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교五溪橋.

구화산 다섯 계속의 물이 합수하여 흐르는 오계 위에 놓인 다리를 오계교라 하는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청양 시가지였다. 고현스님과 나는 오계교를 건너기전에 ‘장원이 묘’라고 부르는 곳으로 올라갔다. 무덤이 있는 언덕위에 서니 오계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강가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임박사님, 혹시 이(蝨)무덤이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무덤이라뇨?”

“우리 몸의 피를 빨아먹는 이 말입니다.”

“이무덤이란 것도 있습니까?”

나는 고현스님이 농담을 하고 싶어 그러는 줄 알고 웃으며 넘겨버렸다. 그러나 고현스님은 농담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저 무덤이 바로 이무덤입니다.”

“저렇게 큰 무덤이 이무덤이라고요?”

무덤의 비석에는 진사호부시랑 강공덕성지묘 進士戶部侍郞 江公德聲之墓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청양 사람들이 지금도 이 지방 출신 강 시랑의 무덤을 ‘장원의 묘’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당나라때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장원이 이름처럼 돼버린 것이었다.

고현스님은 나에게 이무덤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지장스님이 실수로 이를 죽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가 환생하여 청양 땅의 강덕성으로 태어났다. 어느 날 고향인 청양 땅을 들른 강 시랑은 지장스님의 등신불이 안치된 신광령神光嶺 삼층석탑으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러 올라갔다. 한참 기도를 하다가 강 시랑은 자신도 모르게 송곳을 꺼내 등신불의 팔을 찔렀다. 강 시랑은 자신은 전생의 일을 모르고 있으나 이의 몸이었던 자기를 죽인 지장스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등신불은 살아있는 것처럼 흰 피를 흘렸다. 흰 피가 계속 흘러 삼층석탑을 적셨다.

강시랑은 놀라 신광령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등신불을 지키던 위타천 신장이 철퇴를 들고 쫓아갔다. 그때 지장스님의 등신불이 ‘강 시랑을 죽이지 말라. 강 시랑이 나를 찌른 것은 이 한 마리를 살생한 전생의 나의 업이니라’ 하고 위타천 신장을 말렸다. 그러나 강 시랑은 위타천의 철퇴를 맞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미 등신불의 말이 들리지 않는 오계교를 넘어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강공이 피를 흐리고 죽은 이후부터는 지장 등신불을 보호하기 위해 탑 안으로 봉안하게 되어 누구도 친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현스님과 내가 숙박할 곳은 이미 예약한 구화산 구화가의 한 모텔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구화산의 후면이라고 할 수 있는 쌍계사 쪽으로 승용차를 이용해 먼저 갔다. 지장스님이 구화산에 처음 들어와 그곳을 먼저 찾아가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쌍계사쪽으로 가는 고현스님과 나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고현스님은 지장스님의 입산 경로를 추적해 밟는 것이었고, 나는 금지차가 현재 어떤 이름으로 바뀌어 맥을 잇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쌍계사까지는 승용차로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현스님은 쌍계사에 들러 지장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흥大興화상(1894~1985)의 등신불을 참배하고서는 이를 악물었다. 눈빛을 보니 신심이 솟구치는 표정이었다. 대흥화상 등신불은 육신당 안에 봉안되어 있었다. 등신불 왼편에는 앉아서 입적한 대흥화상을 넣은 큰항아리가 놓여 있었고, 오른편에서는 고향생불故鄕生佛이라는 글씨 밑에 지장 입상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쌍계사에서는 지장스님을 고향생불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대흥화상이 지장스님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육신당 안에 고향생불이라는 글씨를 붙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마당을 쓸고 있는 늙은 승려를 붙잡고 물었다

“서축운무차가 이곳에서 납니까?”

“아닙니다. 서축운무차는 저 절벽 위에 있는 구자암에서 생산하는 차를 말합니다. 이곳에서 나는 차는 쌍계운무차입니다.”

“맛을 한번 볼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지니고 있던 사기잔을 내밀더니 보온병을 기울여 차를 따라주었다.

“쌍계사의 중창주인 대흥화상께서 쌍계조아차를 가지고 와 쌍계사 주변에 차씨를 뿌려 개발한 차입니다. 우리들은 쌍계운무차라고 하지요,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지장스님께서 만들었던 방법을 따르고 있어 지장불차와 맛이 흡사하다고 합니다.”

“저 절벽 위에 있다는 구자암은 어디로 갑니까?”

“삭도를 타야 갈 수 있습니다.”

삭도란 케이블카를 말했다. 쌍계사 승려의 말대로 포장된 도로를 조금 더 올라가니 케이블카 정류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매표소 여직원은 두 사람만 태우고는 운행하지 않는다며 아예 표를 팔지 않았다. 갈 수 있는 방법은 관광객이 모이거나,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승용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현스님이 한참 만에 묘수를 하나 꺼냈다.

“임 박사님, 이렇게 합시다. 사람은 둘이 타더라도 표를 넉장 구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묘수 중의 묘숩니다.”

과연 고현스님의 말대로 매표소 여직원에게 표를 넉 장 사겠다고 하자 당장 케이블카의 작동을 준비하라고 남자 직원에게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어서 구자암으로 올라가 서축운무차의 맛을 감별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현스님은 지장스님이 구화산에 처음 입산하여 15년간 좌선했다는 반타석에 관심이 많았다. 케이블카로 절벽 위까지는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안내자 없이 팻말만 보고 구자암으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 분지 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관음전 노비구니를 만나 구자암을 물어보니 한참을 설명했다. 좀더 아래쪽으로 돌아가니 조그만 분지가 보였다. 작은개울이 흐르고 햇볕이 양명한, 솥처럼 생긴 구릉의 분지였다. 분지 기슭에는 대숲이 울창했고 대나무 사이사이에는 차나무가 무성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어디선가 지장보살을르 쉼없이 외는 창불唱佛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차를 마시는 휴게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휴게소 앞 양지바른 곳에서는 모택동 모자를 쓴 서너명의 남자들이 차를 마시며 장기를 두고 있었다.

“반타석이 어디 있습니까?”

고현스님이 묻자, 그들은 휴게소 뒤쪽을 턱짓으로 가리키고는 다시 장기에 몰입했다. 나는 주춤거리며 고현스님을 뒤따랐다. 반타석은 휴게소 바로 뒤 서너 걸음쯤에 있었다. 좌우에는 지장반야석地藏般若石과 지장제일수행처地藏第一修行處라고 음각된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나는 오줌이 마려워 재빨리 휴게소로 돌아와버렸다.

“서축운무차가 있습니까?”

“이 선차를 말하는 것입니까?”

차를 파는 아가씨가 내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장기는 두는 남자들은 들은 체 만체했다. 나는 아가씨가 내놓은 차를 마시다 말고 고현스님을 기다렸다. 고현스님은 반타석을 카메라에 여러 장면을 담고 나서야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구자암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광화원廣化院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지만 규모는 암자나 다름없었다. 그곳에 가서야 나는 서축운무차를 맛볼 수 있었다.

“지장스님께서는 말년을 구화산 남대에서 보내셨지요, 서축암은 남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의 차씨를 이곳에 심은 겁니다. 그러니까 서축운무차를 지장불차의 맥을 잇고 있는 선차입니다.”

차 한모금이 목을 넘어가는 동안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맛과 향이 느껴졌다. 광화원의 주지는 서축운무차의 맛과 향을 이렇게 표현했지만 나는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의 명차 중에는 단맛이 나는 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축운무차는 지장불차와 같이 명주실처럼 맑고 청량한 아침 이슬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주지는 지장스님에 얽힌 설화를 한 토막 들려주었다.

“지장스님이 신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구자암 주변에 심었는데 처음에는 싹이 트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장은 기도하고 염불하며 차씨가 싹트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도 차싹은 나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산 아래 사는 촌로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스님,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지장을 향해 촌로가 다시 말했다.

“스님, 밭에 무엇을 심은 것입니까?”

한참 만에 차밭으로 걸어가 말했다.

“차씨를 심었소.”

“스님, 결코 차싹은 트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다는 것입니까?”

지장은 비로소 촌로를 자세히 보았다. 촌로는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고, 그 수염은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대는 신선이 아닙니까?”

“저는 무지렁이 농사꾼일 뿐입니다.”

촌로는 지장이 서 있는 발 앞을 허리를 구부려 호미로 팠다. 그러자 까맣게 변한 차씨가 나왔다. 촌로가 입으로 가져가 어금니로 차씨를 깨물자 차씨 안은 썩은 채 아무것도 없었다.

“차씨가 싹이 트지 않은 것은 벌레가 해쳤기 때문입니다.”

“벌레가 차씨를 먹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묵은 씨앗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 시간이 지나 벌레가 먹기 좋게 씨앗이 썩어 있었던 겁니다.”

지장은 신라에서 가져온 차씨가 다 썩었다는 농부의 말에 낙심했다.

“이제 나는 차 대신 맹물만 먹고 사는 수밖에 없구려”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스님을위해 제가 미리 차씨를 한알 파내어 저의 밭에 심어둔 게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지장이 신라에서 가지고 온 금지차가 구화산의 한 촌로가 있어 살아남아 퍼지게 됐다는 설화였다.

나는 금지차의 공덕이 구화산의 한 촌로에게 옮겨진 듯하여 뒷 맛이 씁쓸했다. 촌로의 선견지명으로 금지차의 역사가 이어졌다는 중국인 중심으로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씁쓸한 기분을 광화원 입구에 세워진 제청탑渧聽塔을 발견하고서는 곧 털어버렸다. 제청이란 지장스님이 신라에서부터 데리고왔다는 흰개 선청의 다른 말이 분명했다. 구자암에 지장스님이 오래 머물렀고, 개가 고승처럼 탑에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청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시간이 너무 늦어 구화가로 들어가지 못하고 청양 시가지에서 숙박을 했다. 다음날 일찍 구화산 초입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산허리에서 막 솟구치고 있었다. 고현스님이 예전의 북대문촌을 들렀다 가자고 하여 잠시 승용차를 세워두고 길 아래로 내려갔다.

길 아래는 중국 민가 형식의 절이 하나 보였다. 절이라기보다는 사당에 가까웠다. 내어걸린 편액에는 이성전二聖殿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성전 모퉁이에는 햇볕을 쬐며 노파가 삐딱한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소우와 소보를 기리고자 세워진 절입니다.”

“지장스님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도 성인이 됐군요.”

이성전을 찾는 참배객들도 많은지 연못 주위에 인부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사자나 요 모양으로 돌을 쪼기 시작했다.

“천년 전에는 이들이 길잡이가 되어 화성사까지 안내했다고 합니다. 그 공덕으로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성인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승용차 기사가 재촉했다.

“여기도 다음부터는 입장료를 받을 겁니다. 그래서 인부들을 동원해 볼거리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99미터 크기의 지장스님 동상도 이 부근에 조성한다고 합니다. 어서 차를 타시지요.”

구화가로 가는 산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잘 포장된 길이지만 승용차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면서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끼익하는 파열음을 냈다. 나는 눈을 감고 소우와 소보를 떠올렸다. 나귀의 재갈을 잡고 느릿느릿 재를 넘어가는 신라 왕족출신의 그들이 숲 속에서 곧 튀어나올 것도 같았다. 나 역시 해동에서 온 사람으로서 지금 재를 넘고 있었다.

승용차 기사는 기원사 옆에 우리를 내려주고는 재빨리 청양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아마도 이성전에서 지체한 것을 화풀이라도 하는 듯 했다. 우리는 어이없어하며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드디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디어’하고 자못 감회에 젖었다. 지장스님이 지장신앙의 성지로 일군 구화산에 당도한 것이었다. 중국의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인 구화산에 지금 서 있는 것이었다.

-산서성의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사천성의 아미산에는 보현보살이 상주하고, 절강성의 보타산에는 관음보살이 상주하고, 안휘성의 구화산에는 지장보살이 상주하니 이 산들을 일러 중국의 4대불교 명산이라고 한 것이다.

그뿐인가. 이백이 철장의 시를 남긴 이후 구화산은 명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성지가 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북으로는 장강을 굽어보고, 남으로는 황산과 마주한 구화산에 와 있는 것이다. 저 우뚝 솟은 봉우리가 구화산에서 가장 높은 시왕봉이 아닐 것인가. 구화산은 저 시왕봉을 중심으로 99개의 봉우리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저 봉우리들도 99세로 입적한 지장스님과 기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구화가 거리로 나서자 거리에는 온통 지장보살의 창불 소리로 가득했다. 길가에 늘어선 절이나 상점이나 어디서든 나무지장보살을 유행가처럼 틀어놓고 있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南無란 귀의하다라는 뜻이 아닐 것인가. ‘귀의하다’라는 인도 말 ‘나마스’가 나무로 한역된 것이다. 어디를 가나 온통 지장보살에게 귀의한다, 라는 창불 소리가 우렁찼다. 우리는 지장스님이 구자암에서 이쪽의 구화산으로 넘어와 처음 수행했던 동굴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구화가 사람들은 노호동老虎洞 동굴이라고 불렀다. 장리 제갈절이 백토를 먹으며 수행하는 지장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 바로 그 동굴이 노호동인 것이었다. 이미 등산화로 갈아 신은 우리는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현스님, 노호동을 답사한 후에는 지장스님의 등신불을 볼 수 있는 겁니까?”

“시간은 충분할 것입니다.”

“정말 1200년 전의 지장스님 등신불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등신불은 남대의 육신보전에 있습니다.”

“육신보전이라면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이 아닙니까?”

“하하.임박사님은 이미 지장불차를 마셨는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으십니까?”

나는 고현스님의 말에 대답을 못하고 궁색해졌다. 사실, 내가 등신불을 반드시 친견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굳이 찾아면 등신분을 친견하고 싶어하던 고인이 된 아내의 소원을 내눈을 통해 대신 보아주는 정도일 뿐이었다. 나는 천년 전 지장스님이 마셨단 금지차의 맛을 보았으니 지장스님을 뵌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는 저녁 예불을 육신보전에서 볼 예정입니다. 그곳 스님들과 상의할 일도 있고요.”

“등신불을 국내로 모셔오는 일 때문이군요.”

“맞습니다.”

땀을 두어 번 흘리고나자 동애東崖절벽 위에 동굴이 하나 보였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에 노호동이라고 음각한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동굴 초입과 너머에는 작은 암자 두 채가 새집처럼 얹혀 있었다.

동굴 문은 잠겨 있었다. 초입의 암자에 사는 초로의 비구가 나타나 절벽 위에 지은 암자로 가 허락을 맡아야 된다고 말했다. 노비구니가 동굴 문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노비구니는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화부터 냈다.

“당신들에게 문 열어줄 수 없소!”

고현스님은 난감해했다. 참배를 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는 노비구니였다. 내가 가서 따지듯 말했지만 더 소리소리 지를 뿐이었다. 동굴 안의 지장보살에게 참배하려면 시주부터 먼저 하라고 우겼다.

“스님, 좀전의 비구와 비구니스님의 얼굴아 닮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만.”

마침 옆에서 언쟁을 지켜보고 있던 처사에게 물어보자 나의 예감은 옳았다.

“저 비구스님은 비구니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낳은 아들입니다. ‘문혁’때 노호동도 다 파괴되고 말았지요. 비구니스님이 여기에 와서 살자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까요. 저 비구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불심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이상해져 방황하다가 어머니를 찾아 노호동으로 와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는 출가했다고 합니다.”

처사는 노호동으로 오는 돌계단을 놓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노호동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자신의 처지까지 고백했다. 처사 말고도 노호동에는 위구르 인처럼 눈이 파랗고 머리에 빵모자를 쓴 노처녀가 출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노비구니는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었다. 아들인 비구나 소리치는 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며 자신과 어머니의 법명을 땅바닥에 써주었다. 그는 등량燈樑이었고, 노비구니는 대정大淨이었다.

“출가는 어머니 밑으로 했지만, 법명을 제가 지었습니다. 세상의 등불이 되고 기둥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기분을 풀었다. 내가 1백위원을 시주하겠다고 하자 노비구니에게 달려가더니 당장에 열쇠 꾸러미를 들고 와 동굴 문을 따주었다. 나는 동굴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이북에서 기웃거리고 말았다. 지장보살이 본존이고 우측에는 조잡하게 만든 호랑이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시주한 것에 비하면 동굴 안은 실망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등량에게 차나무가 있는 곳을 안내해달라고 말했다.

“노호동 부근에 자생 차나무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천년은 됐을 겁니다. 차나무로서는 고목이지요.”

동굴 위로 암벽타기를 하듯 오르자 좌선대 가까이 차나무 고목이 자라고 있었다. 지장스님이 직접 심은 차나무라고는 단정하기 곤란하지만 금지차나무의 자손이 아닐까 하고 나는 추정했다. 나는 고목이 차나무를 보고 나서야 노호동에 온 것을 만족했다. 욕쟁이 노비구니에게 먹은 욕설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었다.

노비구니는 시주를 받고 나서야 차 대접까지 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찻잎을 지장보살님 전에 놓고 기도한 뒤 만든 차라 맛이 다를 거요.”

작설차와 비슷했다. 지장불차는 반발효차라는데 이것은 족보가 다른 하품 차였다. 그래도 중국이 수질이 안 좋아 맹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맛과 향이 없더라도 차를 마시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고현스님은 구화산에 여러번 왔지만 노호동은 처음 찾는 모양이었다. 감개무량한지 호랑이 유골을 안치한 탑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나 나는 노비구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호랑이 유골을 안치한 탑이라기 보다는 노호동에서 수행한 고승의 것으로 믿었다. 탑에는 심엽태허心葉太虛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새져겨 있었다. 호랑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글씨였다.

노호동에서 숙소로 돌아오면서 나는 고현스님에게 암호 같은 네 글자를 내 나름대로 풀이하면서 중얼거렸다.

“심엽이나 태허라는 스님의 부도가 아닐까요?”

그러자 고현스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습니다. 태허하는 고승은 실존한 인물입니다. 그 대사가 바로 ‘신라김교각 중국지장왕新羅金喬覺 中國地藏王’이라고 지장스님을 정확하게 평한 분입니다.”

“그렇다면 심엽은 그분이 법호가 아닐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심엽心葉이란 제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보는 단어입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 예불시간 전에 육신보전으로 올라갔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행렬을 두고 국내에서 ‘마치 거대한 용이 승천하는 기세와 같다. 은하수의 도도한 흐름과 같다’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사실이 그랬다. 나는 인산인해의 행렬에 밀려 어느새 질려버렸다.

인파에 떠밀려 고현스님과는 헤어져 걸었다. 나는 혼자서 참배객들의 기세에 눌려 외톨이가 되어 한 계단 한 계단을 딛고 있었다. 육신보전 마당이 향로는 불이 난 듯 연기를 피워올리고 참배객들은 너나없이 머리를 콩콩 찧으며 절을 했다. 나도 향을 한 다발 사서 들고 향로에 꽂고 불을 붙였다. 나는 합장한 채 고개를 숙였다. 한참 만에 문득 떠오른 아내의 영가를 불렀다.

-아내여, 당신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지장보살이 등신불을 모신 육신보전 앞에 섰고. 당신과 내가 일심동체라면 당신이 서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영가여, 당신과 헤어진 지 2년 만에 대원사에 들렀을 때 고현스님이 어느 영가를 위로하던 말이 생각나는 구려.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는 것 또한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소. 그러나 생사에 매이지 않은 청정한 한 물건이 있다고 했소. 영가여, 부디 청정한 한 물건으로 되돌아가 마음내키는 일마다 거리낌 없이 자유를 누리기 바라오.

나는 불현듯 감상에 젖어 목이 메었다. 아내에게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잇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천천히 육신보전 앞의 계단을 올라갔다. 저녁 예불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오불관오불관을 쓴 지장보살상 좌우에는 승려들이 염불을 크게 외고 있었다. 참배객들을 위해 정면의 자리는 비워두고 있었다.

나는 보전 문턱을 넘어가 불전에 시주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한 승려가 맑은 소리가 나는 불구를 뎅뎅뎅 하고 쳐주었다. 누군가가 나의 등을 두드렸을 때에아 나는 일어났다. 돌아보니 나이 지긋한 한 승려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전 안은 여전히 장엄한 염불 소리가 공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지장스님의 등신불은 어디 있습니까?”

“저 안에 있습니다.”

“친견할 수는 없습니까?”

“지장보살께서 아직 지옥중생을 다 제도하지 못하여 친견할 수 없습니다. 지옥중생을 다 제도한 후에야 저 탑원을 개봉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아쉬움 같은 것이 없었다. 아내의 영가는 이미 등신불을 친견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기분 때문에 나는 미련없이 육신보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어둠이 나를 감쌌다.

구화가의 불빛이 가까이 다가와 반짝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천년 전 지장스님이 이룩한 지장성지 연화볼국에 와 있었다. 구화가 거리 상점들에서는 여전히 염불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지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는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 위층에 있는 다장茶莊으로 들어갔다. 지장불차를 한잔 시켰다. 차가 나오는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무엇 하러 구화산에 와 있는지도 물었다. 아내의 영가를 위해 와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꼭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이 전부라면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회사원으로서 금지차를 연구하기 위해 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었다. 나는 지장불차 한잔을 놓고서 담배를 빼물고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 잠시 후에야 나는 맑게 우러난 지장불차를 천천히 마셨다. 그러자 지장불차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맛과 향을 냈다. 자비로운 지장스님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맛과 향이었다. 지장스님이 남긴 향기가 무엇이었는지 음미하게 해주었다.

차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맛과 향을 찻잎에서만 찾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라고. 너 자신의 삶이 차의 맛과 향처럼 향기롭게 변해야 한다고. 지장스님이 환생하여 나와 차를 한 잔 한다면 바로 그런 법문을 해줄 것만 같았다.

나는 식어버린 차에 나의 눈물을 보탰다.<계속>

글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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