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새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취임 후 첫 번째 공식 대외활동으로 용산참사 현장을 다녀왔다. 총무원장의 첫 대외 공식일정이 용산참사 현장 방문으로 잡힌 것은 앞으로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을 중시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풀이된다. 첫 일정을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신선한 행보로 평가된다.

11월 4일 오후 3시 참사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장 건물을 찾은 자승 스님은 참사 현장에 20여 분간 머물며 고인들을 위해 분향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자승 스님은 먼저 분향소에 들러 고인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반야심경과 발원문을 봉독하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발원문에서 자승 스님은 “용산은 이 시대에 우리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상징”이라며 “하루 속히 이 대립과 갈등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더불어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용산과 서울을 넘어 이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감동할 때까지 정진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어 분향소 바로 옆 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긴 자승 스님은 유족들과 면담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자승 스님은 이 자리에서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기원한다”며 “정부와 유족이 한 발씩 양보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여러분들의 노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불교계에서도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숨진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는 “11월 20일이면 농성한지 10개월이 된다”며 “우리는 무엇보다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어 “우리라고 장례도 못 치른 채 고인을 냉동고에 넣어놓고 싸우고 싶겠느냐”며 “종교계에서 힘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조희주 용산참사 범대위 공동대표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큰스님이 관심을 갖고 몸소 찾아와주셔서 감사 드린다”며 “불교계가 유가족의 고통을 헤아려주고 문제가 빨리 해결되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 자리에 배석한 총무원 기획실장 장적스님은 “총무원장 스님이 5일 취임법회를 마치고 나면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게 될 것”이라며 “조계종은 여러분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의 호소를 주의 깊게 들어준 자승 스님은 “(방문으로) 오히려 번거롭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며 “몸조리 잘 하고 부디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용산 참사현장에 방문하기에 앞서 자승 스님은 천주교 의료시설인 요셉의원과 노숙자들의 쉼터 보현의집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요셉의원을 찾은 자승 스님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곳 요셉의원에 오게 해주셔서 고맙다”며 “종교화합과 복지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마음을 모으자”고 말했다.

이에 요셉의원 원장 이문주 신부는 “총무원장에 취임하시고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영광”이라며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불교계와 천주교계가 같이 일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주교 요셉의원은 의사 70~80여명이 자원봉사로 노숙자와 이주노동자 등을 위해 무료로 진료와 치료를 하고 있는 복지시설이다.

자승 스님은 이어 서울시립 보현의집을 방문해 원장 지거스님과 노숙자들을 격려했다. 자승 스님은 쉼터에 있는 노숙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힘을 내서 자활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방문에는 총무원 기획실장 장적 스님, 사회부장 세영 스님, 사서실장 경우 스님,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대오 스님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