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인사에 묵던 날이 마침 독실한 불교 신자들이 저녁에 삼천배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따라할 엄두도 못냈지만 흐트러짐 없이 삼천배를 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밤새워 삼천배를 올렸고 그분들이 아침 6시에 왜 그렇게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해야 했는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가 자신의 블로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미국대사관 홈페이지나 ‘카페 USA’·cafe.daum.net/usembassy)에 지난 1월 20일 게재한 글의 일부다. 그가 한국 문화, 사회, 일상 등에 대해 직접 한국어와 영어로 작성한 글을 올리는 이 블로그는 누리꾼 사이에 인기를 모으며 한미 양국 사이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심은경’은 1975년 봉사활동을 계기로 한국과 연을 맺었던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 이름.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부임한 뒤 지금까지 20건 안팎의 글을 선보였다.

블로그에는 템플스테이 참가 후기를 비롯해 판소리와 비보이 공연 관람 후기, 충남 예산군과 광주 방문 소감 등 스티븐스 대사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한국인이 궁금해 하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 미국 대선, 한글 홍보대사로 뽑힌 소감 등 주제도 다양하다.

그는 누리꾼들이 남긴 의견을 직접 읽고 댓글도 올린다. 새해 인사 글에선 “올해 한국어 공부를 더 많이 하기로 다짐했다”며 블로그의 댓글을 통해 한국어 읽기 연습을 한다는 내용도 적었다. 누리꾼들도 ‘은경님이라 부르고 싶다’ ‘한국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는 댓글로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은 스티븐스 대사의 해인사 템플스테이 참가 후기 전문이다.

“여러분들도 템플스테이 꼭 한번 해보세요” 주말에 저는 아들과 함께 템플 스테이를 위해 해인사를 찾았습니다. 해인사는 가야산 국립공원 산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인사는 대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여러분도 템플 스테이를 할 기회가 있으시면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템플 스테이 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격했습니다. 다행히 저 혼자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주말에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만난 한 한국 여성분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매화산을 함께 오르는 길에 그 분이 템플 스테이를 하러 왔는데 마치 서바이버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기분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또 제 아들이 참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 아들은 수업이 있을 때 빼고는 10시 이전에 일어나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이미 10시 전에 우리는 등산, 아침식사, 1시간의 명상 및 기타 활동을 다 끝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제 아들은 시계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스님과 사찰 방문객들과 함께 큰 경내 식당에서 각자 먹을 만큼 담아 조용히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제 아들이 “밥, 야채, 두부, 따끈따끈한 국 같은 이런 음식이 우리 학교에도 매일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주말에 들은 가장 흐뭇한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정말 해인사 음식은 너무 맛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스님들께서 차례로 사찰 내 북을 치는 전통적인 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날씨는 매우 추웠지만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는 날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온 한 꼬마 여자아이는 그렇게 밝은 달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름다운 하늘과 그 하늘을 수놓은 많은 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한국과 미국의 도시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해인사에 묵던 날이 마침 독실한 불교 신자들이 저녁에 삼천배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따라할 엄두도 못냈지만 흐트러짐 없이 삼천배를 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밤새워 삼천배를 올렸고 그분들이 아침 6시에 왜 그렇게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해야 했는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해인사에는 본사찰 이외에서 많은 암자가 있습니다. 저는 몇 군데만 둘러봤는데요, 경사가 아찔한 돌계단과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때마침 눈이 내려 정말 마법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생생해 벌써 다시 해인사에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해인사에 머무는 동안 주지스님께서 2011년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탄생한 지 천년이 되는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인사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이며 팔만대장경의 탄생 천년을 맞는 2011년은 천년 전에도 이미 입증된 한국의 뛰어난 기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