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한 스님 3명 중 2명은 노후생활을 걱정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세납이나 법랍이 높을수록 노후생활을 걱정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승려 노후복지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가 지난 8월 중순경 조계종 출가자 5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5.8%가 노후생활을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세납이나 법랍이 높을수록 노후생활을 염려한다는 응답이 75%이상 높게 나온 것은 불교 노후복지의 현실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또한 노후대책이 없어 발생하는 문제로는 ‘수행에 전념이 불가능하다’가 31.2%를 차지했고, ‘개인재산을 축적해 승가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발생한다’는 응답이 27.2%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수행 전념 불가’와 ‘승가정신 붕괴’라는 응답이 절반 넘게 나온 것은 그동안 승려들의 개인재산 은닉, 은퇴 설계용 호화 토굴 건립 등으로 비난 대상이 돼온 개인재산 축적의 문제가 한편으로는 다른 스님들의 수행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스님 대부분이 노후대책을 거의 세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에 생활할 거처를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준비할 여건이 아니다’는 응답이 67.1%로 나타났으며, ‘준비했거나 준비 중이다’는 응답이 22.9%에 불과했다.
거처를 준비한 스님의 경우 ‘소속사찰 별채’라는 응답이 33.6%, ‘사설사암’이 28.1%로 나타났다. 이 중 중앙종단 및 본․말사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은 대체로 사설사암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대부분의 스님들은 소속사찰 별채에서 수행생활을 하려고 준비 중이거나 아예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출가자들의 노후생활 보장은 누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응답자의 63.9%가 ‘조계종 총무원’이라고 답했다. 설문내용을 보다 구체적 내용들을 살펴보면 총무원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우선 출가자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공동주거시설의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이 84.1%를 차지했으며, 설립주체는 ‘중앙종단과 교구본사, 소속사찰 공동 설립’이 43.7%, ‘중앙종단 자체 설립’이 38%로 각각 집계됐다.
‘노후 수행생활을 위해 가장 먼저 세워야할 대책’에 대해서는 41.4%가 ‘의료 및 생활 수발자 지원’이라고 응답했으며, ‘노스님 거처’라는 응답도 36.5%나 나왔다.
또한 상당수의 스님들이 노령연금제도에 긍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 수행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령연금제도에 동참하겠느냐’는 질문에 65%가 ‘동참하겠다’고 답했으며, 24.6%가 ‘생각해 본다’로 응답해 대부분의 스님들이 노령연금제도 시행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령연금제도를 시행하기위한 재원마련 주체로도 ‘중앙종단’이라는 응답이 52.8%로 나와 상당수의 스님들이 종단의 주체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현재 개인적으로 가장 시급한 생활상의 문제’에 거처안정 30.2%, 생활비 28.1%, 질병치료 26.3%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수행생활에 비용지출이 가장 많은 부분’으로는 보건의료비가 36.4%, 공과금 및 보험료가 15.2%를 차지했다.
스님들은 살아생전 뿐만 아니라 사후까지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스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장법으로는 ‘불교전통 다비장’이 77.8%로 나와 대부분의 스님들이 일반 화장장이 아닌 전통 다비장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비 및 제반 비용에 관한 관리주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무려 87.9%의 스님들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법랍과 세납이 많아질수록 그 퍼센트는 더욱 높아졌다. 또한 ‘다비 및 제반비용 관리주체’에 대해서는 중앙종단이 36.7%로 나타났으며, 교구본사가 33.1%로 나타났다. 비구니이거나 법랍과 세납이 적을수록 중앙종단을 선택하는 스님들이 많았고, 비구거나 법랍과 세납이 많을수록 교구본사를 선택하는 스님들이 많았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조계종단에 소속된 대부분의 스님들이 자신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그 걱정이 수행 정진에 큰 장애가 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설문에 참가한 한 젊은 스님은 “출가를 결심한 뒤, (곧바로 출가하지 않고) 출가하기 전까지 돈을 모았다”며 “노후를 생각하면 출가생활도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계종단은 한국 최대 종단임에도 진각종이나 천태종의 승려노후복지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지적이 수년전부터 제기돼왔다.
진각종은 조계종 스님에 해당하는 정사, 전수들을 위해 다양한 노후복지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20년 이상 교화활동을 한 퇴임 정사, 전수들에게 기로원에 머물 권한을 부여해 휴양과 수도처를 제공한다.
천태종은 생활 의료 노후복지 등을 종단차원에서 제공한다. 단양 구인사 인근에 스님들이 요양 및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단양과 제천에 진료기관을 선정해 스님들의 의료비용을 종단에서 전액 부담한다.
이번 설문은 8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756부의 설문지를 배부했으며, 560부를 회수해 73.9%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설문대상은 비구 145명, 비구니, 161명, 사미 102명, 사미니 148명을 집계됐으며 법랍에 따라서는 10년 이상이 43%, 세납에 따라서는 40대가 36.3%로 가장 많이 설문에 응답했다. 이번 설문조사의 신뢰도는 95%에 ±4.1%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