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맥을 100% 잡아드립니다.”

“꿈자리가 어지러우세요. 이 그림을 붙여놓고 잠을 자면 몸이 개운해 집니다.”

신문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달마도 광고 문구다. 인도에서 갈대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와 중국에 처음으로 선(禪)을 전파했다는 달마가 어쩌다가 수맥 잡는 귀신이 되었단 말인가.

“달마도는 미신화나 부적화가 아닙니다. 달마 조사의 정신을 담고, 수행자의 맑은 기운을 담아 불법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림이 선화(禪畵)의 본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선화가 수맥을 쫓는 부적처럼 여겨져서 큰일입니다.”

37년간 선화를 그려온 범주 스님는 “달마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님은 “선화는 진리와 불성을 일깨우는 선의 정신을 담은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불성의 다른 말은 생명력입니다. 모든 존재 개개인이 지닌 생명의 힘이 바로 불성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업을 짓게 되고, 본성광명이 때를 입어 어두운 기운이 나오기도 합니다. 선화란 선의 근본의미를 그림에 담음으로써 마음을 밝게 하고, 어두운 기운을 사라지게 하는 수행의 도구입니다. 달마도는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선화인데, 요즘 자꾸 장사치들에 의해 본래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범주 스님이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천년달마도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칠선화(漆禪畵)와 선다기(禪茶器) 전시회를 개최한다.

스님이 자신의 달마도에 천년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번에 전시하는 달마도가 나무나 종이를 1000년간 보존한다는 옻칠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선화는 먹을 곱게 갈아 화선지나 닥종이에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그런데 스님은 전통 닥종이에 먼저 옻칠을 해 말린 다음 그 위에 선화를 그리고 다시 옻칠을 덧칠했다. 그리고 표구를 하는 액자까지 옻칠을 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저는 본래 옻을 타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장갑을 끼고 온몸에 비닐 옷을 감고 제작을 해도 공기 중에 날리는 옻 때문에 온몸이 시뻘겋게 올라와요. 그래도 반드시 옻을 선화에 도입해 천년을 보존할 수 있는 달마도를 제작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옻의 독성과 싸우며 칠선화를 시도했지요.”

스님은 지난 1년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옻칠을 그림에 도입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번에 칠선화, 즉 옻칠을 한 선화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했다.

“사람들이 보통 달마도가 영험 있는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그림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해 어두운 기운을 사라지게 하는 정화의 기능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기운을 없애는 옻칠은 그래서 달마도를 그리기에 천의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님이 옻을 그림의 소재로 도입한 것은 옻이 물건을 보존하는데 가장 훌륭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1000년간 썩지 않는 등신불, 벌레가 먹지 않는 대장경, 중국의 수천년전 목관들이 그대로 보존돼온 것도 옻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범주 스님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옻이 벌레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원적외선을 방출하고 전자파를 흡수하는 기능까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무에서 금방 추출해낸 옻은 독성을 갖고 있어 옻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간지러움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다. 그처럼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옻이 생활용품에 쉽게 도입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도, 옻은 잘 마르고 나면 그 독성이 사라져 생활 가까이 두면 여러 해로운 기운을 막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달마도가 어떤 방식으로든 널리 유포되는 것을 포교의 한 방편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불교를 오도(誤導)하는 것입니다. 달마도는 선의 1대 조사 달마처럼 네 마음을 닦아 네 자신이 부처가 되라는 것이지, 뭘 믿고 의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달마도에 대한 바른 인식은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화의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불교의 본래 정신을 함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인생을 ‘선묵일여(禪墨一如)’를 향한 정진의 길이었다고 표현한다. 홍익대 미대 재학시절 처음으로 대학생불교연합회가 탄생했고, 대불련을 통해 불교에 입문한 스님은 대학 졸업과 함께 전강 스님 문하로 출가를 했다.

그 후 선화 그려오기를 37째, 옻칠과 그림을 접목해 칠선화를 완성시킨 스님은 37년 정진의 꽃을 ‘천년달마도’라 이름붙였다.

스님은 이번 전시에 다기에 선화를 그려넣은 선차다기도 함께 전시한다. 차가 수행의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다기 또한 수행의 도구로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했다는 것이 범주 스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