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15일 마곡사에서 열린 불교학연구회 워크숍의 백미는 저녁 공양 이후에 이루어진 종합토론 시간이었다. 초보 수행자들, 불교학자들이 질문을 던지면 위빠사나, 간화선 수행자들이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는 방식이었다. 또 위빠사나 수행자가 간화선 수행자에게, 간화선 수행자가 위빠사나 수행자에게 서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흥미진진한 토론장의 분위기를 Q&A 형식으로 전한다.
Q. 위빠사나에서 선정의 기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는데, 왜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까.
A 일묵 스님: 선정이 단지 고요함을 닦기 위한 목적이라면 위험합니다. 선정 속에 들어가면 바깥 세계에 별 관심이 없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행복이 수행을 닦는 다섯 가지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셨지만, 불도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번뇌를 떠나 깨달음을 얻는데 있습니다. 현상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선정이 최종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정의 힘을 지혜로 전환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으로 전환하셨습니다. 지혜를 닦아서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과정 속에 선정이 있는 것이지 선정이 불교수행의 최종목표는 아닙니다.
선정에는 색계 4선정이 있고, 무색계 4선정이 있습니다. 색계 4선정은 거친 것들을 버려가는 과정입니다. 희열을 버리고, 행복과 집중에 이어 평온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색계 4선정입니다. 이에 비해 무색계 4선정은 대상을 세밀화하는 과정입니다. 대상에서 더 미세한 대상으로 점점 더 접근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색계 4선정을 더 강조하셨습니다. 무색계선정 단계로 가게 되면 선정에 빠질 위험이 훨씬 더 커집니다.
Q. 불교에서는 지혜의 완성이 자비라고 했는데, 왜 마가 스님은 자비를 먼저 닦고 지혜를 닦는 수행법을 가르치십니까.
A 마가 스님: 물론 지혜의 완성은 자비입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문제들은 지혜를 닦는 과정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자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현실 창조가 일어납니다. 주인공의 삶을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자비를 닦는 과정은 보다 깊은 수행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다음에는 큰스님을 만나 인터뷰를 해야 정진이 가능해집니다.
Q. 수념처(受念處)는 정신작용입니까. 몸의 작용입니까.
A 안병남: 그 질문은 감각에 대한 개념 정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수행 중에 느낌, 몸의 표면상의 변화 지켜보면 계속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 수념처입니다.
이것은 결국 무상함을 느끼기 위한 공부입니다. '이와 같이 계속 바뀌고 있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죠. 양극단의 감각으로 치닫는 과정은 무상의 원리를 터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엔카 전통에서는 이를 위해 ‘샴파잔냐’를 강조합니다. 샴파잔냐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무상에 대해 철저하게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고엔카는 “샴파잔냐를 한시도 놓치지 않도록” 수행자들에게 계속 환기를 시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샴파잔냐의 지혜가 계발되면 깊은 차원에서 자신에 대한 무상한 특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어떤 스님은 ‘3일만 제대로 수행해도 견성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때 말하는 견성이 선의 최종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과 같은 의미입니까.
A 월암 스님: 『선요(禪要)』에서는 다 끊어지고 화두일념이 1주일간 지속되면 깨달음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다른 큰스님들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화두일념입니다. 일체 망념이 다 끊어지고 완전히 화두삼매에 들어간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3일이든, 열흘이든 제대로 된 수행이 가능하리라 보지만 요즘에는 워낙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숫자를 갖고 현혹하는 사행성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가증 나눠주는 사이비적인 곳도 많은데, 3일이다 1주일이다 하는 그런데 현혹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화두심에 충실하면 시절인연에 따라 견성성불에 합당하는 견성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Q. 박영재 교수님께서는 간화선이 재가자에게 맞는 수행법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보십니까.
A 박영재: 제 경험에 의하면 간화선은 일상생활과 수행을 함께 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인 수행법입니다. 간결할 뿐만 아니라 뜻만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자신의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할 수도 있구요.
Q. 혹시 초심자에게 맞는 간화선 수행법이 있나요. 간화와 관조의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해주십시오.
A 무각 스님: 어느 보살님에게 하루도 빼놓지 말고 100일간 원통사에서 예불을 정진을 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무릎 관절이 아파 도저히 갈 수 없어도 기어서라도 가고, 누가 부축을 해서도 갔더랍니다. 그랬더니 그 사이에 무릎 관절염이 말끔히 다 낳아버리고 크게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걸어가면서 계속 자신을 관한 것입니다. 번뇌망상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통증을 바라보면서 산을 오르락내리락한거죠. 그 과정에서 앞생각, 뒷생각이 딱 끊어지면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걷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관을 한 것에요. 예불을 마치고는 30분씩 화두 참선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라는 마음, 이루고자 하는 마음 모두 놓았더니 내 마음에 훈김이 일어나듯이 오만 가지 마음을 모두 놓아지더랍니다.
모든 마음이 쉬는 그 마음, 놓는 마음이 관조이고, 그 가운데 혼자 30분간 화두 챙기기를 했으니 그 보살님은 100일간 간화와 관조를 동시에 한 것이죠. 방하착하는 마음이 관조라면, 챙기는 마음이 간화입니다.
그 보살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내리면서 스스로 ‘허공중에 만상을 비춘 달’을 체험한 것입니다.
Q. 화두란 무엇입니까. 화두는 외부에서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경계와 부딪히는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까.
A 미산 스님: 화두는 의심덩어리입니다. 화두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이고, 또 하나는 실제로 큰 스님께서 자신의 수행을 토대로 내려주는, 격외로 주어지는 화두입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화두는 이뭣꼬 화두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큰 스님에게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 내지 똥덩어리라고 하고 답하는 것은 격외로 주어지는 화두입니다.
화두는 논리적 사유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내 핸드폰이 어디에 있을까 이런 것은 화두가 아닙니다.
Q. 박영재: 간화선에서 위빠사나로 바꾸신 수행자가 있습니까.
A 마가 스님: 제가 그런 경우입니다. 승가대학을 졸업한 후 선방에서 다섯 안거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서는 물을 수도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스님이니까 당연히 선방에 가야한다고 생각해서 갔는데 화두를 뭔지 영문도 모르고 용만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한철을 나면 얼굴이 밝아지더라구요.
하지만 어디에 물을 데도 없고 제가 묻는 답에 친절하게 답해주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생에는 안 되나보다’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헤매다가 위빠사나를 접하게 되었어요. 남방의 위빠사나 센터에서는 매일 인터뷰를 하는 거에요. 매일, 그리고 매순간 친절히 인도를 해주니까 수행에 속도가 붙어요.
한국에서는 너 화두를 뭘 들었냐, 과정이 어떠했냐, 무엇이 힘들었냐라고 묻지를 않으니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없어요. 매번 이천 몇 백 명이 해제를 했다는 기사만 나오죠.
간화선이 한국의 대표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근기에 맞는 체계가 나와야 된다고 봐요. 그런게 나오지 않으면 중생들에게 도움은 안돼요.
A 월암 스님: 제가 들어보니 제대로 된 다섯 철은 아닌 것 같네요.(웃음) 그래도 다섯 철 정도는 그렇게 용맹정진을 해야 자기 몸이 단련이 돼요.
간화선 본래 수행체계가 아예 없는 수행법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선원청규에 보면 조석으로 조실이나 방장이 입실 제접하는 것으로 돼 있어요. 그래서 원래는 공부가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선원장이 질문과 답변을 의무적으로 했어요. 방장이나 조실이 선방에 직접 나가 기도하는 것도 의무사항이에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풍습이 많이 희박해졌지요. 결제 때 한번, 해제 때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법어를 내리는 것으로 끝이에요.
총림 방장도 선(禪) 전문이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지도를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수좌들 중에서는 너무 똑똑해서 겉 넘어 버린 경우, 순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죠.
요즘 간화선의 모습은 오리지널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노력해서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고 아울러 이 시대의 대중들에게 어필이 가능하도록 용어나 방법을 현대화하는 병행작업도 필요합니다. 간화선은 본래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작동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A 미산 스님: 방장이나 조실 스님께 지도를 한번 받으면 1주일이나 열흘씩 효과가 지속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만큼 스승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간화선입니다.
A 박영재: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참구해야 비로소 간화선이 가능해집니다. 조실 방에 입실점검 과정에서 그 힘이 길러집니다.
저 또한 재가자들을 지도하지만 성격상 그리 무섭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마치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심정이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1주일에 한번 정도씩 점검을 받다보면 그 다음 일주일은 초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공부가 절로 되고, 화두 일념도 절로 되는 거죠.
제가 예전에 숭산 스님께 독참으로 2시간 점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불광」잡지에 재가의 선수행, 생활 속의 선수행을 연재할 때 두문을 동시에 투과해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보시고 숭산 스님께서 또다시 부르셔서 친절하게 독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제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시더니 “바탕은 잘돼 있으나 세밀한 부분에 잘 점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수행은 호랑이굴 속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가능합니다.
A 오원명: 저의 경우에는 위빠사나를 닦다가 간화선으로 갔다가 다시 티베트불교 수행법을 접한 경우입니다. 7~8년간 화두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두만 들고 있다가 생긴 고민은 ‘삼보에 대한 귀의심이 안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티베트불교 수행법을 배우면서 간화선을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자, 한 티베트 스님이 말씀하시길 “티베트 수행법 중에도 간화선과 비슷한 고도의 마운두르 수행법이 있다”며 “귀한 법이니 절대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티베트불교에서는 충분히 정견을 닦은 다음 보리심, 육바라밀을 익히고 삼보공부를 차제해 확고히 한 다음에 비로소 마운두르 수행법을 익히게 된다고 합니다. 그 스님은 또 “그 소중한 법을 잊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법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자기 부모를 버리는 것, 정신 나간 개가 자기주인 보고 짓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Q 일묵 스님: 간화선에서는 탐진치를 제거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있습니까.
A 월암 스님: 간화선의 수행전통, 그 중에서도 조사선에서는 오온이 공하고 일체가 공하다는 입장에서 시작합니다. 위빠사나에서는 무아나 공에 관해 약간 부정적인 입장이라면 간화선에서는 자성청정, 주인공, 불성, 본래면목 등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합니다.
진리와 속제, 생멸과 연기적 입장, 진제와 환멸, 중국 선종과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둘일 수가 없습니다.
간화선에서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수행법은 기술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후학들의 몫이라고 저는 봅니다. 후학들이 초학자부터 전문수행자에 이르기까지 보다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정립을 통해 간화선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스승들이 공통분모로서의 메카니즘,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겸하는 생활상적 간화선을 정립해야 합니다.
간화선의 메카니즘을 이야기하자면, 대혜스님은 간화선 정리할 때 ‘익은 것은 설게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화두라는 의정을 통해 생멸문을 차단하고 오염된 입장, 색수상행식, 생사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의정이 되고 의정이 의단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라는 의심을 통해 망념이 차단됩니다.
그렇게 의심이 더욱 깊어져다가 정점이 이르렀을 때 제7식, 그리고 아뢰야식이 뻥 터지게 됩니다.
정견이 확립되지 않으면 간화선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념이 미혹하면 중생이고 일념이 깨달음이면 부처입니다. 일념, 정념, 무념으로 돌아서는 것, 사념을 가진 중생으로 살아가다 부처 일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수행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포교입니다. 수행이 자체 오롯이 포교로 승화될 수 있는 묘약이 돼야 하는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포교 매우 필요합니다. 수행에 대한 열기가 포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수행하기뿐만 아니라 수행나누기는 더욱 중요합니다. 이 열정이 한국불교의 디딤돌, 한국불교의 미래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