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내리칠 때마다 아까운 꽃잎이 한 바가지씩 쏟아지던 4월 20일, 수덕사 방장으로 추대된 설정 스님을 만나러 수덕사 산중 암자인 정혜사 능인선원에 들어섰다. 정혜사는 계절도 세월도 멈추어 선 듯, 설정 스님은 수년전 모습 그대로 꼿꼿한 정좌를 틀고 기자를 맞이했다.

방장 추대를 축하하는 인사에 스님은 “돌덩어리를 짊어진 듯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덕숭산.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로 불리우는 경허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한국 선맥의 1번지. 만공과 수월, 혜월, 한암, 금봉, 혜일, 벽초 등 수많은 선지식이 서있던 자리에 이제는 설정 스님이 서있으니, 스님의 모습은 참으로 크고도 고독해 보였다.

“그 위대한 분들에 비해볼 때 소승은 참으로 왜소하기 짝이 없고, 정말 그림자도 좇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복덕과 지혜가 없는 인물이 그분들 뜻을 받을 수 있을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님은 스스로를 ‘방장행자’라고 칭했다. 방장이라는 감투는 쓰고 있으되, 본분사는 행자라는 그 말 속에는 스님의 겸허함이 담겨있지만, 또 한켠에는 스님이 생각하는 수행자의 위치가 담겨있는 말이기도 했다.

“방장행자라는 말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예로부터 있던 말입니다. 한국불교 머리는 큰데 가슴과 다리가 허약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말로는 수미산도 깨부수고, 수미거해를 다 마실 것처럼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이냐 생사의 끈이 완전히 끊어졌나를 돌이켜볼 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불교는 실천 부분이 미약합니다. 대승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실천력은 모자라 소승만도 못하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대승의 진리는 깨친 사람만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전 불제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지행합일의 수행을 필요로 합니다. 말로 경계가 수승한 것은 수사법에 불과한 것입니다. 21세기 불교가 발전하고 민중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더 자신에게 철저하고 하심하고 겸손하며 지행합일하는 수행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장행자의 소임입니다.”

수년간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해온 수좌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현재의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 스님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사정없이 던졌다.

“스님네들이 이 시점에서 생각을 변화해야 합니다. 교계 사부대중들이 국민적인 지탄 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스님들은 절에서 생활을 위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중은 생활인이 아니라 수행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질을 추구하고 거기에 포인트를 두고 살다보면 가지각색의 추문과 부정, 비리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는 승관(僧觀), 즉 승려로서의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승려 각자 승관이 확립돼야 하는 것입니다. 승관이 확립되지 않으면 불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사찰 경제가 아무리 넉넉하다고 해도 승관이 없는 사람이 승권이나 직책을 맡으면 속물집단이지 수행집단이 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신심, 원력, 공심으로 무장해야지, 양심과 인격이 정리되지 않은 이들이 승권을 장악하면 절은 모리배집단일뿐 절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제일 급선무는 스님네들이 중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나 하는 원력입니다. 그렇게 훈련된 구성원들이 있을 때 비로소 승단의 앞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영리 추구하는 집단 승단은 결코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스님이 직접 조계종 총무원을 이끌며 승단의 개혁을 이끌 의지는 없으신지 의중을 물어보았다. 스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럴 의중이 전혀 없다”며 총무원장 출마 의지가 전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법장 스님 돌아가시고 난 직후 신도들이나 스님네들이나 선거 나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만일 생각이 있었으면 그때 했겠죠. 사실 방장도 원래는 생각이 없었는데, ‘아무개가 영순위다’, ‘설정이 선거운동 조금씩 한다드라’ 하는 소리 들려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생각만이라도 줄여 들여야겠다 싶어서 그래서 방장을 수락한 거에요.”

스님은 오히려 20년전에 총무원장이 될 의지가 있었지, 지금은 아니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5년간 서울 생활을 했는데, 그때는 총무원장 생각을 했어요. 내 생각대로 종단 변화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적이 있었죠. 그때 후원자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98년과 99년에 사이에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뛰어들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CNN 방송 보면서 자괴심을 느꼈다. 다 내 책임이다 싶어서요. 내 병 때문에 못나갔으니 부득이한 일이었지만. 종단이 저렇게 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또 수십년 후퇴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병은 수행을 잘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다 보니 생긴 것이죠. 당시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면 진정한 수행자가 되겠다, 적어도 쉽고 편한 삶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올곧은 수행자로 살겠다’ 이것이 나와의 약속이었어요.”

스님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그 길로 봉암사 선원에 들어갔다. 당시 몸무게가 51kg였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이대로 좌복 위에서 이대로 죽겠다는 생각으로 3년을 버텼다. 3년이 지나자 57kg의 몸이 되었고, 그 길로 상원사에서 살면서 병이 회복되었다.

“지금 지금 여기서(정혜사) 10년째 살면서 내가 제자리에 잘 왔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더 이상 허덕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원장 못할 것 같아요, 아니 안할 것 같습니다. 가끔 선배와 후배들이 여러 번 와서 종단의 어려움 토로하면서 스님 혼자 편하자고 이렇게 사느냐고 꾸짖기도 합니다만, 저는 결코 편하게 살지 않습니다.”

스님은 “사찰이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내가 절에 살면서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먹을 것은 직접 지어 먹습니다. 나는 스님들이 모두 직접 농사를 짓고 남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버릇처럼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스스로 내성도 기르고, 남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집니다. 국가보조금이나 신도 보시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수덕사는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늘여갈 것입니다. 승려 개개인은 노동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일을 해보면 좋은 것 많습니다.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면 안돼요. 이것은 스님들은 물론 재가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승속을 막론하고 궂은 일 가리지 말고 적극 실천을 해야 합니다. 좋은 직장, 하기 쉬운 일만 찾을 것이 아니라 궂은일도 자기 스스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이런 마음자세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스님은 종단의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을 토해냈다.

“지식과 인격은 별개의 것입니다. 특히 승격은 더 더욱이나 다른 것입니다. 스님의 자격을 갖춘 사람, 그런 스님들로 우리 종단 이루어져야 합니다. 승격은 인격 위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봉사, 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심으로 다져진 사람으로 승단이 채워진다면 주지 싸움, 감투싸움 이런 것 자취도 없이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종단의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성력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옛날처럼 대중공사로 가면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들이 요즘은 초심호계원에 재심호계원을 거치고, (거기서 징계를 받은 사람이) 로비해서 또 다시 살아나는 실정입니다.”

스님의 비판은 총무원장 선거제도로 이어졌다.

“선거라고 하는 것은 망종지원(종단을 망하게 할 근본 원인)입니다. 어찌 스님이 삼보정재를 들여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종회의원 하려면 몇천만원, 본사주지는 몇십억, 총무원장은 몇백억이 든다느니…. 이런 소리 들으면 축생조차 비웃을 일입니다. 국회의원들도 몇백만원에 모가지가 날아가는 판에 절집 안에서 삼보정재로 좋지 않은 일에 쓰다니…. 중 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조 혜명 받아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일입니다. 자기 명예 위해 삼보정재를 함부로 쓰는 이런 병폐는 불교 스스로를 멸망시킬 원인입니다. 병든 수좌가 병원비가 없고, 신도 자제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절이 깨져도 고치지 않고 자기 일신을 위해서 삼보정재를 쓰는 이런 행태를 가만두면 안 됩니다.”

스님의 이야기는 한국불교의 세계화, 국제포교로 이어졌다.

“국제포교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면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외국인 한국승려가 되기 위해 많이들 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오는 이들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필요한데 우리 종단은 우리의 사고에 맞추어서 그들을 끼워 맞추려고만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에 와서 수년간 수행을 하다가도 사미계도 못받고 돌아가는 경우가 숱하게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말을 모른다는 이유로 수계를 거부하고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말은 서툰 대신 영어와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 각국 언어에 능통하고, 개중에는 4~5개 국어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 중에는 어려서 문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올 때는 수술을 해서 문신자국을 지우고 옵니다. 그런데 문신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사고에 사로잡혀 수술자국이 있다는 이유로 수계를 거부합니다. 현재 우리는 영어로 된 수계의식 하나도 없는 형편입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영어로 된 체계는 전혀 없고. 국제포교에 맞는 폼(form)도 전혀 안 만들어졌습니다. 이래놓고 어찌 국제포교, 세계화를 운운합니까. 우리 상황에 그들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세계 상황에 우리가 맞추어 나가야 세계포교가 가능합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수계의식와 교육체계를 모두 준비해놓고 그들을 기다려야 합니다.”

스님은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는 재가 수행자들을 향해서는 따뜻하고 애정어린 격려를 전했다.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주를 향한 대선언입니다. 생명의 위대함, 자유, 평화, 대지혜, 대관용이 모든 생명에게 다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일체유심론은 마음으로, 관념으로 짓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총체적 에너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 짐승, 뭇중생들이 다 불성을 지닌 존재이라고, 부처님께서는 그 위대성을 찬탄한 것입니다. 불법은 유발이나 무발이나 관계없이 공부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공 스님은 ‘머리를 깎아도 불법의 종지를 모르면 속물이요, 머리가 길더라도 종지를 알면 대 선지식’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대한 유아독존의 근본정신입니다. 열심히 정진해서 경지에 올라선 사람들 많고, 대보살행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무설, 유마, 방 거사가 주변에 아주 많습니다. 불교운동은 사회운동으로 전개돼야 합니다. 승단은 승단대로 있으면서 모든 생명이 함께 추구해야 하는 사상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본인이 수행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건강해지고 사회도 맑아집니다. 정토가 따로 있습니까. 절에서 그들 위해 많은 기회를 줘야 하고, 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스님들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는 서로 노력해야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스님은 오늘날 한국이, 그리고 불교가 처한 어려움이 ‘행복의 원인을 쌓아갈 좋은 기회’라고 역설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과 시련 겪어왔습니다. 불교 또한 조선 500년 동안 질곡의 세월을 보냈고, 일제 36년간 일제 치하에서 불교의 원형 잃고 크나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해방 이후 불교정화운동은 후유증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 절망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보면 어려움 극복하고 좋은 결과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때를 당해 실의하고 좌절에 빠지기보다, 신앙인으로서 신심 있는 삶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원력을 가지고 가정과 사회 국가적 노력 하다보면 발전의 전기가 되는 동시에 행복의 원인을 쌓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인은 좋을 때 어려움을 대비하고, 어려울 때는 원력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생활이 좌절, 절망, 실의에 빠지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불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부처님오신날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동시에 부처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새김으로써 신앙인으로서 본인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 행위가 바른가를 반성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수행인으로서 원력을 세우는 날입니다. 인생은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자기자신을 돌이켜보고, 그동안 한 일들이 철저히 못했나 반성할 때입니다. 부처님 제자는 인과 믿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기회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면역 키워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덕숭산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그래, 꽃을 한말씩 퍼붓는 저 비가 내일의 신록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녹색 우거진 숲을 가져오겠지. 스님의 이야기가 빗줄기를 타고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