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간화선은 상근기들을 위한 고차원의 수행법이다. 그래서 하근기들은 염불이나 해야 한다.” “간화선은 너무 폭력적이다. 자비심을 키울 수 없다.” “깨달음에 대한 집착과 광기의 수행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간화선을 종지로 삼고 있는 조계종 스님들조차 바랑을 메고 남방의 위빠사나 수행처를 찾아 나서고 있다. 스님들 사이에서 위빠사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분위기는 몇 년 새 사라졌다. 재가불자들 또한 위빠사나가 진짜 부처님 수행법이라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환호한다. 불교 수행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간화선의 입지는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다.
‘이~뭣꼬’ 하면서 골똘히 의심하고 참구하랬더니, 간화선이 진짜 불교수행법인가 하는 의심만 증폭된 꼴이다.
간화선 참모습 알리기 위해 원행 마다하지 않다
이같은 간화선에 대한 의심을 덜어주기 위해 첩첩산중에서 수행 중이던 선사가 직접 저자거리로 나왔다.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이 화두선에 관한 글을 엮은 『쉬고, 쉬고 또 쉬고』를 들고 온 것이다.
오지 중의 오지인 봉화 문수산 축서사는 1년에 두 달을 제외하고는 항상 안거중인 사찰이다. 다른 절에서는 하안거, 동안거가 각각 3개월인데 비해 축서사는 5개월이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앉아서 참구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그런 축서사의 선원장 무여 스님이 힘든, 또 무거운 걸음을 하셨다. 하안거 도중 서울 나들이를 하신 것이다. 처음에는 못 오신다고 하시더니, 취재진 여럿이 찾아간다고 하자 ‘차라리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낫겠다’며 기꺼이 먼 길을 나오신 것이다.
해맑고 온화한, 너무도 자비로운 미소를 지닌 스님은 경상도와 강원도의 접점 봉화의 구수한 사투리로 “이 책이 화두 이야기라 내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더래여”라고 말했다.
스님의 첫 마디는 “간화선은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최상승의 수행법, 수행법 중의 수행법”이라는 것이었다.
“확철대오 하려면 간화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초보자가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어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자갈길을 터덜터덜 갈 때는 트럭보다 훨씬 못해요. 그러다가 고속도로에 딱 올라가면 260km, 300km 할 것 없이 마구 내달릴 수 있지요. 간화선을 차로 비유하자면 바로 그 최고급 승용차입니다.”
스님은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다음과 설명했다.
“내세울 게 없는 사람 말을 저 사람이 책으로 엮었네”
“저는 내세울게 없는 사람입니다. 40여년간 절집 생활을 하면서 불교, 그리고 선을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치고 전해야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 왔습니다. 오직 이것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고민의 결과를 저 나름대로 법문했는데, 요즘 사람들한테 맞도록 저 처사(오시환)가 엮는 것이 『쉬고 쉬고 또 쉬고』입니다.”
이 책의 글들은 2007년 1년간 축서사에서 무여 스님이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간화선에 관해 법문한 내용을 다음 카페에 올렸는데, 이를 요약해 해장금 오시환 사장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스님은 간화선이 왜 수승한 수행법인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참의심이 일어나서 공부가 잘 되기 시작할 때는 자신도 놀라게 됩니다. 집중이 되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의심들이 한 덩어리(疑團)가 됩니다. 그리고 이윽고 깊은 선정에 빠집니다. 화두에 참의심이 나면 집중이 돼도 아주 되고, 집중이 잘 되어서 깨치면 바로 부처 경계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스님 또한 간화선이 아주 쉽게 누구나 접근할 수 없는 수행법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간화선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초가 안 된 상태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납득이 되는데, 실제 해보면 안 되는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간화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흡법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호흡법을 통해 적당한 과정을 거쳐서 일정한 상태가 되면 분위기가 갖추어 지고 발심이 됩니다. 신앙심이 돈독한 상태가 되어야 화두가 잘 잡힙니다. 저는 우리 절에서 안거 중인 스님들한테도 반드시 예불에 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스님의 책 제목이 ‘쉬고, 쉬고 또 쉬고’인 것 또한 초보자들이 간화선에 접근하는 세 단계를 함축해서 설명한 것이다.
“쉰다는 것은 일체 잡스러운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쉬어야 수행에 들어갈 수 있고, 수행을 하면서 또 쉬게 됩니다. 첫 번째 쉰다는 것은 참선을 하기 전 평상시에 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생각도 아주 복잡다단합니다. 생각이 복잡하면 그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늘 쉬면서 한두 군데 집중하는 습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쉰다는 것은 화두를 처음 잡기 시작하면서 쉰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고요함이 생기므로 자연히 쉬게 됩니다. 세 번째는 깨달으면 참으로 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쉰다’는 말을 화두로 삼으십시오. 스스로를 쉬게 하면 본격적으로 간화선을 하게 될 때 보다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즐겁게 신나게 리듬을 타면서 화두를 희롱하라
스님은 “수행을 즐겁게, 신나게, 리듬을 타면서” 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화두를 희롱하라”고 했다.
“저는 여행하는 기분으로 화두를 들라고 합니다. 여행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인해 밤잠을 설칩니다. 무엇이든 신나서 하면 이내 시간이 가버립니다. 참선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도 있고, 맹렬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결을 타듯 강약을 타야 합니다. 누구나 달마처럼 10년을 두눈 부릅뜬 채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화끈하게 할 때는 하되, 약간 느슨하게도 하면서 자신의 발심, 신심 정도에 따라 강약을 두면서 해야 합니다. 화두를 희롱하면서 해야 합니다. 화두를 쫓아가면 따라가기도 바쁘죠. 그런데 화두를 희롱하면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테크닉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고속전철을 타고 가면서 스쳐 지나가듯 가버리는 이가 있는 반면, 완행열차를 타고 즐기면서 가는 이도 있습니다. 화두를 하면서 머리가 아프다, 귀가 안들린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은 모두 완급 조절을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스님은 법문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불교가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사람들이 고요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래서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불교가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불교가 인류에게 무엇을 통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열쇠는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바쁘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사상은 경책인 동시에 참행복을 얻을 수 있는 참 좋은 가르침입니다. 화두란 것은 그리 어렵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루에 세 번씩만 자신을 돌아봐도 나날이 변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래 더 발전한, 참으로 대견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은 “아무쪼록 이 보잘것 없는 책이 여러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내고 쑥스러운 듯 해맑은 미소를 던졌다. 50여년간 깊은 산속에서 화두를 붙잡고, 1년에 열달을 안거에 지내온 스님의 미소를 보면서 갑자기 간화선에 대한 의심이 한 순간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져온 최상승 수행법이 우리를 저 피안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