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법정 스님의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스님의 한글 서체와 그 내용에 담긴 매력과 가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도반과 지인들에게 붓글씨로 써준 편지, 엽서 등 30여점이 한자리에 전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남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장 현장 스님의 노력으로 지난 6일부터 10일간 서울 인사동 동예헌 2층 전시관에서 열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정서적으로 교감되는 이웃들과 가족적인 정을 나눴다. 지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받거나 편지를 받으면 단순한 산자락이나 찻잔그림에 차에 관한 게송 또는 선시들을 붓글씨로 적어 답으로 보내주시곤 했다.

“날마다 山을 봐도 볼수록 좋고 물소리 늘 들어도 들을수록 좋네 저절로 귀와 눈 맑게 트이니 소리와 빛 가운데 평안이 있네”<98년 동지절 法頂 장난 尹靑光 居士님께>

스님이 남긴 글씨 하나하나에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느껴진다. 현장 스님은 “글씨에 담긴 인연 이야기를 모으면 피안의 꽃처럼 피어날 것 같다”고 말한다.

법정 스님의 표현에 의한면 ‘붓장난’들인 이런 흔적들이 현장 스님의 원력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가 보관하고 있으면 언젠가 사라질 지도 모를 이 스님의 흔적, 마음, 향기를 한 군 데 모아 전시회를 갖는 의미는 그래서 결코 가볍지가 않다.

전시회 개막식에서 “법정 스님께서는 사리 한 개라도 수습하지 말라며 무소유의 삶을 마지막까지 실천하고 가셨지만, 나는 지금 여기 한 자리에 모은 법정 스님의 글씨와 그림들이 바로 법정 스님의 사리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윤청광 맑고향기롭게 본부장의 표현에 일순 참석한 수백 사부대중은 숙연해졌다.

아, 이것들이 법정 스님의 사리구나! 라는 작은 깨침은 그림과 글씨를 바라보는 눈길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스님이 남긴 묵향을 바라보며 스님이 머물고 계셨던 산골 오두막의 바람소리, 물소리, 스님의 숨결, 스님의 체취, 스님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현장 스님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세월이 흘러 사라질 것을 염려해 소장자들에게 요청해 스님의 유묵들을 모아 봤다”며 “무소유의 향기를 더 많은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주신 이해인 수녀님, 송광사 현묵스님, 길상사 덕현스님, 서울 대도행 보살, 부산 보덕화 보살, 대원성 보살, 광주 대자화 보살, 정찬주 작가, 피상순 박사, 도예가 김기철님과 맑고향기롭게 연꽃 디자인을 해준 고현 교수, 김포다도박물관 손민영 관장, 맑고향기롭게 김자경님, 서울본부장 윤청광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의 선묵을 모은 화보집을 책으로 펴냈다. 책의 이름은 『法頂스님 禪墨』(도서출판 다래헌, 3만원)이고, 곧 시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