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원 4

(사진=장명확)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여(六根通利 三業純和) 

총명(聰明)하다는 것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최고의 찬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누구나 총명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총명의 참 의미도, 총명해지는 방법도 잘 알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총명하다는 것은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는 것을 말한다. 한자의 뜻으로는 ‘귀가 밝다’라는 뜻이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잘 듣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총명에는 보거나 듣거나 감각기관을 통해 느끼거나 인식하는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과 함께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지혜롭고 사리 분별이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리 분별이 뛰어나려면 눈과 귀가 밝아 주변의 것을 잘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니 총명에 깃든 두 가지 사전적 의미는 서로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총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이른바 ‘총명탕’이라는 흥미로운 명칭의 한약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총명탕은 한의학에서 기억력 감퇴와 건망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통적인 처방약이다. <동의보감>에 “총명탕을 오래 먹으면 매일 천 마디의 말을 기억하고 가슴속에 만권의 책을 간수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다만 그 약효가 정말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가운데 ‘귀와 눈이 총명하고’는 원문 육근통리(六根通利)에 대한 한글 번역 문장이다. 육근통리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인 육근(六根)이 막힘없이 통하고 날카로워져 지혜가 밝아진 상태를 의미한다. 두루 알다시피 육근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마음(意)의 여섯 가지 감각 및 인식 기관을 말한다. 통리는 막힘없이 통하고(通), 이롭거나 날카로워진다(利)는 뜻이다. 즉, 육근통리는 감각기관이 세속적인 번뇌나 집착에 물들지 않고 청정해져서(육근청정),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지혜가 명료해진 수행의 경지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다. 이 경지는 수행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통리(通利)라는 불교 용어는 비교적 생소하다. 막힘없이 통하고(通), 예리하고 날카로워진다(利)는 뜻인데 그 의미가 자못 심장(深長)하다. 단순히 시력이나 청력이 좋아지는 육체적 능력을 넘어, 정신적인 깨달음을 통해 이들 감각 기관이 일으키는 분별심 및 번뇌에 물들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청정한 지혜를 갖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잘 통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통리는 의학 용어로도 사용된다. 의학에서 통리는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통증이나 소변불리와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을 뜻한다. 기혈이 막힘없이 잘 순환하도록 하여 통증을 멎게 하고,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도록 돕는 치료법이다. 또한 통리지통(通利止痛)은 기혈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통증을 멎게 하는 것이며, 통리관절(通利關節)은 관절의 기운을 소통시켜 운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려나, 불교에서 통리는 깨달음이나 진리의 이치가 막힘없이 잘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운허스님은 수행을 통해 육근을 통해 생성되는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져 모든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경지, 즉 육근통리를 총명이라고 옮겼다. 그렇다면 그 경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를 일컫는 것일까. 대문호이자 재가의 수행자이기도 했던 소동파의 게송 ‘​계성변시장광설(溪聲便是長廣舌,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산빛이 어찌 그대로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가 그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육근이 통리하면, 즉 총명의 경지에 이르면, 눈에 보이는 대상, 귀에 들리는 소리가 그대로 불법이고, 부처인 것이다. 『벽암록』에도 실린 이 게송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선승 상총(常總)을 만난 자리의 체험에서 나온 소동파의 오도송으로 알려져 있다. 상총선사로부터 사람이 하는 설법만 듣지 말고 자연의 소리도 설법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소동파가, 폭포 소리에 문득 얻은 바가 있어 경전이나 말만이 법문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 자체가 진리의 설법임을 깨닫고 이 시구를 남긴 것이다. 

잘 알다시피 삼업(三業)이란 몸(身)으로 짓는 행위인 신업(身業), 말(口)로 짓는 행위인 구업(口業), 생각(意)으로 짓는 행위인 의업(意業)을 통칭하는 불교 용어다. 모든 선악의 행위를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의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삼업은 윤회의 원동력이 되는 업(業, 악업)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 

살생·도둑질·사음과 같이 몸으로 짓는 3가지 악업이 신업이고, 거짓말·이간질·욕설·꾸미는 말 등 4가지 악업이 구업이며, 남의 재물을 탐하거나 악의와 분노를 품는 것 등의 악업이 의업에 해당한다. 

삼업은 10가지의 선업 및 불선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삼업으로 십선업을 닦으면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는 좋은 과보를 받게 되고, 십불선업을 짓게 되면 지옥과 아귀(餓鬼)와 축생(畜生)계 등 악처에 태어나는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

문제는 윤회의 근원이 되는 이 삼업을 어떻게든 제어하는 것이다. 이산혜연선사는 이 내용을 삼업순화(三業純和)라고 표현했다. 순화(純和)는 순수(純粹)하고 온화(溫和)하다는 것인데, 주로 인품이나 성격이 꾸밈없고 부드러우며, 거슬림 없이 조화를 이룬 상태를 의미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오염되거나 잡스러운 것을 걸러 순수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에 더 가깝게 사용되었다. 이것은 신구의 삼업, 즉 중생을 윤회의 굴레로 이끄는 악업의 종자를 순화해 선업으로 전환해 닦겠다는 원력의 표현인 것이다.

이산혜연선사의 ‘삼업순화’를 운허스님은 “말과 뜻이 진실하여”로 옮겼다. 여기서 ‘말과 뜻’은 ‘신구의’ 삼업을 말한다. ‘진실하여’는 ‘순화’의 의역이다. 말과 뜻이 진실하면 십선업은 저절로 실천된다는 뜻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