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박동춘 선생님으로부터 올해 초 전화가 왔다. 얼마 전 배용준이 찾아왔다고. 생긴 것만 준수한 줄 알았는데, 행동이 절도 있고 예의바른데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아주 됨됨이가 된 총각이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배용준이 선생님을 찾아간 이유인 즉, 한국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국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한국에 대해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데, 이 기특한 총각은 그때마다 한국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로부터 꼬박 열 달을 기다린 끝에 그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책의 부피나 내용이 예상보다 훨씬 두터웠다. 스스로 물어물어 찾아다니고, 사진 찍고, 혼자 원고를 쓰며 완성했다는 그 책에는 우리문화의 깊은 맛이 속속들이 베여있었다.

김치와 한복, 도자기, 한글과 세종대왕, 전통술과 풍류,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 천상열차분야지도까지 한국 전통의 맛과, 미, 정신세계를 놓치지 않고 담기위해 애쓴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우리의 기특한 한류스타는 불교문화에 대한 체험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비록 다른 종교(천주교)를 갖고 있지만 한국의 사찰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어떻게 수많은 문화재를 배출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늘 궁금했다. 사실 한국문화에서 불교적 색채를 제외한다는 것은 핵심을 뺀 그 나머지만을 논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그가 방문한 산사는 은해사의 부속암자인 백흥암. 비구니선원이 있는 곳이다. 일년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개방되는 특별한 도량도, 한류스타 배용준의 미소에는 스러졌다. 아름다움을 내치지 않고 그것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선의 정신이니, 아름다운 청년을 차마 내치지 못한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내리지 말기도 하자.

어쨌든 배용준은 이곳의 장독대를 기웃거리며 사찰음식을 맛보고, 가마솥에서 나온 누룽지를 간식삼아 먹기도 하고, 고구마를 먹으며 선원장 스님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배용준은 이어 또다른 은해사 산내암자인 운부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대 고승들이 배출된 유명한 선원이 있는 곳이다. 배용준이 소개한 곳은 운부암의 해우소. 아직 옛날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곳인데, 재미있는 것은 스님이 아닌 일반인용 해설물은 별도로 구분해 그냥 버린다는 점이다.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독소가 많고 영양이 없어 퇴비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곳의 풍경을 보면서 배용준은 다음과 같은 바람을 전한다.

“이곳만큼은 운치있고 아름다운 옛 멋에 손대지 않고 잘 지켜낼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여주신 선원장 스님의 바람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탁 트인 전경에 거울 같은 연못, 아침이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오래오래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배용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어 월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고, 충주 석종사의 혜국 스님을 찾았다.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엄지만 남기고 모두 태운 혜국 스님의 오른손이 그의 눈에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다.

“학창시절에 읽은 김동리의 <등신불>은 내게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큰스님의 연비한 손을 보자, 또 큰 스님께서 들려주신 전생의 스승과의 인연, 홀로 산에서 수행하며 죽었다 되살아난 초인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설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머리가 잠시 멍해지기까지 했다. 사찰에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래된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사람의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있다. 그런 살아있는 사람이 자칫 그냥 죽어 있을 수도 있는 건물이나 조각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유명인이 되기에 앞서 진정한 문화인이 되라고 신신당부하신 큰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배용준은 이어서 말한다.

“좋은 차를 대접받고 홀로 가벼운 산책에 나선다. 사찰에는 휴식이 있다. 삶의 성찰이 있다. 자신을 채찍질해 나아가는 수행이 있다.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다. 차가 있고 음식이 있다. 건축이 있고 유물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다. 그것들이 그저 숨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중동(靜中動), 산사의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다.”

그는 발길을 돌려 박동춘 선생의 다실로 차를 마시러 갔다. 어디서 풍문을 들었던지 초의차의 계보를 이어 한국 전통차의 명맥을 되살린 이가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선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란다.

350도 펄펄 끓는 가마에 맨손으로 차를 덖고 차인으로서의 꼿꼿함을 온몸으로 지키고 살아가는 박동춘 선생의 모습에 배용준은 무척 감동을 받은 듯 하다. 한달 뒤, 다시 박동춘 선생을 찾아 김천 청암사에서 길러온 물로 햇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다관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자 한 달 전 차를 덖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향이 온 방 안을 향기롭게 채운다. 맑고도 서늘한 기운. 세물차의 느낌은 그러했다. 첫물차가 여리고 산뜻하고 담백했다면, 세물차는 좀더 어른스럽게 풍부하고 폭이 넓었다.”

배용준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훨씬 더 깊이를 더해간다. 아마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눈과 마음이 더욱 열렸기 때문이리라.

배용준은 이어 오래된 절터들을 찾았다. 경주 황룡사지와 익산 미륵사지. 해가 지는 황룡사지에 오래된 나무처럼 서있는 배용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다가갔다. 거대한 혼과 유물이 있던 이곳에, 이제 유물은 사라지고 혼만 떠돌아 외로운 나무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신라인과 나는 아마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신라인이 불국정토를 꿈꾸며 그곳을 거대한 구조물로 채워나갔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곳을 채워야 할까.”

한류스타의 이런 독백을 듣고 있노라니, 그의 1년간의 여정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동안 어느 스타가 우리문화를 배우기 위해 스스로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으며, 어느 유명인사가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이렇게 발벗고 나섰던가.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을 읽은 일본인들이, 그리고 외국의 많은 이들이 한국의 불교를 어떻게 느꼈을까 자못 궁금해졌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이들은, 한국의 문화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아류다거나, 한국인들이 스피드만 강조하는 개발도상국의 깊이 없는 영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리라.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기특한 청년에게 더없이 커다란 갈채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