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손님에게 솜씨 뽐내려 분주한 아이들

(사)로터스월드가 캄보디아 씨엠립에 세운 BWC어린이센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수천 평에 달하는 대지 위에 붉은 기와를 얹은 양옥 건물들이 십여 채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씨엠립 인근에서 살고 있는 빈민 어린이, 혹은 부모 없는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셨다고 평소 음악시간에 배우던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외부인에게 그들의 솜씨를 뽐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실력들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금도 캄보디아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음악’ 수업이나 교과서가 없어서, 이곳 BWC 어린이센터에서는 직접 악보를 오선지에 그려가며 캄보디아의 민요와 동요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꼬마의 아리랑 노래는 이내 눈물바다를 만들고

아이들이 부른 노래들은 놀랍게도 아리랑과 고향의 봄, 곰 세 마리 같은 우리의 노래들이었다. 한국어로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관객들의 가슴 한 가운데를 멍멍하게 만들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맨 앞줄에 선 가장 키가 작은 꼬마의 이야기였다.

그 작은 소녀의 이름은 ‘디나’이다. 올해로 열두 살이지만 워낙 영양상태가 결핍된 채 성장한 지라 많아봐야 일곱 살 배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디나는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백내장을 앓아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해 로터스월드 의료봉사단을 만나면서 그 아이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숲에서 담요 비슷한 천을 걸치고 이를 천막 삼아 살아가는 디나의 어머니는 아이가 왜 앞을 못 보는 지도 모른 채 십여 년을 키워왔다. 앙코르와트 근처에서 국수를 팔아 하루 1달러로 안 되는 수입으로 연명하는 이들에게 병원이나 의사는 소문으로만 들을 수 있는, 하지만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디나는 비록 눈이 멀기는 했지만 어머니를 돕기 위해 제 키의 반쯤 되는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퍼올려 길어 날랐다. 또한 사리분별력도 정확해 누가 자신에게 옷을 사준다고 하면 시장으로 손을 끌고 가 정확하게 자신의 옷을 집기도 했다.

김안과 치료로 광명 찾은 디나의 꽃보다 예쁜 미소

그러던 차 지난해 로터스월드의 초청으로 김안과 의료진들이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방문했다. 입에서 입으로, 인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까지 소문이 퍼져 하루에도 수백여 명의 현지인들이 몰려들었는데, 디나 또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BWC 어린이센터를 찾아온 디나. 의료봉사단은 아이의 눈을 살펴보고 작은 시술로 고칠 수 없지만, 결코 희망이 없는 상태는 아님을 알았다. 디나는 올해 2월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김안과에서는 디나의 눈 상태를 정밀검사하고 백내장 수술을 실시했다. 수술이 끝난 후 의사들은 디나의 눈을 살펴보기 위해 시력 테스트를 했다.

그런데 디나는 커다란 시력 테스트기 앞에서 아무 것도 맞출 수가 없었다. 수술이 실패로 돌아갔나 하고 의사들이 절망에 빠지려던 찰나, 아이가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동그라미를 가지고 다시 시력 테스트를 한 결과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수술 직후 디나의 시력은 0.2 정도였고, 현재는 0.6 내지 0.7 정도이다. 차츰 눈이 좋아지면서 1.2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디나 뿐만 아니라 고환에 염증이 생긴 한 소년은 성불구자가 되기 직전 로터스월드를 통해 한국 병원으로 이송돼 병을 고쳤다. 이밖에도 수천, 수만의 캄보디아인들이 로터스월드와의 인연으로 새 삶을 얻고 있다.

BWC어린이센터는 미래를 키우는 ‘희망제작소’

BWC 어린이센터는 단순히 고아원이나 교육기관의 역할만 하는 곳이 아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 중에서도 학습능력이 있는 우수한 아이들을 선별하고, 결핵 등 건강검사를 마친 아이들을 최종 심사하여 기숙학교 형태의 시설에서 최고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예불이 진행되지만, 한국식 예불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캄보디아식 예불을 진행해 아이들에게 캄보디아의 전통과 불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성관 스님은 “수십 년 뒤에는 이곳 BWC 어린이센터에서 캄보디아를 이끌어갈 불심 깊은 지도자들이 무수히 배출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관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끝난 직후 디나와 그의 친구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리랑에 이어 고향의 봄이 흘러나오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승 스님은 땀을 닦는 척하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인사말을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목이 메었는지 연신 마이크를 거절했다.

티나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리고 캄보디아의 집 없는 천사들이 건강한 미래를 꿈꾸며 한국의 민요를 전하는 장면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합창이었다.

지하수 펌프로 생기 되찾은 빈민촌을 가다

아이들의 작은 공연이 끝난 후 일행은 그곳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이름조차 없는 시골마을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빈민촌을 찾아간 것이다.

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온 외지인들이 신기했던지 다 떨어진 문을 빼꼼이 열고 우리에게 반가운 눈인사를 했다.

야자수 이파리를 엉기성기 이어 만든 집에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으로 보이는 사람이 수도펌프 앞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엄회의 기금으로 조성된 지하수펌프였다. 그동안 이들은 동물들의 오물과 마을사람들의 폐수가 뒤범벅된 웅덩이 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살아왔다. 이들에게 생수는 호강을 넘어선 사치의 대상이었다.

이날 화엄회와 실승회 스님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옷가지와 생필품, 쌀을 전달하며 건강하게 잘 살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