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에게 출가이유를 묻지 않는 것은 절집 안의 불문율이다. 그것은 스님들이 주 고객(?)인 불교계 기자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주말, 아주 특별한 수련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출가자 혹은 재가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방의 ‘비방(秘方)’으로 통하는 자신의 발심수행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것이다. 2월 14일부터 15일까지 마곡사에서 열린 불교학연구회의 겨울워크숍은 그 어느 수련대회보다 특별한 워크숍이었다.

스님들의 출가과정, 혹은 재가 수행자의 발심과정을 듣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부처님이 생로병사를 떨쳐내기 위해 출가를 했듯이, 수행자들 또한 어떤 과정을 통해 발심을 했고, 어떤 수행법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듣는 것은 동아전과에서 수학문제의 답을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절집 분위기상 그런 이야기들은 생략된 채 우리는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들만 접해왔다. 그것은 재가 수행도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칫 ‘재미’에만 치우치다 잃어버릴 수 있는 종교의 경건함 때문이랄까.

이번 워크숍에서는 스님이든 재가지도자든 상관없이 모두 옷을 훌훌 벗어버렸다. 어린 시절 별명이 완두콩이었다는 미산 스님, 태어나기도 전 이미 버림받았던 마가 스님, 마마보이의 껍질을 불교를 통해 벗을 수 있었다는 박영재 교수 등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수행을 해온 과정,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이들 수행자들의 솔직한 수행 이야기를 전한다.

“잘생긴 탓에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죠”

마가 스님의 자비수행 인연담

“제 인물이 참 잘 생겼죠. (청중들 폭소, 네~) 제가 아버지를 닮아서 이렇게 인물이 좋아요. 아버지 인물이 그렇게 잘생겼다 보니 여자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았어요.”

자비명상 수행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천안 만일사 주지 마가 스님은 마이크를 건네받자마자 “제 인물이 참 잘 생겼죠”라는 말 한마디로 청중들을 압도했다.

스님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그 잘생긴 아버지를 다른 여자가 스카웃 해버렸다. 그래서 마가 스님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 과정에 말도 못할 일들이 있었던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버지가 너무너무 미웠어요. 그 미움이 너무 깊어서 아버지 목을 조르기도 했고, 아버지를 찔러 죽이겠다고 칼을 갈기도 했죠. 일부러 꼴찌를 하기도 하고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어요. 이성은 그러면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아버지를 보면 이성이 마비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끝내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죽어버려야지’ 결심을 하고, 광주에서 38일간 무작정 걸어서 도착한 곳이 월정사였다. 그리고 스님은 정말 죽어버렸다.

“약을 먹고 나서 월정사에서 3일만에 깨어났어요. 그리고 출가를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눈이 이렇게 이쁘질 않고, 위로 쭉 찢어져 있었지요. 마음에 울분이 가득하니까.”

성격이 얼마나 까칠했는지 등산객이 담배공초를 버려놓고 가면 4km를 맨발로 산꼭대기까지 쫓아가서 야단을 친 적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의 단점이 젤 먼저 눈에 들어왔고, 조금도 어긋난 걸 참아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옷도 빳빳하게만 입었다.

그러다가 도반 3명과 함께 인도여행을 갔다. ‘혜초의 길을 따라서’ 가긴 갔는데 그 까칠한 성격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가 있나. 결국 도반들과 싸움이 나서, 혼자 도망쳐 나왔다.

영어도 못하지, 말도 안통하지, 너무 두려워서 1주일간 게스트하우스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 창밖으로 도마뱀 한 마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도마뱀 한 마리도 저렇게 자유롭게 다니는데, 꼼짝달싹 못하는 저 자신이 얼마나 하찮게 보이던지. 내 안의 두려움과 싸워야겠다 싶어서 1주일 만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죠.“

그 후로 6개월간 맨발로 인도를 돌아다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Hello만 외치면서 웃음을 던졌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게 가능했고, 또 충분했다. 그 6개월간의 만행은 내 안의 두려움, 내 안의 분노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태안사에 들렀다가 청화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청화 스님은 돌연 마가 스님에게 “자네는 출가전에 어떻게 살았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큰스님은 제 눈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쌓여있음을 보신 거에요. 스님이 그 말을 하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딱 맞은 듯한 생각이 들더군요. 태안사에서 한달반 머물렀는데, 처음 1주일간은 눈물, 콧물만 쏟았어요. 계속 눈물이 나는 거에요. 1주일간 울고 나니까 ‘아버지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처음으로 가슴에 환희심이 가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에는 눈이 쑥 들어갔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니까 세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저건 사람 새끼도 아니야’ 했는데, 그 다음에는 ‘그러기에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사람으로 인정하고 나니까 무조건 안아주고 싶고, 축원해주고 싶더라구요.”

그 후 스님은 미얀마로 건너가 위빠사나를 배웠다. 여러 선방에서 다섯 안거를 났지만 화두가 도대체 잡히질 않았다. 그런데 위빠사나를 배우고 나니, 수행이 무엇인지 이제 감이 오길 시작했다. ‘간화선이든 위빠사나든 예비 수행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방문한 곳은 프랑스 플럼빌리지였다. 그곳에서는 따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끙끙대며 정진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그냥 미소만 머금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 되는 거에요.”

그래서 창안한 프로그램이 자비명상이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가 양 바퀴처럼 나아가는 것인데, 한국불교는 깨달음 위주라, 자비심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내 안이 정화가 되면 공부가 저절로 됩니다. 집단 상담 같은 곳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아요. 깨달음 공부 잘 안되는 사람들, 10년간 공부해도 안되는 사람들일수록 자비의 마음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님은 “마가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토대로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템플스테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스님은 실직자, 이혼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 등 스스로 세상에 버림받은 존재라는 사람들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열었다.

“마음 속에 산란함을 없애고 깊은 수행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자비심,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비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버지, 바로 그 분이 알려주셨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완두콩, 생영감”

미산 스님의 생사인연 탈출기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은 어렸을 적 별명이 생영감 혹은 완두콩이었다고 한다. 생영감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숙하여 붙여진 별명이고, 완두콩은 스님의 속명이 김완두라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몸이 약했다. 집에 있으면 단명하여 스물 안에 죽을 수 있으니 스물까지만 절에서 살라고 부모님이 열두 살 때 백양사로 보냈다. 그래서 절에서 살면서 중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정말 죽음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중학교 2학년 어느날 백양사 주지 스님방에 들렀더니 스님이 눈을 뜬 채 입적을 했던 것이다.

그 길로 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않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아! 죽음이라는게 저런 거구나, 나 또한 스무살이 되기 전에 저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학교공부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방의 스님 한 명이 미산 스님에게 다가와 “나고 죽는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게 바로 참선”이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학교도 그만두고 무조건 선방 스님을 따라나섰다. 은사 스님은 반대를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집에는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초여름 날 선방 스님과 도망치듯 첫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다시 삭발을 하고 금선대라는 암자로 가서 몇몇 수좌스님들과 정진을 시작했다.

집에서도 찾아 나섰고 학교에서도 난리가 났다. 하루는 암자에서 큰절로 내려가니 선생님을 비롯해 60여명의 급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아이들은 “완두야 빨리 돌아와서 같이 공부하자”는 내용이었고, 선생님은 절 생활이 어려워 나간 줄 알고 “선생님 집에 방이 두 개 있으니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내용들이 왜 그리 세속적으로 들렸는지 몇 개를 읽다가 모두 아궁이 속에 넣어 태워버렸다. 거처가 알려져 부모님을 피해 동화사, 법주사 강원 등을 전전했다. 그런데 강원에는 일어특강, 한문특강 등 원하지 않는 공부가 너무 많았다.

당장에 생사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 강원공부도 그만두고 문경 원적암의 서암 스님을 찾아갔다. 서암 스님은 공양주를 시키면서 밥하는 것, 불 때는 것 등을 자상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하루에 아침 저녁 2시간 직접 데리고 앉아 좌선정진을 하도록 하셨다.

나머지 시간은 손잡고 다니며 나물도 뜯고 밭도 매면서 일상사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불을 때고 있으면 옆에 와서 허리를 쿡 찌르면서 “화두 들어”하고 다그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이뭣꼬 화두를 처음 받아 참구하며 한철을 신심과 열정으로 짬지게 보냈다.

‘보고 듣고 숨쉬는 자가 분명히 있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뭣꼬? 이뭣꼬?’

이렇게 동중선(動中禪)을 익히고 나서 서옹 큰스님의 회상이었던 봉암사 선원에서 한 철 지내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리기 때문에 공양주 소임을 맡게 되었다. 지금은 봉암사가 수좌들도 많고 그 위상이 매우 높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집도 몇 채 되지 않고 주로 참선을 오래한 구참 납자들이 약 20여명 모여 자유롭게 정진하는 분위기였다.

서암 스님에게 처음부터 동중 공부를 배웠기에 공양주를 하면서 이뭣꼬 화두를 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구참 스님들이 많아 좌선시간이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좀 해이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초발심자를 잘 지도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송광사 구산 스님을 찾아갔다. 방부를 들여 달라고 하니, 구산 스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 14시간의 가행정진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집을 굽히지 않고 7일간 매일 아침 예불이 끝나면 구산 스님에게 절을 하고 “생사대사를 해결해야겠으니 방부 들여주십시오”하고 청하고 나오곤 했다. 결국 7일만에 구산 스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단, 하루 8시간 정진하면서 한 철을 잘 살면 본방에 방부를 들여주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스님들과는 별도로 큰 방에 앉아 혼자 이뭣꼬 화두에 집중했다.

그런데 반 철 남짓 지났을까, 몸이 안좋아 병원에 가니 폐결핵 늑막염 3기라고 했다. 더 이상 정진이 불가능했다. 어린 나이에 육단심(肉袒心)으로 밀어붙여 병이 난 것이다.

백양사에 내려가 6개월간 치료를 받고난 후 다시 선방으로 가려 하니, 은사 스님과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의 만류가 있었다. 고등학교만이라도 마치라는 것이었다.

“이뭣꼬 화두를 들고 3년동안 몸도 돌볼 겨를 없이 정진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보니 죽음의 공포는 많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어요. 헐떡이는 마음도 심하지 않았고요. 이렇게 수행해가면 화두도 타파하고 생사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 불교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동국대, 인도 뿌나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하바드대 등 긴 학문의 역정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학문의 길에 들어섰지만 항상 수행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방학 때만 되면 고엔까 명상센터 등에 가서 초기경전의 수행법을 배워 일상 속에서 실천해보았다.

“경전의 말씀을 몸소 체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환희심 넘치는 일이었다”고.

학문을 하는 동안에는 주로 초기불교 수행법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수행센터를 탐방하여 선지식도 친견하고 자료수집도 하였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동국대에서 한 학기 강의하다 서옹 스님의 권유로 백양사 운문암 선방으로 가서 정진하였다. 서옹 스님은 “이제 실참실구(實參實求)하여 생사문제를 해결해야지 불교학문만 해서는 죽을 때 아무 소용없다”고 하며 화두참선을 다시 하도록 경책했다. 그리고 소년시절에 했던 이뭣꼬 화두를 다시 주며 참구하라고 했다.

돌고돌아 다시 도달한 곳은 바로 ‘이뭣꼬’ 그 지점이었다.

스님은 이뭣꼬 화두의 특징을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뭣꼬 화두의 특징은 다른 격외어로서 화두와 달리 나 자신의 실존에 관한 의문이다. 지금 여기서 보고, 듣고, 숨쉬는 구체적인 존재 현상에 관한 궁극적 물음이다. 도대체 보고, 듣고, 숨쉬는 존재가 여기 분명히 현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답이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다.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의 상태의 지속은 폭발 직전의 감정으로 굳어져 간다. 의정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더 이상 되뇌일 필요가 없다. 오로지 답을 찾는데 몰입한다. 이렇게 하여 의심→의정→의단이 형성되어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화두일념이 형성된다. 일념이 만년이 되도록 하면 의단독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언어도단 심행처멸의 상태에서 전후 좌우 상하 모든 길이 끊어져 오고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은산철벽에 갇히게 된 신세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한번 크게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 온몸을 의단이라는 용광로 속에 던져 한 송이 연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것이다. 육조단경 기연품의 “언제나 자성은 스스로 여여하다”는 말씀처럼 보고, 듣고, 숨쉬는 곳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마음 빛을 돌이키면(회광반조) 있는 그대로 실감 속에서 이뭣꼬 화두 자체가 드러나 공부가 순숙해진다.

직장인에게 가장 좋은 수행법, 간화선

선도회 지도법사 박영재 교수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선도회 지도법사인 박영재 교수는 “나도 마가 스님처럼 아버지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유산”이라며 “하지만 마가 스님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고 자신의 발심배경을 소개했다.

2대 독자집안에 태어나 위로는 누나 셋, 아래로는 여동생 둘 사이에 낀 외동아들이 바로 박영재 교수였다. 게다가 아버지 직업이 의사다보니 집안환경도 꽤 유복한 편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의 넘치는 애정 속에 자연히 마마보이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물려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의사 빼고는 아무 것이나 좋으니 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서강대 물리학과였다.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 틈바구니에 살다가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보니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수가 없었다. 여자들을 만나도 얼굴이 빨개지고 말 한마디 못붙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대학생다운 사치를 부려 고뇌를 좀 해보자 싶었다.

매일 종로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책을 잃기 시작했다. 책을 하도 많이 읽다보니 제목만 봐도 내용을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목의 책이 한권 있었다.

바로 『숫타니파히타』. 책 제목에 끌려 책을 꺼내 펴보니 내용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독화살의 비유였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독을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 화살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독이 온몸에 퍼져 죽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읽고 나서 ‘나는 대학생이니까 대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 여섯 시에 학교에 가서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는 수업이 있을 때만 자리를 떴다. 시간이 날 때면 닥치는 대로 불교 책을 읽어댔다.

그러다 불교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싶어서 서강대 불교학생회인 혜명회를 찾아갔다. 동아리방에 가보니 선배들이 경전내용을 두고 여러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몰라서 뒤에서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 말도 안하고 한 달쯤 있으니까 어느 선배 한 명이 너는 아무래도 교(敎)가 아니라 선(禪)쪽인 것 같다며 참선을 권하더라구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일반인들을 위한 참선모임인 선도회였다. 이때가 1975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이곳에서 종달 이희익 노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종달 노사는 1963년 선도회를 결성해 재가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문하에서 수행과 통찰, 화두공부가 시작되었다.

“물리학 중에서도 제가 공부하는 이론물리학은 물질현상보다는 우주현상과 원리를 연구하는 분야에 가까워요. 그런데 선이라는 것이 바로 물리학으로 치면 이론물리학이더라구요. 그런데 이해와 체득은 별개의 문제였어요.”

이 대목에서 박 교수는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로욜라는 일종의 토굴승이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굴 속에서 혼자 기도를 하던 중 오후 햇살이 강물결에 비치는 순간 돈오(頓悟)를 경험한다. 이후 그는 예수회를 조직하고, 영성수련이라는 일종의 관법 수행법을 만들어 수도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도록 독려했다.

예수회는 로마 가톨릭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그룹으로 통한다. 그곳에 가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선교를 위해 떠다는 이들이 바로 예수회다.

박 교수는 “로욜라는 서양의 관법 수행자”라며 “예수회가 창립한 서강대에 재직하다 보니 간화선 수행과 예수회의 영성수련 수행법에서 깊은 유사점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참선수행을 하면서 간화선이 내 코드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며 “간화선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스승만 제대로 만나면) 간화선만큼 쉬운 수행이 없어요. 일상생활과 수행을 함께 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인 수행법입니다. 간결할 뿐만 아니라 뜻만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박 교수는 대혜종고의 『서장』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대혜종고가 쓴 편지를 보면 서신을 통해 입실점검을 하는데,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이 대부분 사대부들이라는 것이다.

“대개 6개월 정도 어떤 잡념도 없이 철저히 수식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 누구나 화두 공부에 온전하게 몰두할 수 있게 되며, 입실 지도를 통한 화두참구로 길러진 집중력은 번잡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각자 맡은 바 본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박 교수는 간화선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수식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1km, 하프코스를 거쳐야 하듯이 간화선 또한 수식관을 통해 몰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가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선도회에서는 무문관을 최고의 수행법으로 평한다. “무문관에서는 처음 시작부터 이원론의 분별을 끊고 본측에 나아가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지도법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했던 종달 노사의 수행법과 삶을 책으로 남기고, 선도회의 수행법을 체계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평생 동가식서가숙의 삶 살아왔죠”

밝은세상 대표 오원명 법사

사)밝은세상 대표 오원명 법사는 자신의 삶을 ‘동가식서가숙’이라고 표현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집을 나가 그 이후로 소식이 끊어졌다. 그 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는데, 지금도 집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바깥으로 수행지도를 하러 쫓아다니니 이것이야말로 동가식서가숙의 삶이라고.

마음속에는 항상 커다란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자기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종교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서 처음에는 교회를 5~6년 다녔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불교로 발길을 돌렸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기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지식이 아닌 가슴의 문제인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서암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서암 스님 또한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았고 일본에 갔다 폐병을 얻어 다시 한국에 돌아와 토굴수행으로 병마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게 가슴의 문제인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마음의 문제였다.

서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큰 용기를 얻게 돼 무자화두를 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오 법사의 관심사는 ‘어떻게 괴로움을 해결할 것인가’였지만 가슴에 응어리가 깊어 화두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전신마비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1주일간 잠도 못자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뼛골이 쑤시는 아픔만 있었다. 당장 아프니까 통증을 관찰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만 쳤다.

전신마비는 오 원장으로 하여금 몸을 관찰하는 계기가 돼주었다. 가만히 관찰을 해보니 내 마음 속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고 그 마음이 몸으로 가면서 마비가 찾아온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갑자기 유마경에서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가 떠올랐다. “중생이 아프니까 내가 아프다.”

고통 속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고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안의 고통과 세상 사람들의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연기를 이해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스트레스, 즉 내 안의 집착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해보니 “악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통증, 불안감, 모두 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박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씨름하는 마음 자체가 끊어져야 공부가 끊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응어리가 풀리면서 화두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타가 둘이 아니고 실체가 없다는 본질을 알게 된 것이다.

평생 동가식서가숙해온 삶의 배경은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기마음을 어쩌지도 못하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오 법사는 정토회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을 진행하고, 명상아카데미를 운영하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밝은세상을 통해 재가자들의 수행지도를 해오고 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