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개발에 징벌을 가하기 위한 대북압박은 효과가 없다. 북핵은 한반도 냉전체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북한이 경제적 이득을 취득하게 함으로써 핵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 아래 사진)이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이 전 장관은 5월 24일 오후 1시 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60주년을 맞아 불교생명윤리협회가 주최한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특별 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했다.
이 전 장관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의 길이 지난한 것은 한반도 갈등이 근본적으로 ‘냉전의 잔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냉전의 유물로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남북·북미·북일 등 적대관계 속에서 핵을 개발한 북한에게 ‘북한이 변화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관계국들의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일방주의라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평화체제를 실현한다는 관점이 아니”라고 말한 이 전 장관은 “오히려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북한이 체제 안전에 확신을 갖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북핵 포기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인과관계의 재정립과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지적한 ‘인식 전환’은 비단 관계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 증진이 안보를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발전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국민적 확신과 공감도 형성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제시한 동아시아 평화질서 구축의 조건 세 가지는, 첫째, 서로 상이한 사회구성체와 의식을 지닌 관계집단을 배려하고 공존과 수렴의 메커니즘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둘째, 역내 국가들이 패권적 경쟁보다 협력적 경쟁을 하고 공존과 공동번영을 국익으로 규정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기존의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각국 시민사회의 성장과 그들 간의 협력과 연대이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평화문제와 남북관계가 북핵문제에 묶여있을 경우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얼마나 위험하며, 한국경제가 얼마나 막대한 손실을 입는지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경험했다”며 “따라서 6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을 위한 별도의 포럼을 조속히 구성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발표에 앞서 세미나를 주최한 불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법응 스님(오른쪽 사진)은 “통상적이고 답보적인 외교적 언사의 교환과 자화자찬 방식의 정책 홍보가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면서 박근혜 정부의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아쉬움을 피력하고 “북한을 국제 연결망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과감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는 것이 불교의 화엄 사상을 현실에 구현해가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법응 스님은 “오늘 세미나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한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특별세미나에서는 이철기 교수(동국대 정치외교학과)가 ‘평화협정의 필요성과 가능성, 그 쟁점들’을, 김근식 교수(경남대 정치학과)가 ‘김정은 체제의 대외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절서; 평화의 출구전략’을, 김재명 교수(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여성의 관점에서 본 전쟁의 참상과 한반도 평화론’을 발표하며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제체 구축에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