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6

(사진=장명확)

나와 남을 집착하고 그른 길만 찾아다녀(着我耽人 擧枉措直)

여러 생에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累生業障 一切愆尤)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仰三寶以慈悲 瀝一心以懺悔)

“분별심이 문제야. 분별심을 없애야 해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애초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공(空)이기 때문입니다.” 

불연을 맺어 절에 다니면서 스님들에게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데, 조금 따지고 들어가 보면 몹시 헷갈리는 내용이다. 한참을 생각하노라면 공연히 의문이 일어나기도 한다. 

“뭐라. 분별하지 말라고? 그러면 애나 어른이나 사람이나 개나 다 똑같이 대해야 하는 건가? 옳고 그름이 없다면, 악질 범죄자도 연쇄살인마도 잘못된 게 없다는 것인가? 모든 게 다 공하면 선업과 악업은 왜 구분할까?”라는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분별심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분별심을 없애라는 것은 구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아이와 어른이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분별심을 없애라는 것은 마주치는 대상들에게 공연히 의미를 부여하거나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컨대, 물은 그 자체로 그냥 물이다. 그런데 보통의 중생은 물을 보면 ‘시원한 것’, ‘좋은 것’, ‘더러운 것’, ‘생명을 낳는 근원’ 등등 알음알이를 내면서 저마다 의미를 부여하려는 속성이 있다. 물론 이런 알음알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목마른 이에게 감로와 같은 물이지만, 펄펄 끓으면 데거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홍수처럼 넘쳐흐르면 몹시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물에 고정적이거나 특정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 허상을 진짜라고 믿는 것이 ‘분별심’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기로 하자. 한 여인이 다른 한 여인에 비해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가지런하며 키도 크고 야윈 몸매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반면 나는 이런 이유로 이 여인이 저 여인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는데 당연히 이 여인이 더 마음씨도 좋고 더 나을 것이라는 등의 선입견을 갖는다면 분별심이 일어난 것이다. 잘생긴 것이나 예쁘다고 하는 생각은 내가 만든 기준에 따른 허상일 뿐이다. 

아무려나, 불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용어 가운데 하나가 분별심이다. 어지간한 불자라면 법문이나 불서를 통해 ‘분별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자주 듣거나 읽었을 것이다. 분별심은 사물과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평가·개념을 형성하는 마음의 경향을 말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고통과 번뇌의 근원으로 보고 경계한다. 

일명 ‘알음알이’라고도 불리는 분별심은 일상에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수행의 측면에서는 공연하고 허망한 분별을 일으켜 망상을 낳는 토대가 될 뿐이다. 분별심은 감각·감정으로 얻은 판단이나 좋고 싫음 등이다. 불교에서 분별심은 욕망·무지·분노·공허·고통으로 이끄는 악업의 종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분별심이 사라지게 되면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사라져 자유자재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수행의 관점에서 분별심은 버려야 할 대상이거나, 연연하거나,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이다. 다만 자유롭게 사용하되 실체로 착각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분별에서 벗어나면 분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 적절히 분별할 수가 있다. 분별심에서 벗어나려면, 희론을 여의고 바른 견해를 세우는 수행을 해야 한다. 

분별심과 무분별심은 마음 작용의 방식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분별심은 사물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마음, 즉 번뇌와 집착이 섞인 상태를 의미하며, 무분별심은 분별하지 않고 본래의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분별심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판단이나 비교, 선입견 등이다. 무분별심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로 번뇌나 집착이 없는 고요한 마음이다. 당연히 분별심을 내려놓을 때 진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운허스님께서 ‘나와 남을 집착하고’로 옮긴 ‘착아탐인(着我耽人)’은 ‘나(我)’에 집착하고 ‘남(人)’에게 탐닉한다는 의미로, 앞에서 언급한 분별심을 표현한 말이다. 이번에 다룰 발원문 구절의 요점은 분별심의 위험성을 알리고, 분별심을 버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분명한 드러냄이다. 

착아는 나와 남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헛된 욕심을 내는 행위이며, 수행자가 경계해야 할 매우 중요한 번뇌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무아(無我)’, 즉 모든 존재에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생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고 집착함[착아]으로써 번뇌에 빠지게 된다. 남에게 탐닉하는 것이 탐인(耽人)이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 혹은 남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몰두하거나, 남에게서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이 탐인에 해당한다. 

이처럼 착아탐인에서 비롯된 번뇌를 극복하기 위해 무탐(無貪), 즉 탐욕 없는 마음을 닦아야 하고, ‘나’라고 하는 에고(ego)에 대한 집착과 ‘남’을 향한 집착과 욕심으로 생겨나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운허스님께서 ‘그른 길만 찾아다녀’로 옮긴 거왕조직(擧枉措直)은 중생들이 번뇌와 집착으로 인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의미한다. 거왕조직의 문자적 의미는 ‘굽은 것을 드러내고 곧은 것을 놓는다.’는 것인데, 운허스님은 ’굽은 것을 바로잡지 못한다‘는 뜻에 주목해 ‘그른 길만 찾아다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거왕조직 누생업장 일체건우(擧枉措直 累生業障 一切愆尤)는 착아탐인, 즉 분별심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과보에 대한 언급인데, 그 의미는 ‘굽은 것을 바로잡지 못하여, 여러 생에 걸쳐서 지은 업장과 모든 허물을 쌓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 구절은 불교에서 중생이 잘못된 길을 걸으며 쌓은 업보와 죄를 참회하는 내용의 일부에 해당한다. 

‘누생업장(累生業障)’이란 여러 생(生)에 걸쳐 쌓아 온 업(業)으로 인해 생긴 장애라는 뜻이다. ‘누(累)’는 겹치거나 쌓였다는 뜻이므로, 여러 생, 즉 전생과 현생을 거듭하면서 업장, 즉 악업을 축적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업(業)은 몸과 말, 생각으로 짓는 행위를, 장(障)은 장애를 뜻한다. 따라서 누생업장은 과거 여러 생에 걸쳐 쌓인 악한 행위(업)로 인해 현재나 미래에 겪게 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말한다. 

대승불교 권에서는 이런 누생업장을 수행으로 없앨 수 있다며, 염불과 기도, 참회 등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가르친다. 이런 수행을 통해 업의 어두움을 밝히고, 끊임없는 정진으로 업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아마도 불자들에게 조금은 낯선 용어가 ‘일체건우(一切愆尤)’일 것이다. 일체건우는 ‘모든 허물과 죄’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한 자 한 자의 의미는 ‘一(일)’은 ‘모든’을, ‘切(체)’는 ‘모두 또는 온통’을, ‘愆(건)’은 ‘허물이나 잘못’을, ‘尤(우)’는 ‘허물이나 과실, 죄’이다. 따라서 ‘일체건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은 모든 잘못과 허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불교의 참회 문구나 발원문에 사용되는데, 자신의 모든 허물을 뉘우치고 참회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산혜연선사는 뒤이어, 분별심으로 인하여 그른 길만 찾아다니며 쌓은 모든 허물들을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법)과 상가(승), 즉 삼보(三寶)에 의지하여 자비와 원력을 구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발원하신다. 운허스님이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로 옮긴 이 구절의 한문 원문은 ‘仰三寶以慈悲 瀝一心而懺悔(앙삼보이자비 역일심이참회)’이다. 여기서 ‘앙(仰)’은 서 있는 사람을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이며, 삼보전(三寶前)은 불교의 세 가지 보물, 즉 부처님·법(가르침)·상가(승)를 뜻한다. 운허스님은 ‘이자비(以慈悲)’를 ‘원력 빌어’로 옮겼는데, 원력이 불(佛)·보살(菩薩)의 자비로운 힘과 서원을 의미하므로, 매우 간결하고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심참회 하옵나니’의 원문은 ‘瀝一心而懺悔(역일심이참회)’인데, 한 마음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인 ‘역(瀝)’은 ‘스며들 역’ 또는 ‘물방울이 떨어질 역’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다. 마치 물이 스며들거나,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마음 깊이 철저하게 뉘우치고 또 뉘우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한 번에 무 자르듯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 물이 천에 스며들 듯이 사무치게 반성한다는 것이니, 그 간절함을 ‘역(瀝)’이라는 한 글자로 표현한 것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