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어의운하가 신라 시대 문장가 최치원(崔致遠·857-?)이 남긴 네 편의 비문, ‘사산비명(四山碑銘)’에 대한 석전 정호(石顚鼎鎬·1870-1948) 스님의 주석서를 우리말로 옮긴 『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을 출간했다. 이번 번역서는 석전 스님이 남긴 방대한 한문 주석을 최초로 현대 우리말로 충실히 옮기고 풀어낸 역주본이다.

사산비명은 최치원이 헌강왕 11년(885)부터 진성여왕 7년(893) 사이에 찬술한 ▲「지리산 쌍계사 진감 선사 대공령 탑비명智異山雙溪寺眞鑑禪師大空靈塔碑銘」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初月山大崇福寺碑銘」 ▲「숭암산 성주사 대랑혜 화상 백월보광 탑비명崇巖山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희양산 봉암사 지증 대사 적조 탑비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네 편의 비문을 가리킨다.

이 네 비문은 고대 불교사·신라사·한문학사·금석학 연구에서 필수적인 핵심 자료다. 그러나 변려문 특유의 화려한 수사와 방대한 고사·전고로 구성돼 해독이 난해해, 전통적으로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꼽혀왔다.

석전 정호 스님은 이러한 난해함을 바로잡기 위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정주사산비명』(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을 한문으로 완역했다. 고금의 불교·유가·도가·제자백가·중국 역사서 등 방대한 문헌을 대조해 와전된 설명을 바로잡고, 기존 주석서들의 오류와 이설을 정리한 작품으로 “사산비명 주석의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이번 번역본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한 석전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부기된 여러 문헌 중 사산비명과 직접 관련 없는 내용은 제외했다. 또한 『봉암사 비명』(2024)에서 수록된 「봉암사 지증 대사 적조 탑비명」 내용을 새롭게 수정·보완했다.

역주자는 본역의 원칙으로 ① 가능한 한 쉬운 현대어 사용 ② 상세한 고사·성어·사상적 배경 주석 ③ 인용문헌의 원문 대조 ④ 모든 한문 구절에 국제 표점 방식 적용 ⑤ 주석이 있는 역주문과 없는 역주문 병기⑥ 석전본의 협주·두주·각주와 역주자의 미주 구분 등을 제시해 완성도를 높였다.

책은 네 편의 비명에 담긴 선사들의 생애, 사상, 신라 왕실과의 관계, 당·신라 간 교류, 통일신라 말기의 시대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진감, 낭혜, 지증 등 선사들의 수행과 교화, 구족계 전수, 남종선 전래, 사찰 조성 과정, 당시 왕실 후원 등 풍부한 역사적 사실들이 최치원의 문장 속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출간은 사산비명 전통 주석의 맥을 잇는 동시에, 오랫동안 전문 연구자만 접근할 수 있던 한문 불전·비문 문학을 일반 독자와 연구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 『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

조병활(불전佛典연구원 원장) / 도서출판 어의운하(대표 김성동)

상·하 양장. / 상권 460페이지, 하권 388페이지 

정가 각 권 2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