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7월 1일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2개월 전, 인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물 두 살의 청년 마단달 딩그라가 런던에서 인도담당 국무장관 몰리 경의 정치 보좌관 커전 와일리를 저격하여 암살한 것이다. 저격 당시 그는 런던에서 유학하고 있던 공학도였다. 곧바로 체포된 그는 단 하루만의 재판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딩그라는 그 판결을 듣는 순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국을 위해 제 생명을 내 놓는 영광을 누리는 것은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의 때가 올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안중근을 의사(義士)로 추앙되고 있듯이, 딩그라 또한 인도의 영웅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인도가 인도라는 국가를 유지하는 이상 그들의 살인은 의로운 행위로 평가받을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딩그라를 살인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안중근이 살인을 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 근대화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는 항상 우리에게 죽어 마땅한 숙적이었고, 그를 처단한 안중근은 살인이 아니라 저격, 암살, 그리고 의거로 묘사돼 왔다.

그런데, 불교적 관점에서도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는 불살생계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 역사상에 수도 없이 등장한다. 특히 호국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불교의 경우 그 어떠한 전통의 불교보다 훨씬 더 호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예민한 주제를 두고 허우성 경희대 교수가 화두를 던졌다. 허 교수는 6월 12일 오후 7시 계간<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8회 열린논단에서 ‘살인은 어떻게 정당화 되는가?-어느 비폭력 운동가의 고뇌’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우성 교수는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허 교수는 그동안 간디의 저서를 번역하고 스스로 비폭력 운동을 주창하면서, 우리 사회에 아주 미묘한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해왔다.

이날 포럼에서 허 교수는 안중근과 딩그라, 그리고 간디를 살해한 나투람 고드세가 의로운 살인으로 평가된 사례로 꼽았다.

나투세 고드세는 힌두교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이슬람교도에게 영합하는 간디를 죽였다. 딩그라에게 암살 지령을 내렸던 인물은 후일 힌두 마하사바의 당수가 되는 사바르까르였는데, 간디 살해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 또한 사바르까르였다. 그에게 있어서 영국 제국주의자나 이슬람교도의 편을 들어 힌두교도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간디는 똑같은 민족의 숙적에 불과했다.

딩그라와 안중근, 고드세의 공통점은 정당한 살인이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국과 일본 그리고 신생 인도 정부는 딩그라, 안중근, 고드세를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테러 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재판하여 처형했다.

허 교수는 “딩그라와 고드세의 살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한편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이고 다른 편에서 독립투사인데, 누가 누구를 보고 역사를 왜곡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인도는 민족자결과 국가주권의 입장에서 처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가. 그리고 테러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대테러 전쟁 역시 정당화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딜레마는 9∙11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사명대사의 의병활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테러에 대한 대테러 전쟁이 정당한 것인가. 불살생계를 약속한 승려가 조국을 침범한 왜적을 물리치고, 또다시 승려로 돌아간 사실은 관점에 따라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허 교수는 이 대목에서 2500여년전 고대인도 석가족의 멸망을 소개했다.

붓다가 비유리왕의 석가족 멸망을 막기 위해 세 번이나 나선 일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석가족에게도 안중근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마동자였다. 열다섯 소년이었던 그는 신출귀몰의 무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석가족을 지키기 위해 홀로 비유리왕 군사와 싸워 적군을 많이 죽였다. 그의 신출귀몰함에 비유리왕은 너무 무서워 땅굴 속으로 피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석씨들은 그를 영웅으로 기록하는 대신 그를 불러들여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너는 왜 어린애로서 우리 집안을 욕되게 하느냐. 너는 우리 석씨가 착한 법을 수행하는 줄은 모르느냐. 우리는 벌레도 해치지 않는다. 더구나 사람의 목숨이겠느냐.(중략) 너는 빨리 떠나라. 여기 있지 마라.”

논픽션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내용이 아함경에 소개돼 있다. 만약 그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안중근도, 딩그라도, 사명대사까지도 모두 의롭지 못한 일은 한 사람들이 된다.

이와 거의 흡사한 주장은 간디의 발언에서도 발견된다. 간디는 딩그라가 커전 와일리를 암살했을 당시 “딩그라의 행동이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딩그라의 행동 및 인도에서 행해진 그와 유사한 행동에 의해 인도가 이득을 얻었다고 믿는 자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딩그라는 애국자였지만 그의 애국은 눈 먼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릇된 방식으로 몸을 바쳤습니다. 궁극적인 결과는 해로울 뿐입니다.”

이날 토론에서 한국교원대 박병기 교수는 “현실 역사를 두고 보면 정체성-곧 인간, 국민, 민족의 일원, 종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의 유지와 보존없이 사람의 생존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비폭력은 오히려 위험하지 않은가”하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만약 우리나라에 외적이 쳐들어온다면 나 또한 순수한 비폭력을 주창했던 간디보다는 조건적인 비폭력을 지향하던 네루의 편에 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폭력, 정신적인 폭력, 나아가 내 안의 폭력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집단은 조금이라도 그 폭력성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집단이 불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불교가 사회화, 이 땅에 자리 잡기 위해서 비폭력을 연구, 실천하는 집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한 참가자는 안중근 의사나 인도 민족주의자의 암살 행위를 ‘살인’으로 규정하는 허우성 교수의 용어 자체에 허 교수의 편파적 견해가 담겨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허우성 교수는 “살인은 사람을 죽인다는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일 뿐 내 개인의 견해가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화랑 관창이나 안중근 같이 목숨을 바친 영웅을 어찌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쟁 영웅밖에 없는 역사는 분명 ‘일그러진’ 역사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허 교수는 이어 “내가 오늘 포럼의 부제로 ‘어느 비폭력 운동가의 고뇌’를 단 것은 비단 나를 지칭하거나 간디의 비폭력만을 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며 “나는 한국인의 평균 체온이 38도라고 생각하는데, 그 온도를 0.1도라도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 우리사회를 덜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의 발표는 비폭력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비폭력이 가능할 것인가, 비폭력을 통해 우리사회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되묻는 문제제기에 가까웠다.

허 교수는 “폭력이 인류의 역사를 주도하는 힘이었다면 인류는 예전에 다 멸종했을 것이라는 간디의 확신은 진실일까. 종교적 도덕적 천재들의 신념과 행위는 인간 과학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시했다.

허 교수는 이어 “비폭력의 범주에 대해서는 아마 각자 다른 해답 내놓을 것이다. 이는 실존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본다. 간디는 내가 생명을 유지하는 한 폭력 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위에 폭력 얼마나 많나. 비폭력 논리가 사랑의 논리라면 정말 실존적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나는 비폭력운동의 중심에 불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불교가 해야 한다. 불교가 사회화되고, 이 땅에 자리 잡기 위해서 비폭력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집단이 불교계 내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이날 발표를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