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숱한 사건과 이슈들로 점철된 해였다. 국가적으로는 연평도 피격으로 대변되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1년 내내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공방으로 혼란스러웠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완승이 있었지만, 여당은 숫자를내세워 3년 연속 날치기 예산처리를 감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세상이 시끄러운데 불교계인들 조용할리 만무. ‘무소유’의 주인공 법정 스님이 입적했고, 법정 스님이 입적하는 날 단행된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으로 교계는 오랜 기간 동안 갈등과 반목을 분출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노골화된 종교편향이 점점 교묘하게 확산되어 갔고,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몰지각한 개신교도들이 ‘땅밟기’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교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찰의 화재로 인해 사찰이 방재와 방범에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고, 환경보살로 일컬어지던 수경 스님이 승적을 반납하고 자취를 감추는 사건도 발생했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피로감이 분노로 분출해 조계종은 정부와 여당과의 대화와 접촉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붓다는 2010년 한국 불교계를 다섯 개의 키워드, 즉 개혁, 무소유, 갈등, 불화, 희망이라는 다섯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편집자>

1. 개혁

첫 번째 키워드는 개혁으로 정했다. 이유는 조선시대부터 수백년을 내려온 승가교육의 기본틀을 뜯어고친 일대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수백년간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승가교육을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뚝심과 원력이 관철해낸 것이다. 이는 일대 사건이다. 세간에 덜 회자됐다 하더라도 승가교육개혁을 첫 머리에 선정한 것은 승가교육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불교의 발전, 미래, 희망 등은 거의 이 승가교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무소유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주창하고 실천해 보인 우리시대 스승 법정 스님의 입적은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무소유의 가치를 제대로 알린 사건이었다. 3월 11일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56세를 일기로 입적한 법정 스님은 입적 순간까지 무소유 정신을 실천, 많은 국민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교계는 물론 이웃종교, 정치권 등 사회 각계에서도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특히 3일장으로 3월 13일 송광사에서 진행된 다비식은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고 사리탑도 세우지 말라”는 스님의 유지대로 봉행,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언행일치의 전형을 보여줬다.

3. 갈등

갈등은 2010년 불교계에 배제할 수 없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승가교육 개혁이라는 불교사적 의미를 가진 성과와 법정 스님이라고 하는 국민적 존경을 받는 선지식의 입적이 아니었다면 ‘갈등’은 단연 첫 번째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갈등은 봉은사 문제,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정부여당과의 접촉 단절 문제, 4대강 사업 반대를 놓고 벌어진 불교계와 정부, 불교계 재야와 집행부간의 온도차,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수스님의 소신공양 등이 갈등의 상징처럼 벌어진 사건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3월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면서 촉발된 ‘봉은사 사태’는 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특히 직영 전환을 둘러싼 논란은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일요법회를 통해 “봉은사 직영전환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번졌다. 약 6개월 간 지속된 총무원과 봉은사간의 갈등은 도법스님이 이끄는 화쟁위원회의 중재로 물리적 충돌 없이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고, 부주지를 맡았던 진화 스님이 직영전환 후 첫 번째 주지로 임명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조계종과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의 충돌은 조계종이 민족문화에 대해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고 문화재보존을 위한 국가예산을 시혜차원에서 배려하는 등의 태도를 보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전면적인 대화 거부 및 사찰출입 금지 조치를 내림으로써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지난 12월 8일 템플스테이 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 이같은 초강력 대응의 계기로 촉발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간단없이 지속돼온 불교에 대한 폄훼와 기독교 우선의 정책방향, 한국사회의 기독교화 노골화 등에 대한 복합적인 요인이 그 배경이어서 여진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조계종 집행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반발을 낳고 있는 4대강 반대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불교환교연대 등 불교계 NGO와의 시각차는 자연스럽게 극복되는 모양새다. 조계종이 입장이 전에 없이 단호하고, 장기화 조짐이 뚜렷해지자 이명박 정부 와 한나라당도 적잖이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개신교의 ‘사찰 땅밟기’나 장로정권 출범을 계기로 노골화한 개신교 편향의 사회분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갈등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4. 불화(佛畵)

‘불화’을 키워드로 선정한 이유는 고려불화전과 지장보살전 등 사상 최대 또는 사상 첫 불화전시회가 국립중앙박물관과 조계종 중앙박물관에서 잇따라 전시, 또는 전시중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불화전은 전 세계 흩어졌던 고려불화 70여점이 귀향하는 의미를 가짐으로써 문화계 전반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외 고려불화 70여점이 한 자리서 전시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시된 작품의 규모도 사상 최대로 기록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재개관 5주년을 맞아 열린 이 전시회에는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소장돼 있는 고려불화 70여점 등 총 100여 점이 전시됐다. 이를 맞춰 제작된 도록은 불티나 나게 팔렸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부득히 추가 인쇄를 하는 진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계종 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지장보살 전은 우리나라 각 절이나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지장보살 탱화나 불상이 한 자리에 총 집결한 일대 사건이었다. 언론들은 이 전시회와 관련 ‘전국의 지장보살님들 서울 총 집결’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고려불화에 이어 지장보살을 그린 불화전시회가 잇따라 열림으로써 특히 수도권 불자와 국민들은 우리나라 불화의 우수성과 진수를 만끽하는 모처럼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5. 희망

온갖 사건과 충돌로 점철된 2010년에서 희망을 찾아내기란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희망을 이뤘거나 희망의 싹을 틔운 의미 있는 일이 없지 않았다.

비록 정부 여당과의 대립적 모습으로 비춰지기는 하지만 조계종 집행부가 모처럼 내린 대화 및 접촉 거부 선언은 꺼져가던 불교자주화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의 싹으로 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더 이상 정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불교의 미래는 불교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등의 성찰적 분위기가 번져가면서 당초 뚜렷한 한계를 가진 무리수로 보였던 자승 총무원장 집행부의 대정부 및 한나라당에 대한 강력한 채찍이 종도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재가불자들과 불교를 아끼는 국민들도 이번 기회에 불교가 기존의 보였던 저자세에서 벗어나 자주적 모습을 회복하고 각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희망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2010년은 또 지난 반세기, 사찰의 점유를 둘러싸고 조계종과 태고종이 갈등을 빚어온 분규사찰 문제가 두 종단의 합의로 일부 해결되거나 해결의 길을 모색한 한 해였다. 정화(태고종에서는 법난)의 후유증으로 두 종단 간의 오랜 현안이었던 분규사찰 문제는 조계, 태고종의 두 총무원장이 지난 3월 10일 ‘신촌 봉원사 소유권 합의서 서명식’을 갖고 “양 종단이 오랜 기간 진행해 온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상생해 나가기”로 합의하면서 해결의 물꼬를 텄다. 최근에는 순천 선암사에 대한 재산관리권을 순천시가 문화관광부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법적 소유권자인 조계종에 재산관리권이 넘어가는 상황이 빚어짐에 따라 두 종단이 적극성을 갖고 신촌 봉원사 합의의 전례를 참조해 대화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암사 문제가 해결되면 조계 태고 두 종단 간에 빚어졌던 정화(법난)의 후유증이 사실상 청산되는 역사적 타결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밖에도 간화선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여러 차례 열렸고, 동국대에서는 간화선 국제세미나를 통해 한국 선 수행법의 세계화 초석을 놓은 것, 그리고 동국대에서 93년만에 완역해 발간한 ‘조선불교통사’ 등 한국불교의 선수행 토대와 학문적 기초를 튼튼히 다진 희망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