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집행부가 2월 5일 조계사에서 치러질 용산참사 추모 시국법회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계종 대변인(기획실장) 장적 스님은 2월 3일 오전에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종단 차원에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위령제는 지내겠지만 조계사에서 NGO 단체들이 시국법회를 치르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다. 장적 스님은 기자브리핑에 직전에 열린 총무원 각 부서 실장, 부장들이 모인 집행부 회의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장적 스님은 이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시국미사를 올리면 그 교단과 상관없이 일부 단체에서 대회를 개최한다는 인상이 있는데 유독 불교는 그런 행사를 치르면 불교계 전체가 그런 일을 벌이는 것처럼 외부에 비춰진다”며 언론에 비춰지는 불교의 모습을 감안해 총무원은 조계사 주변에서 치러지는 시국법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조계사에서는 3차례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시국법회가 치러졌지만 조계종은 단 한 번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가 없다. 이에 대해 장적 스님은 “종교편향이 됐을 때는 모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왜 조계사에서 치러지는 것이 문제냐”, “시국법회를 왜 반대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장적 스님은 “그냥 종단의 입장이 그렇다” “왜 시국법회를 조계사에서 굳이 열어야 하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계종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한 해 동안 MB정부에 대한 비판적 노선을 취해온 것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최근 지관 스님이 청와대를 초청방문하고 대통령 자문위원에 위촉되는 등 다시 ‘친 이명박 노선’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국법회는 말 그대로 현 시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8․27 시국법회’를 주도했던 핵심 구성원들이 오는 5일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공동추진위원장 : 수경, 명진, 효림, 선묵, 지홍, 정념, 계호, 능혜, 박광서)라는 타이틀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런데 돌연 조계종 집행부가 “우리의 입장은 다르다”며 발을 빼는 형국이다. 조계종 집행부는 시국법회에는 반대하는 대신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49재를 즈음해서 종단 차원의 위령제를 지낼 것이라고 밝혔다.
“참사 현장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위령제를 치르는 것은 불교의 몫”이지만 현 시국에 대한 비판과 질책, 그리고 민심에 대한 위로는 불교의 몫이 아니라는 조계종의 입장 표명은 불교계의 현실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것이 교계의 여론이다.
죽은 자들이,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시국법회를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치러지는 위령제로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