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구화산에 터를 잡은 도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일찍이 한나라의 두백옥竇佰玉과 진나라의 갈홍葛洪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당나라 초기 때까지 도사들이 들어와 구화산 골짜기 곳곳에 도관道觀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도교의 성지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승려는 동진東晋의 배도杯渡화상이었다. 그러나 배도는 도사들의 비방과 세에 빌려 불법을 펴지 못하고 구화산 재 너머로 밀려나고 말았다.

촌부들이 논밭으로 나간 한낮이어서 강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검은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을 뿐 아낙들마저 일터로 나가 보이지 않았다. 강을 건너려면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야 했다. 고제는 그 배를 죽선竹船이라고 했다. 강물은 깊지 않아서 대나무 뗏목은 삿대를 찔러주어야 맞은편으로 움직였다. 고제가 한동안 막을 골목을 헤집고 다녀보았지만 사공을 찾지 못했다. 마침 낚시꾼을 태워주고 오는 대나무 뗏목이 멀리 보였다. 고제가 청계의 절벽을 향해서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사공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사공이 갈대로 엮은 모자를 벗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탓에 나이 들어 보였지만 말할 때마다 수줍은 미소를 흘리는 처녀 뱃사공이었다.

“진주사로 갑시다.”

강물은 어찌나 맑은지 헤엄치는 물고기떼가 훤히 보였다. 선청이 물고기를 보고는 컹컹 짖었다. 털북숭이 선청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처녀 사공이 움찔움찔 놀라 삿대를 헛찔렀다. 처녀 사공은 선청이 처음 보는 형상이었으므로 개인지 짐승인지 알지 못했다.

진주사는 창건된 지 얼마 안 된 절이었다. 때마침 상공이 절을 방문하여 새로 조성한 관세음보살 불상을 감상하고 있었다. 절의 동정을 살피고 온 고제가 지장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대나무 뗏목에서 내려기다리고 있던 지장은 천천히 진주사로 올라갔다.

그때 진사 주지가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침 상공께서 오시어 스님을 뵙자고 하십니다.”

지장은 고제와 함께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 삼배하고 난 뒤 상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누각으로 올라갔다. 고제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주지스님께 신라에서 온 스님이라고 했더니 상공께 바로 보고 했나 봅니다.”

“상공께서는 무슨 일로 진주사를 찾은 것입니까?”

“새로 창건한 절이어서 스님들을 위문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지장은 주지의 안내를 받아 누각으로 올랐다. 누각에는 상공이 군의 감찰관인 감군監軍과 낭중 및 낭관, 판관 등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지장을 보더니 일어나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장의 손을 잡아주었다. 상공은 자주색 옷을, 감군은 갑옷을, 낭중과 낭관은 붉은색 옷을, 판관은 섶이 달린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상공이 지장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차가 있습니까?”

“왕실이나 절에서만 마시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까지는 퍼지지 않았군요.”

“우리 신라에서는 아직 그렇습니다.”

“그대의 나라 차는 어떤 차입니까?”

“몸에 기운을 주고 병을 낫게 하는 차입니다.”

“차는 우리나라에서 들어간 줄 아는데 신라에서는 어찌 영약으로 변했다는 말입니까?”

“잘 모르겠사오나 신라 절에서는 찻잎을 살청한 반발효차를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상공은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깊은 듯 수행방법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도 좌하坐夏가 있습니까?”

“좌하가 무엇이옵니까?”

지장은 좌하란 말을 처음 듣게 되어 당황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제가 말했다.

“스님 좌하란 여름철 우기雨期에 스님들이 탁발하지 않고 절에 들어앉아 참구하는 안거를 말합니다.”

그제야 지장은 상공에게 말했다.

“잠시 머뭇거려 죄송합니다. 우리 신라 절에서는 두 번의 안거가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하안거, 겨울철에는 동안거에 들어갑니다.”

상공은 그 밖에도 이국인 지장에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서 화속법사化俗法師가 있습니까?”

화속법사란 일종의 포교승을 일컫는 말이었다. 불법의 이치를 통하여 선남선녀를 교화하여 불제자로 이끄는 법사를 가리켰다.

“있습니다. 불교를 전래해준 당나라와 같습니다. 강론하는 사람을 좌주座主, 화상和尙, 대덕大德이라고 부르고, 납의를 입고 마음을 깨친 이를 선사禪師라 부르고, 계율이 남다르게 청정한 이를 율대덕律大德이라 부르고, 계율을 강의하는 이를 율좌주律座主라 부릅니다.”

지장은 누각에서 내려와 진주사 승려들과 함께 공양간에서 수제비와 떡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지장은 우물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새로 조성한 관세음보살 불상을 보러갔다. 그때 고제가 길을 서두르자고 말했다.

“스님, 이제 떠나야 합니다. 더 지체했다가는 청양의 오계를 넘지 못하고 날이 저물지도 모릅니다.”

지장이 진주사를 나서려 하자 늙은 감승이 인사를 했다.

“만복을 받으십시오. 스님께서도 전등을 밝히시어 하루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국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지도 비슷한 인사를 하며 전송을 했다.

“스님의 학문이 계정해 삼학을 밝히시고 하루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장은 신라로 돌아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구화산에 은둔하여 보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으려고 작심했다. 좀 전과 달리 강나루에는 대나무 뗏목이 10여 척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상공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대나무 뗏목에 오르자 지장이 사공에게 물었다.

“왜 저 산을 만라산이라 부릅니까?”

“잘 보십시오. 저 산의 바위들은 누워 있지 않습니다. 모든 바위들이 나한처럼 서 있습죠. 그래서 만라산이라 하옵니다.”

멀리서 또 말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한 떼의 차마들이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산길 끝에 황토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계속>

글 정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