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선생이 쓴 天竺古先生宅(천축고선생택)을 아시나요? 천축국 인도의 옛날 선생님 집이라는 말인데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인도의 옛 스승 즉 석가모니의 집, 절이라는 말입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2월 3일 불교리더스포럼에서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에 대해 특강을 열었다.

절을 천축고선생택이라는 말로 표현한 김정희의 재치에 강연 참가자들은 ‘아~’하며 탄복을 쏟아냈다.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 선생은 사실 서예가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글씨만 잘 쓴 것이 아니”라며 “글씨에 덮여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시로써도 당대 최고였다”고 설명했다. 또 “백파선사와 선에 대해 논쟁을 벌일 만큼 뛰어난 선학자이자 불교학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정희는 중국에 사신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군관자격으로 함께 연경에 갔다연경에서 옹방강이라는 유명한 학자 겸 서예가를 만나게 되는데, 옹방강은 처음에 김정희에게 차나 한잔 주고 돌려보내려했으나 그의 학식에 탄복하여 자신이 보관했던 많은 탁본과 서책들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정희는 이때 옹방강을 좇아 노닐며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유홍준 교수는 그 당시 김정희의 글은 기름졌으며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은 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귀양살이 후 달라진 추사의 모습은 대흥사 현판에 얽힌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와 초의선사는 오랜 친분이 있었는데 김정희가 유배를 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렀다. 대웅전 현판을 보니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라 김정희는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이 글을 써 줄 테니 현판을 교체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풀려나 다시 대흥사에 들렀을 때는 이광사의 현판을 떼어 낸 것이 잘못이라며 다시 이광사의 현판을 걸 것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흥사 대웅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젊었을 적 김정희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으며 틀린 것을 참지 못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가 따르는 말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그러하다고 해서 나 또한 그러하지는 않다’라는 것이다. 이 말 때문인지 남들이 뭐라고 하던 자기 뜻대로 살았는가 보다”라고 해석했다.

천재적이나 일면 고지식하기도 했던 김정희에게도 순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김정희는 사는 동안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필담을 나누었다. 이런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추사는 사대주의자라는 비판이 있다.

“추사의 예서나 해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怪奇)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추사체에 대한 적절한 평이라며 유홍준 교수가 설명한 유최진이 지은 『초산잡저』의 내용이다.

김정희는 자신이 살던 곳을 ‘상하3천년 종횡10만 리 실’이라고 표현할 만큼 자신감에 찬 사람이었다. ‘상하3천년 종횡10만 리 실’은 시간적으로 3천년의 시간 속에서 공간적으로 10만 리의 공간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즉 김정희 자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김정희가 죽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철종 7년, 10월 10일 갑오 전 참판 김정희가 죽었다.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과 그림과 역사에 깊이 통달했고, 초서‧해서전서예서에서 참다운 경지를 신기하게 깨달았다. 때로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잘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비판할 수 없었으며, 그의 작은 아우 김명희와 더부어 훈지처럼 서로 화답하여 올연히 당세의 대가가 되었다.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유배 가며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혹은 세상의 쓰임을 당하고 혹은 세상의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또는 물러나기도 했으니 세상에선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