화콘텐츠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