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이냐? 경운궁이냐?
덕수궁의 이름을 옛 이름인 경운궁으로 환원할 지를 놓고 문화재위원들의 견해가 엇갈렸다.
명칭 환원을 놓고 여론수럼을 하게 된 덕수궁(옛 경운궁) 전경.
덕수궁 명칭의 경운궁 환원을 강력하게 주장한 문화재위원은 이태진 현 국사편찬위원장<<STRONG>왼쪽 사진>이다. 이 위원은 덕수궁은 일제의 압력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므로 마땅히 본래의 이름인 경운궁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강하게 피력했다. 역사적 당위와 명분을 갖춘 이 주장은 별 이의 없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기치 않은 반론이 제기됐다. 문화재위원인 동국대 김상현 문과대학장이 이미 100년 이상 사용한 명칭을 바꾸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함께 활동하는 등 친분이 두터운 두 역사학자의 견해충돌은 흥미롭다. 역사를 읽는 안목과 개인 친분을 구별할 줄 아는 석학들의 소신은 ‘다툼’이 아닌 다른 견해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비쳐졌다.
이 소식은 곧 문화계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어 확산되고 있다. 일제의 압력으로 바뀐 이름을 되찾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는 주장과, 지난 100년의 역사도 소중한 역사이며 일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상충되고 있다.
김상현 교수<<STRONG>오른쪽 사진>는 이날 석굴암의 본래 이름은 석불사인데, 이를 바꾸려고 해도 잘 바꿔지지 않았고, 결국 석굴암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바뀐 이름으로 내려온 역사와 전통도 소중한 것이며, 또한 명칭을 바꿀 경우 이와 관련한 모든 표기가 바뀌는 일대혼란이 불가피하고, 영문표기도 바뀌어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들었다.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자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의 명칭을 현행대로 유지할 것인지, 경운궁으로 회복할 것인지를 시민의견 수렴을 거쳐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하여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국가지정문화재 중 사적 439건의 지정명칭을 변경하여 고시했으나, 당시 덕수궁의 명칭은 덕수궁으로 유지할 것인지, 경운궁이라는 옛 이름으로 환원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덕수궁(德壽宮)이라는 궁궐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난하였다가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궁궐들이 소실되어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어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私邸)였던 곳을 1593년에 임시행궁으로 사용했다. 광해군은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하고 3년 후인 1611년에 임시행궁을 경운궁(慶運宮)으로 명명했다. 고종은 아관파천 후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옮겨가게 되고 대한제국 선포 후 법궁(法宮, 임금이 정사를 보며 생활하는 궁궐)으로 삼았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1907년에 고종은 순종에게 황제위를 양위한 직후 순종이 경운궁을 덕수궁(德壽宮)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수궁 명칭은 “100여 년 이상 사용되어 이미 사회적으로 정착된 명칭이므로 이를 바꿀 경우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커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현행대로 유지하여야 한다”는 입장과 경운궁은 “1611년부터 300여년 간 사용되어온 역사적인 명칭이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갔다가 경운궁으로 돌아와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명실상부한 법궁이었으나, 1907년 궁궐명칭이 덕수궁으로 개칭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력에 의하여 고종이 황제위를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전 황제의 거처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원 명칭으로 회복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문화재청은 ‘덕수궁’ 명칭변경에 대한 설문조사(9.19∼9.26), 문화재청 페이스북(www.facebook.com/chloveu) 등 여론수렴을 통한 결과를 토대로 공청회를 거쳐서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를 통하여 덕수궁의 명칭변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덕수궁 변천사
ㅇ 1593.10월 선조 한양 환도 후 월산대군 저택을 시어소(時御所)로 삼고 임시행궁으로 사용
ㅇ 1608. 2월 광해군 서청(즉조당 추정)에서 즉위
ㅇ 1611.10월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칭함
- 창덕궁으로 이어했다가 경운궁으로 재이어함
ㅇ 1615 병조판서 이항복이 궁장(宮薔)을 두르고 궁궐모양을 갖춤
- 광해군 창덕궁으로 완전 이어함
ㅇ 1620.10월 인조 반정후 경운궁 침전(즉조당 추정)에서 즉위
ㅇ 1623. 7월 선조의 침전(즉조당, 석어당 추정) 제외하고 경운궁의 나머지 가옥 등은 본 주인에게 돌려줌
ㅇ 1893.10월 고종이 선조환도 후 5주갑(300년)을 맞아 세자와 즉조당에서 배례
ㅇ 1896. 8월 경복궁 집옥재에 봉안되었던 역대 선왕 어진 경운궁 별당으로 옮김
ㅇ 1897.10월 환구단을 남별궁 영빈관 터에 착공,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 거행
- 대한제국 선포, 명성왕후를 황후로 추존
ㅇ 1900. 4월 경운궁 흥덕전에 태조 어진 봉안
ㅇ 1900.10월 경운궁 진전 화재발생으로 숙종이하 7왕의 어진 소실
ㅇ 1904. 4월 경운궁 대화재 발생으로 고종이 즉조당에서 중명전으로 거처 옮김
ㅇ 1905.11월 중명전에서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체결
ㅇ 1906. 2월 중명전에 일본 통감부 개설, 초대 통감으로 이등방문 부임
ㅇ 1907. 4월 고종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 파견 위해 중명전에서 특사 접견
ㅇ 1907. 7월 황제 양위식 중화전에서 거행됨, 궁호를 덕수(德壽)라 함
ㅇ 1907. 8월 순종 덕수궁 돈덕전에서 황제 즉위(11월 창덕궁 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