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심』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래 시에 문외한인지라 문예지를 들춰볼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요즘에는 <고은 일기>가 연재되어 매번 책장을 넘기고 있다.

사주쟁이들 설명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 만나게 되는 해(年)와 달(月), 날(日), 시(時)의 공기가 아이의 폐 속에 들어가면서 쪼글쪼글하던 아이의 몸이 세 배쯤 풍선처럼 늘어나는데, 이 때의 우주 에너지 성분 조합으로 인해 아이의 앞날이 좌우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던 즈음부터 시작하는 고은 일기를 읽고 있으면 첫 숨을 들이마실 때 맡던 그 공기 냄새를 킁킁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1976년은 효봉 스님이 돌아가신 지 10주기가 되는 해이자, 박지만이 육사를 지망한 해였다. 그리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무능했지만 퇴임 뒤에는 최고의 월드 스타가 되어버린 지미 카터가 당선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술 먹고, 원고 쓰고, 출판사 사장이랑 싸운 이야기들이다.

박지만이 육사를 지망한 게 왜 중요하냐.

대학 다닐 때 정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전두환 둘째인가 셋째인가 암튼 그집 아들 덕에 운좋게(?) 3사관학교라는 데를 나왔다고 하더니, 이때는 육사가 박터졌나 보다.

아직 박정희를 부처님과 하느님 중간쯤에서 나온 사람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려나. 그들은 박정희에 이어 박지만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무궁화 삼천리를 통치해주길 바랬을까. 박지만 대신 그의 큰누님이 그 일을 대신하려 하고 있으니, 그들의 소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문득 한국에도 어쩌면 제2의 김정운이 지금쯤 탄생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등꼴이 오싹해진다.

그 다음으로, 카터의 대통령 당선. 아무래도 함량미달의 느낌이건만, 고 시인은 부러워 미친다.

“아! 우리도 언제 한번 공명정대한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 박정희 이후는 어떤 시대일 것인가. 현직 대통령이 새 대통령으로 지속되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은 백일몽인가. 북은 김이 국가 민족이고 남도 박이 국가이다. 국가안보는 박의 안보인 것이다. 더럽다.”

에구, 고 영감님 남산의 부장들이 자주 전화했다더니, 전화할 만 했구먼.

세 번째 에피소드는 효봉 스님 10주기인 10월 24일 일요일.

이 장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아마 직업병일 것이다. 송광사에 들러서 사형 사제를 만나는데 구산, 법흥, 법정이 사형이고 보성 스님은 조카란다. 박완일 법사는 사제이고.

고은 선생이 송광사 스님이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가계도를 이렇게 그려놓고 보니 위치가 확 드러난다.

아마 송광사에 지금껏 남아있었으면 방장쯤 되었을 짬밥이다.

“너는 약을 지어 많은 중상 환자를 살려낼 것이다.”

효봉 스님이 고은 시인에게 남긴 말이다. 30여년 전 그 시절, 소수이고 약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이들의 가슴을 그는 많이 고쳐주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