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본사 주지 향적 스님은 교계 기자들 사이에서 일명 ‘봉주르(Bonjour) 스님’으로 불린다. 1998년부터 약 3년간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다들 봉주르 스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스님이 프랑스에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고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님의 과거(?)가 베일에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그 베일이 벗겨지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스님이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담은 책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을 펴낸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향적 스님은 프랑스로 떠난 첫 해를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보냈다. 수사들과 똑같이 자고, 일하고, 명상하면서 보냈던 그 1년간의 시간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은 향적 스님이 지난 1989년 12월부터 1990년 8월까지 약 1년 동안 프랑스 삐에르-끼-수도원 체험을 회고하며 쓴 글과, 이후 한국에서 쓴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스님은 왜 유학을 다녀온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책을 펴냈을까.

“그때의 소중한 체험을 기록으로 정리해 두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했어요. 그런데 그 동안 일에 쫓기기도 했거니와 대중 앞에 나의 수상집을 출간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서질 않았어요. 그러나 내 생애에 있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삐에르 끼 비 수도원의 신부님들에게 작은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 이방인, 그것도 다른 종교의 성직자를 두 팔로 활짝 맞아준 그들에게 작은 감사를 남기고 싶어서 이번에 책을 펴내게 된 것이죠. 수도원 체험은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하나 더 갖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7월 17일 갓 나온 책을 전하며 이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스님이 찾아간 수도원은 호진 스님이 해인사 스님들에게 슬라이드로 보여준 삐에르 끼 비 수도원이었다. 이곳은 호진 스님이 잠시 머물렀던 수도원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향적 스님의 일상은 ‘좌충우돌 우당탕’이었다. 가톨릭 세례를 받은 이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포도주와 빵을 우걱우걱 먹은 일, 음악감상실에서 폼나게 다도를 하다가 원장 신부님에게 고발당한 일, 너무 무료해서 설해목(雪害木)을 자르는 일을 맡았는데 빵 반 조각, 물 한 컵을 먹고 육체노동을 하려다 배가 허리에 붙을 뻔하기도 한 일도 있었다.

나무 자르는 일을 마친 후에는 도자기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한 후 3개월만 흙 이기는 일만 했는데 때마침 금식 기간이어서 배를 곯은 채 일을 하다보니 눈앞이 오락가락할 지경이었다. 흙을 적당하게 잘라서 주지 않으면 초년생 노비스(일종의 행자)은 스님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어댔다. “너 한국에 언제 돌아갈꺼냐? 이 따위로 일할 거면 한국에 돌아가.”

향적 스님의 눈에 비친 수도원의 일상은 ‘무소유’ 그 자체였다. 밤 10시 이후에는 난방이 들어오질 않았다. 밤새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지샌 후 난방이 끊어지는 이유를 알아보니 남은 전기를 팔기 위해서라고. 이곳에서는 인근에 댐을 막아 수력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쓰는데, 남은 전력은 프랑스 정부에 판다고 한다. 또한 스님들이 모두 크고 작은 노동을 하는데, 원장 신부 또한 수도사들이 신는 샌들을 엮는 일을 했다. 대부분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들이고, 가끔 도자기나 치즈, 인쇄물 등을 팔아서 수도원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사곤 했다.

원래 기약했던 3개월이 훌쩍 지나고 난 뒤에도 스님은 그곳에 머물렀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향적 스님은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대학에 입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스님이 떠나겠다는 말을 전하자, 원장 스님은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곳 수도원 식구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까?”

향적 스님은 즉답을 피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국 사찰의 선방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방에 100명의 대중이 정진하고 있어도 99명은 엑스트라라고 합니다.”

그러자 원장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도원이 지닌 문제점도 이야기 해주었다.

스님은 그리고 밤새 끙끙거리며 마련한 송별사를 프랑스어로 전했다.

“우리나라 말 중에 회자정리 생자필멸(會者定離 生者必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태어난 자느 반드시 죽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곳 수도원을 떠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중략) 저는 이곳 수도원에서 여러분과 함께 기도와 미사를 하면서 종교는 교리와 역사 못지 않게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부활절을 지나 휴가 갔다 돌아오는 날 저녁 마지막 기도에 성모 찬송가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제 이곳 삐에르 끼 비 수도원을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저녁 마지막 기도시간에 라틴어로 부르는 성모 찬송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년이 지난 뒤, 자신이 쓴 이 글을 번역하면서 향적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곳에서 느꼈던 수천 수만가지의 감회와 그리움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리라.

스님은 올해 5월 20년만에 삐에르 끼 비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곳에서 확인했다.

“가톨릭과 불교는 역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대자연과의 소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중을 위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같다고. 그리고 불교의 자비와 가톨릭의 사랑이 다를 수 없고, 관세음보살과 성모마리아가 다를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