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불성 자체이다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결집을 주도한 마하깟사빠가 고마웠다. 마하깟사빠는 칠엽굴에 든 장로들에게 지계 순서와 상관없이 존경을 받았다. 그를 신뢰하지 않는 장로는 한 사람도 없었다. 마하깟사빠는 누더기 분소의를 즐겨 입었고, 오전 중에 하루 한 끼만 공양했고, 항상 앉아 있을 뿐 결코 눕지 않는 두타행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아난다가 마하깟사빠에게 고마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아난다가 낯익은 장로들을 따라서 칠엽굴에 들어오려고 했을 때 마하깟사빠가 제지했던 것이다. 물론 마하깟사빠 단독으로 제지한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장로들이 아직도 수다원에 머물고 있는 아난다의 자격을 책망했으므로 마하깟사빠가 대신 나선 일이었다.
어쨌든 마하깟사빠가 아난다의 출입을 막지 않았더라면 아난다는 영원히 아라한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칠엽굴 밖 절벽 위에서 분심을 내어 7일 밤낮으로 정진했기 때문에 아라한과를 얻고 나서 결집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난다에게 준 살아생전 붓다의 격려는 틀림없었다. 아난다는 정진 7일째 새벽까지도 진전이 없었는데, 그때 문득 붓다가 “아난다여, 너는 많은 공덕을 지었다. 열심히 정진하라, 너는 곧 아라한과를 증득할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 떠올랐고, 그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정진을 더해 아라한과를 얻었던 것이다. 아난다는 마하깟사빠를 향해 합장한 뒤 암송을 시작했다.
<그때 수부띠 장로가 스승 붓다께 물었다.
“스승이시여, 구도자의 길로 나아가는 자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을 지키면 좋겠습니까?”
스승 붓다께서 대답했다.
“수부띠여, 이제 구도자의 길로 나아가는 자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살아 있는 그 모든 것을 더러움 없는
영원한 평안이라는 경지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영원한 평안에 이끈다고 하더라도 실은 어느 한 사람도
영원한 평안으로 이끌려진 사람은 없다’라는 마음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만약 구도자가 ‘생존하는 것들’이란 생각을 일으키면
그는 이미 구도자라고 불려질 수 없는 까닭이다.
개체라는 생각이나 나아가 개인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키는 자도
구도자라고 불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구도자의 길로 향한 사람’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부띠여, 만약에 구도자가 ‘사물에는 자아가 없다.’
이렇게 믿고 이해한다면 여래, 존경받을 만한 분,
올바로 깨달은 분은 그 사람을 구도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난다는 붓다가 앞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설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더 당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붓다는 또다시 수부띠에게 ‘아니다’ ‘없다’를 반복하며 무아를 강조하고 있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아’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결론은 무아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구도자, 보살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음이었다. 아난다는 그렇게 이해했다.
<스승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 육안(肉眼)이 있을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 육안이 있습니다.”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 천안(天眼)이 있을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 천안이 있습니다.”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 혜안(慧眼)이 있을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 혜안이 있습니다.”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 법안(法眼)이 있을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 법안이 있습니다.”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 불안(佛眼)이 있을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 불안이 있습니다.”
스승 붓다가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가 대하(大河)에 있는 모든 모래알만큼 강가 강이 있고,
그 강 속에 있는 모래알만큼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세계는 많은 것일까?”
수부띠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그러하옵니다.
그러한 세계는 많을 것입니다.”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여, 이러한 세계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지가지 마음의 흐름을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마음의 흐름’, ‘마음의 흐름이란 흐름이 아니다’라고
여래는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과거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고,
미래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로소 아난다는 붓다는 불안을 가진 샤카무니 개체가 아니라 연기법으로 존재하는 불성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붓다는 ‘무아’이므로 샤카무니 개체를 초월한 우주 전제라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세상의 모든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중생으로 살아온 개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기적의 신통력이겠지만 전체로 존재하는 붓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뿐인 것이다. 어쨌든 무아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흐름’ 즉 ‘마음의 생멸’이라는 것은 실체는 없으며, 과거의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을 터였다. 그 마음들은 연기법에 의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인 것이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어떤 일이 있을까?”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여래께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그런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여,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미진(微塵)만큼의 일도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바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샤카족 궁정 이발사 출신인 우팔리 비구는 아난다를 존경했다. 붓다가 열반에 든 지 3개월 후에 칠엽굴로 와서 우팔리도 결집에 참여했던바, 붓다에게 들었던 대로 계율을 암송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팔리가 아난다보다 먼저 결집에 참여했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마하깟사빠가 5백 명 장로들에게 묻고 나서 결정한 순서였다.
“장로들이시여, 붓다께서 말씀하신 법과 율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결집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대다수 장로들이 의견을 모아 대답했다.
“율은 교단의 생명입니다. 계율이 있어야 교단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율을 먼저 결집해 주십시오.”
“그럼, 율을 먼저 결집하겠습니다. 계율에 대한 저의 질문에 어느 분이 대답하시겠습니까?”
또다시 대다수 장로들이 의견을 모아 대답했다.
“우팔리 장로가 계율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분입니다. 우팔리 장로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마하깟사빠가 “이 계율은 어디서 어떤 조건으로 누구에게 설해졌습니까?” 하고 물으면 우팔리가 답했다. 그리고 5백 명 장로들이 합송하는 형식으로 율을 정리했다. 계율 가운데 가장 엄한 것으로 비구는 살생, 음행, 절도, 망언의 네 가지가 있고, 비구니는 여기에 다른 넷을 더하여 여덟 가지가 되었다. 이 계율을 범한 사문은 사문의 자격을 잃었다.
우팔리는 스승 붓다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계율을 들을 수 있었다. 우팔리 장로는 마하깟사빠가 물을 때마다 붓다를 떠올리며 계율을 또박또박 복기했다. 그것이 바로 율장이었다. 우팔리가 아난다를 부러워한 것은 기억력이었다. 아난다가 암송할 때는 마치 그림을 보듯 실감이 났지만 우팔리는 애매하게 말하여 마하깟사빠에게 여러 번 지적받았던 것이다. 어쨌든 우팔리 장로는 율장 결집을 마쳤으므로 마음은 후련했다.
그래도 자신과 달리 아난다의 막힘없는 암송은 우팔리 자신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 아난다의 암송을 듣는 동안에는 마치 붓다가 다시 살아오신 것 같았던 것이다. 아난다는 붓다의 설법 당시 분위기까지 그대로 재현해 냈는데, 그 때문에 어떤 장로는 아난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기억해 낼 때 엎드려서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다.
하루는 우팔리가 아난다에게 “벗이시여, 벗의 완벽한 기억력이 부럽습니다.”라고 말하자 “붓다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던바, 아난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잊어버리지 않는 비결이 있다면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기쁜 나머지 ‘가슴에 새기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