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여류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 평생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원했으나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말년에는 비참한 행려병자로 삶을 마친 그녀의 삶과 그림들을 재조명하는 ‘나혜석생가거리미술제’가 열린다.
수원 한데우물창작팀은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는 행궁동을 일대 골목과 인근 화성 인근 갤러리에서 6월30일부터 7월4일까지 제1회 나혜석생가거리미술제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 패널로 참가하는 수원사(주지 성관) 측은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나혜석의 삶과 예술세계는 그녀의 불행했던 사생활에 묻혀 지금에 와서도 온전하게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며 “수원이 낳은 예술가이자 불교인이었던 그의 흔적을 되살리고, 그의 예술혼을 재조명하기 위해 거리미술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이자 문인이었고, 남녀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당당하게 맞섰던 예술인 나혜석(1896~1948)이 태어나서 자랐던 곳은 경기도 수원시 신풍동 45번지다.
현재 나혜석의 생가터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으며, 이정표조차 없다. 나혜석의 생가비만 생가터와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인근에 위치한 ‘나혜석 거리’는 나혜석과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이 지정된 곳이며, 그마저도 유흥지대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한데우물창작팀은 이번 행사를 통해 나혜석을 재조명하면서 널리 알리는 한편 예술인 나혜석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한 화성 안의 마을에서 새로운 문화지형을 만들 계획이다.
행사 기간 동안 수원과 화성 일대 9곳의 갤러리에서는 나혜석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가빈갤러리의 ‘환생요앗!(幻生yowhat!)’ 사진전, 시인과농부의 ‘시와 드로잉이 있는 나혜석의 밤’, 씨드갤러리의 ‘with artist-나혜석 다시 세상과 만나다‘, 한데우물문화공간의 ‘나혜석, 행궁동에 오다’, 임아트갤러리 ‘그녀- 일어서다’, 대안공간 눈의 ‘여행, 삶, 예술’ 등이 마련된다.
또 수원사에서는 ‘나혜석생가거리미술제 기념 지역 중견작가전’이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김학두 등 30여명의 중견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7월 3일 오후 7시에는 시인과 농부 전통찻집에서 시낭송회 ‘문학인 나혜석을 만나다’가 열린다. 유정이(현대시학), 서안나(문학과비평), 권현형(시와시학), 우대식(현대시학), 이진희(문학수첩), 박해람(문학사상), 조동범(문학동네) 등 기성 문인들이 나혜석의 시와 자신들의 창작시를 낭송할 예정이다.
7월 4일 오후 2시와 4시에는 나혜석생가거리미술제 전시가 열리고 있는 수원성 안의 갤러리들을 탐방하면서 작품 설명 및 미술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투어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7월 4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나혜석생가터 앞에서는 ‘거리에서 미술이랑 놀자’라는 타이틀로 거리체험행사가 개최되며, 오후 3시에는 한국화 양동언작가의 퍼포먼스 ‘붓끝으로 나혜석을 그리다’가 열린다.
또한 거리미술제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7월 4일 오후 7시에는 팔달산 원형공연장에서 ‘붉은 꽃, 다시 피다’는 타이틀로 음악회가 열린다.
칠보산 자유학교 오카리나 공연, 오승환(보물창고)의 드럼공연, 김동현과 주말밴드, 썸타임즈, 파스텔블루, 마이킹, 설렁설렁노래모임 등이 참가하며, 자연음악 정광원과 마성구의 코파스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나혜석은 누구인가?
시대를 앞서간 예술인, 여성주의자 나혜석(1896~1948)
호는 정월. 1896년 4월18일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45번지에서 신문학을 존중하는 개화된 가정에서 나기정의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수원의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여자경영정보고등학교)와 서울 진명여고를 졸업한 뒤 1913년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유학시절에는 최승구·이광수와 교류하면서 동경 유학생 동인지였던 〈학지광〉에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이상적 부인〉 등의 글을 발표했다. 1918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함흥 영생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지내다가 3·1운동에 참가 후 체포되어 수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했고, 1921년 서울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첫 전람회를 열었다.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전시회로, 〈매일신보〉의 기사에 의하면 낙역부절하여 인산인해(絡繹不絶人山人海)였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이른 아침」(早朝)과 같은 목판화로 민중의 삶을 표현했다. 1922년부터 1932년까지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를 빼고는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한 재주 있는 화가였다.
나혜석의 회화는 시기별로 화풍이 다르게 나타난다. 동경유학이후부터 세계일주 이전까지의 작품(1918~1926)은 일본에서 습득한 아카데미즘과 인상파가 절충된 화풍을 보인다. 세계일주 및 유럽체류시기 작품(1927~1929)경향은 인상파 화풍위에 야수파 화풍과 입체파 화풍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귀국 이후의 작품(1930~1935)은 인상파 화풍의 작품과 파리시절의 스케치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자화상>, <무희>, <나부>, <정원>, <스페인의 풍경>, <파리풍경>등이 있다. 수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 <수원 서호>, <화령전 작약>도 있다.
나혜석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나서, 소설, 시, 산문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주의 글쓰기를 하였다. 동경유학시절부터 여성이 각성하여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근대적인 여권신장에 관한 글을 발표했고, 1918년 『여자계』에 그렇게 살기 위해서 여성들이 살림살이를 개량하는 구체적 방법까지 담은 여러 논설들과 신여성이 주변의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해 가는 과정을 담은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뚜렷한 여성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폐허> 동인을 구성하여 김억, 오상순, 염상섭, 김일엽과 함께 문학 활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나혜석은 남편과 세계일주 여행을 하던 중 파리에 머물면서 함께 예술을 논할 수 있었던 남자 최린과 사랑에 빠졌고, 그로인해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나혜석은 이혼 후 제10회 선전에서 <정원>으로 특선을 수상하였고, 다음해에 세계 일주 기행문인 「구미유기(歐美遊記)」를 『삼천리』지에 연재하였다. 1933년에는 미술연구소인 '여자미술학사'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했으며, 「우애결혼, 실험결혼」, 「이혼고백서」를 발표하면서 당시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고,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 관습을 거침없이 비판하였다.
그러나 1937년 무렵부터 집이 불에 타 상당수의 작품이 소실되고,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사회로부터의 비난과 경제적 궁핍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고, 1946년에 행려병자로서 불행한 삶을 마쳤다. 1948년 12월10일 서울의 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그의 무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