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그래도 지장은 귀머거리처럼 꿈쩍을 안 했다. 미소를 지은 채 돌부처처럼 좌선을 하고 있었다. 선정 삼맹 들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장의 무릎부근에는 탱자나무 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졸면서 무릎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되면 여지없이 탱자나무의 가시가 지장을 살을 찔렀다. 가시에 찔린 지장의 무릎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밤에는 움막 천장에 늘어뜨린 칡덩굴 끈으로 목을 걸었다. 꾸벅 꾸벅 졸게 되면 칡덩굴이 목을 조이게 되어 숨을 쉴 수 없었다. 지장의 목은 이미 끈에 조여 생긴 벌건 상처 자국이 보기 흉할 만큼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시간은 하루 동안에 한 식경뿐이었다., 점심공양이 끝나면 산길을 걷곤 했는데, 바로 그때를 이용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선대에서 정진한 지 몇 달이 지나자, 시종은 지장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스님, 이런 고행을 왜 하는 것입니까?”

“내 몸의 씻어 청정해지기 위해서다.”

“청정한 스님을 율사律師라고 부른다.”

“율사가 되고자 이런 고행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그럼, 무엇이옵니까?”

“신통을 얻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주문을 외는 스님이 도기 이해 이런 고행을 하신단 말입니까?”

“그럼, 무엇이옵니까?”

“불법을 통달하기 위해서다.”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법사法師가 된다.”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고행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다.”

“부처가 얻은 깨달음이 온다.”

“깨달을 것이 더 이상 없는 수행자를 선사禪師라 부른다.”

지장은 잠시 침묵했다. 이제는 행자 시종이 불법이 무엇인지 그 언저리에 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의문을 갖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 진리가 불법인 것이었다. 좀더 산속으로 오르자 맞은편 산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산봉우리 봉화대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여원이 國刹이 된 뒤로는 왕족의 참배가 잦았다. 아마도 서라벌에서 누군가가 오겠다는 사전 연락이 분명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시종이 다시 물었다.

“아니다.”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눈물이 되는 것이다.”

“눈물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까?”

“무엇이옵니까?”

“그 꽃이 바로 지옥문 앞에서 눈물 흘리시는 지장보살이시다.”

지장은 다시 탱자나무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 갇혔다. 지장의 그런 모습으리 보는 선청의 눈이 애처로웠다. 선청은 시종보다 지장을 더 따랐다. 공양을 준비하기 위해 시종이 밥이 든 바구니를 만지려고 하면 으르렁거렸다. 점심때가 아니면 시종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시종은 좌선한 채 생각에 잠겼다.

-지장보살은 왜 지옥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악업惡業을 짓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지장보살도 눈물을 흘릴 일이 없을 것이다.

시종은 그날 밤 띳집으로 내려가면서 산골짜기를 향해 혼자 소리쳤다.

-세상 사람들의 악업을 씻어주는 것이야말로 수행자의 일이 아닌가.

그러자 어디선가 메아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세상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바로 스님의 일이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공양 후, 시종은 지장에게 똑같은 대답을 듣고서는 내심 크게 놀랐다.

“지장보살이 지옥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중생이 측은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상의 중생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제도濟度하지 못한 자비심에서 그런 것이다. 이제 스님이 무엇인 줄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계속>

글 정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