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표현기법에 감상객들 저마다 감탄

붓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그림들이 전시 중이다. 이 느낌은 색의 원근, 두께의 원근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재질로 표현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 그림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려진 것일까.

그 비결은 바로 한지(韓紙)에 있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전통한지만이 낼 수 있는 기능과 질감의 장점을 극대화해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발해 권영순 선생(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들은 현재 신사동 신용보증기금 건물 뒤 교동한과 건물 1층 교동갤러리(02-517-1599)에서 11월 1일까지 열리고 있는 중이다.

갤러리에 들어선 첫 느낌은 마치 아크릴 재료로 그린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살펴보니 아크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근감과 질감, 그리고 푸근한 느낌이 물씬 다가온다. 한지로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을 듣기 전에는 도무지 한지로 표현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정교한 표현,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색감의 흐름 등…. 한지그림을 보러 갤러리를 찾는 관람객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한지를 활용해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거기에는 권영순 교수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DNA와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한지를 살리기 위해 서울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해 안동으로 내려가 미술관을 운영하기도 했던 권 교수가 한지그림을 시작한 목적은 오로지 우리나라 전통한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한지의 우수성과 놀라운 품질을 널리 알려 한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신념이 오늘의 그를, 또 ‘한지그림공예’라는 새로운 장르를 이뤄낸 것이다.

한지, 21세기 들어 평범한 소재에서 특별한 소재로 변신

다 알다시피, 한지는 일상생활 뿐 아니라 기록의 문화, 예술품 등 수 많은 분야에 쓰였던 평범한 소재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든 이 시점에서 한지가 ‘한지그림’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과 함께 평범이 아닌 ‘특별함’으로 다가오게 됐다. 그러나 한지의 특별함은 ‘유별남’이 아니다. 편안함 가운데에서 느끼는 독특한 질감이라고나 할까.

한지그림 공예. 붓으로 그린 것과 같은 터치와 한지를 가위나 칼로 문양을 오려서 붙이던 오색전지공예 기법, 천에 해오던 자연스러운 염색기법이 어우러져 ‘한지그림공예’라는 새로운 분야로 탄생한 것이다. 특히 회화부분만을 ‘한지화(韓紙畵)’라고 하는데, 한지화에서는 염색에서의 우연성을 받아들이고, 한지를 찢으면서 나오는 그 운명적인 선들에 순종함으로써 그 진정한 맛과 멋을 온전히 드러낸다.

올해로 66세. 참으로 곱게 나이를 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권 교수의 온화한 미소는 현재 자신의 모든 것에 만족하고, 외려 과분하게 생각해 마음을 비우는 나름의 수행에 그 비밀이 있었다.

고암, 일타 스님 등 이름난 큰스님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던 권 교수는 스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무소유의 행복, 비움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는 밝혔다.

권영순 교수, 타고난 예술감으로 한지그림공예 장르 개척

권영순 교수는 “한지화는 잃어버린 한지의 시간들을 찾아 아름다운 염색으로 물들이고 작품으로 그려내, 한지를 새로운 매체로 승화시킨 예술분야”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번 전시가 잃어버린 한지의 시간들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된 자신을 찾는 자리이자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그래서 전시회의 이름을 ‘한지로 그려낸 깨침의 소리’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삶은 목소리로는 찬불가 음성공양, 손으로는 한지그림 보급 및 후학양성, 그리고 몸으로는 태극권 지도로 회향하겠다는 그. 제자들에게도 꼬박꼬박 경어를 사용하는 그의 모습이 단아한 한지그림을 영락없이 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