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낭이 구화산을 찾은 것은 소우와 소보가 북대문촌에서 화성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낭낭은 소우 형제가 구화산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역시 삭발한 소우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낭낭이 구화산을 찾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 놀랐다. 낭낭이나 소우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소우가 놀라 말했다.
“낭낭이 아닌가?”
“나으리, 낭낭이옵니다.”
“이보시오, 낭낭. 이제 난 나으리가 아니라 스님이오. 보시다시피 삭발하지 않았소?”
“그, 그렇사옵니까?”
낭낭은 출가자가 무슨 까닭으로 북대문촌에 머물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못했다. 소우와 소보는 북대문촌 어귀의 민가에서 살고 있었다.
“낭낭은 무슨 일로 구화산을 찾아왔소?”
“지장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스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것은 어찌 알았소?”
“지장스님이 구화산에 계시다는 소문은 서라벌에 파다합니다. 모르면 신라 사람이 아니지요.”
“그럴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스님께서 백성과 현감이나 자사는 물론이고 황제의 귀의를 받고 있습니다.”
낭낭은 마음속으로 합장했다. 아, 스님께서 드디어 보살이 되셨구나. 젊은 시절에 강사, 법사, 율사, 선사를 넘어 보살이 되시겠다고 나에게 말슴하지 않았던가. 스님께서 마침내 성인이 되셧구나.
화성사로 가는 사람들이 모이자, 소보가 소리쳤다.
“무거운 짐은 나귀 등에 얹으시오. 이제 곧 화성사로 떠납니다. 어서, 짐을 가져오시오.”
나귀는 두 마리였고 머리와 목에 방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소우와 소보는 뒷발질하는 나귀의 재갈을 잡고 있었다.
뎅그렁 딸랑 뎅그렁 딸랑.
나귀는 방울 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나귀 뒤를 따라나섰다. 나이 들어 살갗이 거질해지긴 했지만 젊은 시절의 미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뱃길이 험하지는 않았소?”
“운좋게 장사하는 사촌 오라버니에게 부탁하여 장삿배를 타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우님은 왜 출가했다면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얘기하자면 길어집니다. 모두 내가 지은 업보지요.”
“업보라니요?”
“업보가 아니면 무엇이겠소. 지난날 낭낭을 괴롭힌 일도 잊혀지지 않는구려. 용서하시구려. 악업이 씻길 때까지 이런 일을 계속하려고 하오.”
낭낭이 볼 때 소우의 악업은 이미 씻긴 것 같았다. 예전의 험상궂은 얼굴이 아니었다. 소우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마음씨 좋은 촌부처럼 변해 있었다. 잿마루에서 소보가 일행에게 소리쳤다.
“나귀가 힘들어하니 쉬었다 갑시다.”
나귀가 침을 흘리고 더운 콧김을 내뿜으려 거친 숨소리르 뱉어냈다. 소우는 나귀에게 먹이를 주며 그늘에서 쉬게 했다. 소우와 소보의 몰골은 수행승이 아니라 영락없는 마바리꾼과 다름없었다. 낭낭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싸가지고 온 음식을 소우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소우는 웃으며 거절했다. 일행 중에서 누군가가 술을 권하자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나귀가 힘을 내어 발굽으로 땅을 헤치자, 다시 일행은 재를 넘어갔다. 재를 넘자마자 멀리 화성사가 보였다. 낭낭은 가슴이 뛰었다. 지장을 다시 만나게 된다니 손에 땀이 나기까지 했다. 세월이 흘렀건만 낭낭은 소녀 시절로 되돌아갔다. 내리막길로 들어 나귀의 방울소리가 더욱 낮아지자 몸이 허방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불안했다
낭낭은 걸음을 늦추면서 멈칫거렸다. 자신에게 아직도 지장을 사랑하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낭낭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어딘지 어색했다. 자신의 마음속에 젊은 시절의 그런 열정은 식어버리고 없었다.
그렇다면 우엇 때문에 지금 화성사로 가고 있는지 낭낭은 스스로 궁금했다. 선뜻 그에 합당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낭낭은 지장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지장이 갑자기 멀어졌다. 가까이 다가갈 수 ㅇ벗는 보살로 느껴졌다. 그러나 낭낭은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큰스님을 뵈러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장이 큰스님이 되기를 기도하지 않았던가. 큰스님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나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다. 나의 삶은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나느 지금 지장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귀들이 진저리치는 소리를 냈다. 재를 넘어왔으니 힘들어할만도 했다. 나귀들의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행들은 명안천으로 다가가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언월지 가에서 상인들이 파는 물고기를 사서 방새을 했다. 낭낭도 물고기 두어 마리를 사서 언월지에 풀어주었다. 물고기는 수심이 깊은 곳으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소우가 지장에게 보고했는지 시자 도명이 나타나 일주문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낭낭게게 말을 건넸다.
“신라에서 오셨습니까?”
“네.”
“그럼, 소승을 따라오십시오.”
낭낭은 도명을 따라 법당 뒤 차밭으로 갔다. 지장은 차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낭낭은 지장의 모습을 보고는 실망했다. 큰스님이 된 지장이 법상에 앉아 찾아온 신도들에게 지장이성금인을 찍어주면 법문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장의 모습은 시자인 도명보다도 남루했다. 갑자기 낭낭은 눈물이 났다.
“스님.”
“낭낭이구려.”
“스님이 지장스님이란 말입니까?”
금빛으로 번쩍이느 금란가사를 입고 신도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는 서라벌 고승의 모습만 보아왔던 낭낭은 지장의 남루한 모습를 보자 슬펐다. 낭낭은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낭낭은 쓰러져 한동안 흐느꼈다. 지장이 자신의 손을 잡아 일으켰을 때에에 눈물을 멈추었다.
“낭낭은 나에게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이오?”
“저는 평생 스님께서 도를 닦아 큰스님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하하.”
지장이 파안대소를 하였다. 그러더니 짖궂은 얼굴로 말했다.
“호미질하는 이 늙은 중을 보고 실망했다는 말이군요. 그동안 나를 위해 헛기도를 했으니 안됐구려.”
도명도 웃음이 나오는 듯 뒷걸음질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도명아, 먼 데서 손님이 오셨으니 찻물을 끓여놓아라.”
절로 돌아오자 화성사를 찾아온 신도들이 일제히 지장을 향해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했다. 모두다 지장이성금인을 받으러 온 신도들이었다. 지장이성금인을 받아 지니면 지장보살의 가피를 받아 살아서는 재앙을 만나지 않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장이성금인을 찍는 종이는 승유가 한 사람씩 줄을 서게 하여 나누어주었다. 금인이 찍힌 종이를 받은 신도들은 바로 재를 넘어가거나 화성사에 머물려 지장의 법문을 들었다. 지장은 돌아가는 신도들을 위해 절문 밖까지 나가 배웅했다. 그냥 합장만 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낭낭은 서라벌에서 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당황했다. 서라벌에서는 고승이 문 밖까지 나와 오체투지로 배웅하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 뒤에야 낭낭은 차를 마시며 지장에게 물었다.
“스님, 신도들에게 오체투지 하는 것이 이곳의 법도입니까?”
“아니요, 나는 칙사가 오면 일하는 밭에서, 자사가 오면 방안에서, 현감이 오면 방 밖에서, 신도가 오면 절문 밖에 엎드려서맞이한다오.”
“세속의 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하시는군요.”
“불도를 믿는 수행자는 당연히 그래야지요. 중생이 바로 부처가 아니겠소.”
“제자들도 많은데 왜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인지요?”
“손발을 놀리는 자는 보살이 아니오. 나는 일찍이 그대가 준 신발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소. 나이 제자들은 지장혜地藏鞋라 부르고 있소. 지장혜는 나에게 중생을 위해 손발을 놀리지 말라는 화두가 되었소.”
지장이 지장혜를 내보이자 그제야 낭낭은 놀란 가슴을 쓸었다. 지장은 신라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틀림없는 보살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낭낭은 차를 마저 마시며 자신의 기도가 헛되기 않았음을 느꼈다. 낭낭은 일어나 지장 앞에서 삼배를 올렸다.
“스님, 이제야 저의 서원이 이루어졌음을 깨닫습니다. 절 받으십시오.”
낭낭은 법열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쏟고 나자 마음이 통쾌했다. 업장이 녹아내린 듯 청정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스님, 온몸이 청정해진 것 같아 견딜 수 없습니다.”
“낭낭이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오.”
지장은 실제로 낭낭의 몸에서 향기를 맡았다. 지장은 낭낭의 개달음이 있다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장은 물러선느 낭낭에게 한마디 던졌다.
“낭낭은 이제 그대를 위해 사시오.”
그런데 낭낭은 그날 밤 처소로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자신의 삶이 완성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자신의 삶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신라로 돌아가 살아간다는 것도 허망한 일 같았다. 출가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기운 달처럼 너무 늦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낭낭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달이 사라지기 전에 명안천으로 나아갔다. 달빛 라래서 바가지로 물을 떠 먼저 손발을 씻고 천천히 세수를 했다. 이제 지장보살을 친견했으니 더 이상의 원은 없었다.
-그래, 누가 나이 삶을 헛되다고 할 것인가. 지장은 보살이 되고 있다.
낭낭은 언월지 가에 섰다. 언월지는 달빛이 금빛으로 내려앉아 빛나고 있었다. 낭낭은 치마를 둘러쓰고 돌게단 위에 올라섰다.
-이제는 나를 언월지에 방생하자. 자비로운 부처님이시여. 지장보살님이시여. 나를 방생해주소서.
낭낭은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도량석도 치르지 않은 고요한 새벽이었다. 잔잔한 언월지 수면이 금빛으로 번쩍였다. 하얀 이빨처럼 물길이 튀며 풍덩 하는 소리가 났지만 곧 잦아들고 말았다.
날이 밝아서야 낭낭이 시신은 물 위에 떴다. 낭낭의 시신임이 알려지자 화성사 승려들이 달려나와 수습했다. 자장은 승유에게 낭낭을 화장하라고 일렀다. 낭낭의 죽음을 인연법대로 처리하라는 담담한 당부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사 승려들은 낭낭의 시신을 화장한 뒤 일장춘몽 같은 그녀의 사랑을 위로하기 위해 명안천 옆에서 몇 날 며칠 도안 아미타불을 염불해주었다. 그제야 지장은 제자들에게 돌을 깎게하여 명안천 옆에 낭낭탑娘娘塔을 세워주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